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 스냅으로 결정한 이유
그리고 퇴근 후, 나는 곧장 인터넷을 켜서 카메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2023년 1월의 일이었다.
퇴근하고 열심히 장비를 살폈다. 너무 아끼고 싶지 않았다. 프로 사진가면 최소한 풀프레임급 카메라는 필요하다. 어중간한 카메라로 돈 받을 수 없다.
이건 100% 성능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웨딩 업계는 분명 필수재보단 사치재에 가깝다. 만약 내가 택시 손님이면 3,000만 원짜리 소나타든, 7,000만 원짜리 제네시스든 상관없다. 목적지까지 나를 잘 데려다면 그만이다. 웨딩 업계는 다르다. 결과물 그 자체와는 별개로 나를 찍는 카메라가 보급기 100만 원짜리인지, 중급기 200만 원짜리 카메라인지가 중요하다. 그것이 실제로 더 좋은 카메라라는 작가의 입장보다, 더 비싼 카메라로 찍히고 있다는 신부의 입장에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결국 오래전부터 눈독 들인 소니 A7M4를 주문했다. 이백만 원 언저리다. 바로 그 주 주말에 서울역 카메라 거리를 돌아다녔다. 대학생 시절, 15만 원짜리 필름 카메라를 사러 쏘다녔던 골목이다. 24-70mm 표준 렌즈를 필카의 10배쯤 가격에 구매했다. 합하면 약 350만 원이다. 취미면 비싼 돈이지만, 돈 벌어 줄 공장이라 생각하며 위안 삼았다. (물론 이게 처음 세팅이었고 현재는 바디 몇 대와, 렌즈 몇 개가 더 있다)
장비에 돈 쓰면서 본업에 새삼 감사했다. 비유하자면, 9-6 회사가 아주 안정적인 캐시플로우를 가진 본사고, 촬영 작가는 지금은 적자지만 훗날 리턴을 기대하는 미래 먹거리 사업에 투자하는 것 같았다. 그게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시간과 자산"을 포트폴리오처럼 구분 지어 인식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장비는 다 갖췄다. 이제 일을 배울 차례. 어떤 촬영으로, 무슨 사진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지 고민했다. 강의도 보고 사진작가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며 어중이떠중이 한 달을 보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결국 본식 웨딩 스냅.
나는 풍경 사진을 오래 찍었다. 조금 더 보태면 나름 예술성을 담고자 하는 사진들. 그런 사진을 올리면 칭찬도 받았다. 감각 좋고, 느낌 있다고. 우쭐했다. 풍경 사진은 고상하게 포장하기 좋은 취미였다. 인스타그램에 올라갈 강렬한 한 장의 사진을 위해 많이 찍었다. 따로 모델을 구인할 일 번거로움도 없고.
하지만 문제는 그런 사진은 돈이 안 된다. 풍경 사진 자체를 직접 팔 수도 없다. 2025년은 이미 이미지 과잉 시대다. 글자 몇 개만 치면 챗 지피티가 이미지도 만들어주는 시대다. 뉴욕 고층 빌딩도 스위스의 산도 내게 촬영비를 주지 않는다.
내가 본식 웨딩 스냅으로 진로를 정한 건 결국 사진으로 찍을 수 있는 시장이 가장 크고 (=일거리가 많고), 사진을 프로페셔널하게 배울 수 있으며(실내 or 야외), 고객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는 의미에서였다.
장르를 정한 뒤에 마친 뒤 본격적으로 업체를 구인하기 시작했다. 막무가내 전쪽 전술이다.
2023년 3월. 우리 동네 예식장을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로 검색했다. 그리고 여러 계정에 DM을 보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직장도 다니고 사진은 아직 초보지만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어 연락드려요. 저를 써보시고 결과물이 마음에 들기 전까지는 페이 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둘째로 태어난 덕에 눈치 빠른 편이고, 현장에서 피해 안 드릴 자신 있습니다. 어시로 부려주시고, 나중에 괜찮으시면 정식으로 일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20~30군데에 비슷한 메시지를 보냈다. 사진 커뮤니티에도 글을 올리고, 각종 인터넷에 나를 노출시켰다. 무급으로 제안하는 건 본업이 있었기에 부릴 수 있는 배짱이었다. 누군가는 일 배우기 위해 돈을 내는 마당에, 무료로 촬영을 배우고, 일터를 경험할 수 있다면 백번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뒤,
한 군데에서 면접 보자는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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