감성 하나로 뛰어든 웨딩 촬영에서
좋은 소설가는 많이 보고, 적게 쓴다고 하던가. 나는 그날 적게 보고 많이 셔터를 누른 사람이었다.
그다음 주 평일, 대표는 피드백 일정과 다음번 예식 일정을 공유해 줬다.
장문의 카톡이 도착했다. 주말 촬영본에 대한 피드백이었다. "앵글은 위에서 아래로 찍지 말고 아이레벨에서 찍어주세요", "셔터스피드는 절대 1/125 밑으로 내리지 마세요"와 같은 내용이었다. 대표는 신랑 신부를 대하듯 최대한 젠틀하고 정성스럽게 설명해 줬다.
아마 본능적으로 느낀 걸 거다. 첫 촬영을 함께해 보니 함께 오래가긴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현명한 사람은 그럴수록 더 예의 바르고, 더 친절하게 대한다. 뒷 탈이 없으려고. 마치 소개팅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만났을 때 부채감이 생기지 않게 먼저 계산을 하고 나오는 심리처럼.
두 번째, 세 번째 촬영을 나갔다. 쑥쑥 실력도 늘었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달랐다. 눈에 띄는 성장은 없었고, 이상한 뽕만 늘었다. 그건 일종의 "열심히 사는 중"병이었다. 평일엔 출근하고 주말엔 촬영 나가는 내 모습에 스스로 도취된 상태. 게다가 촬영은 듣기만 해도 왠지 예술 냄새가 나는 일이라, 그럴싸하게 뽐내기도 좋았다.
대표의 장문 피드백도 점점 짧아졌다.
처음엔 그걸 실력 향상의 결과로 해석했다. 사진이 늘면 피드백은 줄어드는 거니까. 마치 비례, 반 비례 공식처럼.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그건 나에 대한 "내려놓음"의 시작이었다.
업체에 합류한 지 두세 달이 흘렀고, 약속의 8회 촬영을 마쳤다. 처음 면접 볼 때, 대표는 말했다. 8~10회 정도 경험을 쌓으면 정식 서브 촬영을 배정해 주겠다고. 이제부턴 페이를 받을 차례다. 서브 촬영은 건당 17~20만 원, 많이 주는 곳은 25만 원까지 받는다. 이 업체는 호텔 촬영은 아닌 만큼 시간이 길지 않아 25만은 어려워도 20만 원이라도 좋다. 한 달에 4~5번만 촬영해도 100만 원 정도 수입이 생긴다. 이 얼마나 달콤하고 짭짤한 수익인가.
혼자 머릿속으로 늘어난 월 수익을 어떻게 분배할지 열심히 김칫국 마셨다. 하지만 한 주 두 주 지나도 대표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여름이라 비수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달쯤 후에 장문의 카톡이 도착했다. 이번엔 사진 피드백은 아니었다. 앞으로 우리와 함께하긴 어려울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 길었던 공백의 시간에서 이미 어느 정도 눈치를 챘기에, 나 또한 업체의 건승을 빈다는 쿨한 척하는 답을 보냈다. 내 1승 챙기기도 바쁘면서.
그 후로는 한동안 사진을 내려놓았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파티룸을 창업하면서 정신없이 바빴다. 회사 일, 그 외 사람이라면 응당 쏟아야 할 여러 잡무들에 정신없이 시간 쓰니 카메라를 들 여유도 없어졌다. 자연스레 마음도 멀어졌고, 카메라에 먼지만 쌓여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파티룸 쪽에 집중하면서 촬영 생각은 자연스럽게 줄었지만, 마음 한편엔 뭔가 찜찜한 감정이 계속 남아 있었다. ‘그때 좀 더 해봤다면, 지금쯤 어땠을까?’ ‘어차피 사 둔 카메라, 한 번은 제대로 더 해보고 접는 게 맞지 않나?’ 그런 생각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보다 카메라가 감가가 심해서, 얼마 쓰지도 않았는데 값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니 팔기에도 아까웠다.
억울했다. 첫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보다, 내가 너무 쉽게 그만뒀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어느 날, 다시 카메라를 꺼냈다. 이전처럼 무작정 ‘찍는’ 게 아니라, 이번엔 정말 내가 뭘 잘못했는지 복기해 보기로 했다. 외장하드를 연결하고 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봤다.
"이때 왜 이렇게 찍었지?" "왜 어색하지?" "왜 이 구도는 불안하지?" 그냥 감으로 눌렀던 셔터를, 오답노트 하듯이 유형별로 정리했다. 3분할에서 너무 벗어나는 사진. 구도는 좋은데 표정이 어색한 사진 등 카테고리 생겼다. 유튜브에서 웨딩 촬영 관련 영상도 찾아보고, 사진가들의 블로그나 인터뷰도 열심히 읽었다. 기술적인 걸 배우면서 동시에 마음가짐도 조금씩 정리됐다.
다시 해보고 싶다. 이번엔, 그때보다 더 준비된 자세와 마음으로. 마침 지인의 결혼식이 있었다. 지인이 먼저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샘플로 사용할 겸해서 기쁜 마음으로 응했다. 예전보다 더 꼼꼼하게 후보정하고, 신중하게 결과물을 골랐다.
그렇게 해서 다시 만든 포트폴리오. 이전보다 훨씬 낫다는 확신까진 없었지만, 적어도 ‘이번엔 할 만큼 해봤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결과물이었다. 그 사진을 모아서 첫 업체를 구했을 때처럼 다시 메일을 돌렸다. 이번엔 다른 동네에서. 그래도 이제는 그런 "콜드 메일"을 보내는 거에 주저함이 없다는 게 나름의 성장이라면 성장이었다.
그리고 23년 12월 또 한 번의 회신이 왔다.
신도림 스타벅스에서 면접이 잡혔다.
오브포토그라피라는 브랜드로 웨딩, 본식, 데이트 스냅 등 각종 사진을 촬영 중에 있습니다. 현재 포트폴리오 구축을 위해 무료 촬영 이벤트도 진행 중이니 관심 있으시면 네이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확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