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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주인공 서사엔 고통이 따라야지

길 잃은 첫 서브 스냅 촬영

by 청년실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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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4년 8월, 대표가 처음으로 이만치 했으면 서브 촬영에 투입해 봐도 되겠냐고 물어봤다.

드디어 일 년 반 만에 정식으로 서브를 데뷔하는 날이 다가왔다.


촬영은 토요일이었지만 월요일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회사 일을 하다가도 주말 촬영이 머릿속을 치고 들어왔다. 교육 촬영과 서브 촬영은 무게감이 다르다. 심리적 무게감만 아니라 페이도 다르다. 4배 차이다. 비례식대로면 사진 퀄리티도 4배는 좋아야 한다. 왕관 무게를 어쩌고 하라는 그 옛날 말처럼 서브를 하려는 사람 또한 그 부담감을 견뎌야 했다.


토요일, 드디어 촬영 당일. 하차씬부터 시작하는 일정이다. 대표가 12시까지 로비에 도착해 있으라고 전달받았다. 장소는 롯데호텔 잠실. 몇 번 교육 촬영을 가봤던 곳이라 자신 있다. 홀도 예쁘지만, 홀 밖이 더 풍성한 식장이다. 엘리베이터씬, 계단 씬, 호텔 로비 씬이 유명하다.

느긋하게 도착해서 여유 있게 준비하려고 10시 30분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서브를 맡은 날이니까. 대표가 말한 시간보다 한 시간 반 더 이른 시간이다. 일찍 도착해서 세팅 컷도 찍어둬야지. 비싼 호텔일수록 식간 간격이 넓어서 지금 도착해도 촬영이 가능하다.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예식장 명단을 확인한다.


그런데… 어라?
신부 이름이 없다.


또르륵.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미끄러진다. 휴대폰을 확인한다. 카톡 메시지 속 장소. 롯데호텔 ‘서울’. 거긴 을지로다. 나는 지금 롯데호텔 "잠실"인데. 머릿속이 하얘진다. 수능 시험장에 수험표를 두고 도착한 기분이었다.

왜 그런 기분을 아냐면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는 데려다준 부모님 차에 수험표가 있어서 시험 보는 일은 문제없었지만. 아무튼 그때와 비슷한 느낌의 마음에 진폭이 생겼다. 30살 넘어 그렇게 나 자신을 증오해 본 적이 없다.


부랴부랴 차까지 전력질주 한다. 시동을 건다. 레이싱을 하듯 주차장을 빠져나온다. 30분도 안 돼 회차라며 주차비는 안 낸다. 이건 장소 착오의 유일한 긍정 포인트. 하지만 잠실 주말 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다들 롯데월드 못 가서 한이라도 생겼나. 도로가 정말 꽉 막혀 있다.

40분이면 도착한다는 내비게이션은 새로고침 할 때마다 5분씩 계속 늘어난다. 모든 신호에 다 걸리는 저주에 걸린다. GTA처럼 전부 밀어버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지닌 합의금보단 인내심이 더 커서 소극적으로만 연거푸 한숨만 쉬었다. 손에 땀이 한가득이다.


법이 허락하는 제한 속도 안에서 최대한 빠르게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가까스로 11시 55분에 신부보다 10분 먼저 도착했다. 차 안 막히면 20분이면 되는 거리를 한 시간 정도 걸린 거다. 엉뚱한 곳이라도 일찍 도착한 내 근심 걱정이 나를 살렸다. 시간에 맞춰 갔다면 통째로 늦을 뻔했으니까.


첫 서브 촬영 날치곤 급박한 전개다. 이럴 때 나는 “고통은 주인공 서사에 필연적"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프로페셔널한 표정을 준비한다.


우왕좌왕했던 도착에 비해, 촬영은 순조로웠다. 신랑 신부 모두 컨디션이 좋았고, 바쁜 식 중에도 촬영에 협조적이라 촬영하기 편했다. 처음 맡은 서브 촬영 고객이 이 정도라니, 완전 럭키서브다. 아마 앞 전에 액땜을 해서 그런가 보다. 네 시간의 촬영이 끝나고 대표도 고생했다고 격려해 줬다.


서브 촬영으로 승급하면서 나는 ‘내가 제공하는 가치는 어떻게 값으로 메겨질까?’라는 질문을 생각했다. 나는 분명 저번주랑 똑같은 사진을 찍었는데 (물론 조금은 더 나아졌겠지만), 저번 촬영과 지금 촬영은 페이가 다른 게 어떤 차이일까.


회사에서 임금 인상은 정말 쥐꼬리만큼, 그것도 일 년에 한 번 이뤄진다. 대게는 4~5% 정도 상승이다. 인플레이션도 못 따라간다. 그나마 승진할 때나 유의미하게 연봉이 움직인다. 하지만 그건 5년 텀에나 한 번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업계는 다르다. 내가 계속해서 내 가치를 증명하면 과실이 곧바로 리턴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못 하면 더 이상 찾는 손님이 없고 대표도 날 쓰지 않겠지. 피드백이 엄청나게 빠르다.


모쪼록 N만원을 받는다면, 고객에게 N+10만 원 정도의 가치를 더 줄 수 있는 사진가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진 결과물은 기본이고, 친절함이라던가, 식장에서의 도움이라던가, 요구 사항을 정확히 이행하고 거기서 조금 더 센스 있는 정도. '내가 받은 것보다, 고객이 지불한 것보다 조금 더 얹어 돌려주는 것' 서브 촬영을 마치고 호텔 로비를 나서면서 느꼈던 감정이다. 그래야 나도 눈치를 덜 보고, 더 오래 일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산만하고 우왕좌왕했던 롯데호텔 촬영 이후로 꾸준히 교육 촬영과 서브 촬영을 번갈아가면서 나섰다.


그리고 올해 초.

드디어 처음으로 메인 작가 촬영이 섭외 들어왔다. 그것도 "청년실격" 작가님이 촬영해 달라는 지정으로.


오브포토그라피라는 브랜드로 웨딩, 본식, 데이트 스냅 등 각종 사진을 촬영 중에 있습니다. 현재 포트폴리오 구축을 위해 무료 촬영 이벤트도 진행 중이니 관심 있으시면 네이버 블로그인스타그램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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