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엠텍 경영지원 (HR)
애초에 학업에 열정이 있었는지부터 물어야 하는 거 아닌가?
포스코, 미안하지만 나는 학업에 열정이 없었다. 그보단 글쓰기를 좋아했다. 내 글쓰기는 군대에서부터 시작됐다. 신교대에선 "소나기"라는 노트 함께 일기 쓰는 시간을 준다. 그것을 어기는 건 항명이어서 꼭 그 시간에는 일기를 써야 했다. 큰 훈련, 예를 들어 수류탄을 던지거나, 사격 훈련을 한 날엔 적을 게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보통 날엔 채울 내용이 없었다. 그러다 보면 혼자 칼럼 형식으로 "나는 왜 군대에 와야 했는가"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시간이 더 지나자 그것 조차 적기 힘들었다. 군대에서 군대에 온 이유를 적는 건 힘든 병영 생활에 하등 도움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물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신교대 우리 막사에는 나를 포함해서 대략 60명의 훈련병이 있었다. 마치 양계장처럼 엄청나게 낡고 긴 마루가 평행선처럼 마주 보며 지나가고, 거기에 한국전쟁에서 살아남은 듯한 관물대가 마주 보고 있었다. 나는 182번 훈련병이었고,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친구들도 저마다 번호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한 달이 넘게 지내다 보니 어떤 친구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소설로 보자면 어떤 인물인지, 사회에선 무엇을 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소나기에다 훈련병의 번호, 그러니까 147번, 이렇게 적으면서 그 친구가 어떤 인물인지를 옆에다다 적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도 나는 언젠가 소설을 쓰고 싶었고, 그리고 그때 중요하게 쓰일 것만 같았다. 물론 지금은 자소서나 적고 있지만.
재밌는 건, 수료식 때 보니 미술 전공하던 친구는 훈련병 모습을 캐리커쳐로 그렸다고 한다. 그걸 보면서 "표현하려는 의지"라는 건 권위적이고,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군대에서도 잃고 싶지 않은 어떤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대 가서도 글쓰기는 계속됐다. 그랬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끝이 나기에 선임들을 묘사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이번엔 본격적으로 일기를 적었다. 자대에 가니, 신병교육대처럼 일기 시간을 따로 주지 않았다. 9시 30분 저녁 점호를 마치고 10시 불이 꺼지는 그 시간에만 글 쓰는 시간이 허락됐다. 그렇다고 꼬박 30분도 아니다. 점호에서 돌아오면 부랴부랴 내일 아침에 갈 빨래부터, 물을 바닥에 뿌리는 것 등 해야 할 일을 끝내면 15분에서 20분이 남는다. 그러면 나는 그 시간 동안 창작에 굶주렸던 예술가라도 된 듯이 펜을 잡고 그날 있었던 일을 적기 시작했다.
일기를 쓰는 동안은 "내가 군대에 있다"라는 사실을 잊었다. 거기엔 선임도, 소대장님도 없고 오롯이 펜, 일기장 그리고 쓰는 "나"뿐이었다. 그 몰입과, 해방의 즐거움이 좋았다. 부디 오늘은 점호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기를, 그래서 글을 쓸 시간이 많기를 바랐다. 하루 일과 중에도 오늘은 이걸 키워드로 일기를 적어야지 하면서 메모했다.
지금도 군대에 일기를 쓴 첫날, 첫 문장이 기억난다. 그건 "군대에서의 2년이 훗날 잔상으로 남을까 걱정되서 글로써 하루하루를 남기려 한다"라는 문장이었다. 비장한 것이 누가 보면 인류 최후의 기록이라도 되는 줄 알겠다. 그때 한참 김훈 작가 책을 읽어서 그랬는지 괜히 그런 말투가 멋져 보였다. 그 문장을 적고 대단한 일을 해낸 냥 뿌듯했다. 그 이후로도 전역할 때까지 나는 꾸준히 일기를 썼다. 지금도 내가 뭐가 됐든 계속 쓰고 있는 건 다 그때 만들어진 근력 덕분이다.
일병 말쯤이었나. 정훈 장교로부터 전파 사항이 내려왔다. 당시 JSA에선 월간호 매거진을 발행했다. 칭찬할 만한 일이나, 여자 친구의 편지, 또는 부대에서 키우는 강아지 "맥스"소식이 주였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정훈 장교가 개편을 맞아 "작전 후기"라는 항목을 추가한다는 내용이었다. 말 그대로 작전과 관련한 후기를 글로 적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자처하지 않아서 글이 잡지에 실리면 포상 휴가를 하루 주겠다고 공약을 걸었다. 군대에서 휴가는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보상이다. 왜 옛말에도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복귀한 병사가 간절히 바라던 내일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분대장은 내게 일기 쓰는 거 좀 덜 쓰고 네가 지원하라고 명령했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분대장이었는데, 그 무심했던 명령은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애초에 경쟁률이 적었던 공모전이었다. 나는 손쉽게 포상 휴가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작전 후기는 군사 비밀이기에 공개할 수 없다. 아니 공개되선 안 된다. 아주 형편없다. 특히 갑자기 노인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부턴 대필을 썼다고 주장하고 싶다. 브런치 심사에도 통과하지 못할 글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처음 남에게 공개한 글이 아무쪼록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거다. 만약 그 글을 내놓았는데 무슨 이딴 글을 쓰냐고 얼차려를 받는다 거나(그럴 일은 없지만), 동료들이 망신을 줬다면 나는 글쓰기를 멈췄을지도 모른다. 아마 일기를 쓰는 것도 관뒀으리라. 그러나 나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고, 동료들도 글 잘 봤다며 응원해 줬다. 그러니 그 공모전의 진짜 포상은 휴가가 아니라 용기였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꾸준히 썼다. 상병 때가 되자 이번에는 독후감을 적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작전지역에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이 입고됐다. 웬 느닷없이 군대에 문학 전집인가 싶다가, 내가 있는 곳이 매일 느닷없이 대북 전단이 오고 가는 지역이란 걸 생각하니 큰 소동은 아니구나 싶었다. 중사였던 우리 부소대장은 그 문학 전집의 세련되고 알록달록한 디자인이 너무 말랑거려서 군대에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 책들이 너무 반가웠다.
만약 올드보이 속 오대수가 만두를 아주 많이 좋아했다면 그래도 17년 동안 가끔은 위로받지 않았을까. 그 친구보단 짧지만 나도 2년 동안 갇혀있는 게 아주 싫었다. 그래도 다행히 나는 국방부에서 넣어주는 그 만두 같은 민음사 전집을 좋아해서 그걸 읽으며 자주 위로받았다. 말년엔 책방에 처박혀서 책만 읽었다.
당연히 계급이 올라갈수록 글을 쓸 시간도 많아져서 이젠 일기도 쓰고 독후감도 썼다. 이젠 소등을 하고서도 후레시를 켤 수 있었다. 그 불빛을 보면서 독후감을 적었다. 전역한 뒤엔 네이버 블로그에 적어놨던 독후감을 연재했다. 그다지 인기를 끌진 못했다. 그러면서도 부지런히 계속 썼다. 2017년엔 사진 찍기라는 새로운 취미를 가졌다. 그래서 사진과 같이 글을 담았다.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면서 나는 호시탐탐 이걸로 돈을 벌고 싶었다. 꼭 돈이 필요했다기 보단, 누군가 내 작품에 값을 치러줬으면 싶었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 네이버와 계약을 맺어 펍 관련한 여행기를 올렸다. 14편에 30만 원이었는데 세금 떼고 하니 20 몇만 원이었다. 두산 그룹에서 주최하는 여행작가 공모전에 지원해서 장려상을 받았다. 문화상품권 10만 원을 받았다. 그리고 그 계기로 여행 작가로 활동할 기회도 얻었는데 너무 자주 기각당해서 그만뒀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머무는 동안은 스텝의 하루를 매일 글로 적었다. 그러니 학업 외에 가장 열심히 한 것은 글쓰기임에 틀림없다. 아니 아예 대놓고 학업보다 열심히 했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 건 쓰는 행위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다.
재밌기도 하지만 죄책감이 없다. 이게 큰 이유였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게임하거나 누워서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분명 그동안은 즐겁지만, 그 시간이 끝나는 바로 그 지점부터 죄책감이 든다. 대게는 "내가 이럴 때가 아닌데"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충분히 재밌고 나서도 개운하지가 않다.
그런데 글쓰기는 다르다. 글쓰기는 게임이나 유튜브처럼 그 재미의 강도가 강렬하진 못하다. 그러나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걸 잘하려고 노력하는 데서 오는 재미가 있다. 그건 마치 아무것도 아닌 레고 조각으로 성을 만드는 기분이다. 표현하고 싶은 어떤 것을 오차 없이 언어라는 담아내는 데 성공하면 그게 게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즐겁다. 유희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선 게임이나, 유튜브 보는 것과 다를 게 없는데도 그걸 다 마친 뒤엔 죄책감이 없다. 오히려 뭔가 부족해 보여서 꼭 썼던 글을 다시 쓰러 간다. 죄책감보단 잘 못썼다는 것에서 오는 좌절감이 있는데 그거는 동기부여가 된다.
글은 누가 나한테 쓰라고 시킨 게 아니다. 그래서 글쓰기가 좋았나 보다. 만약 일주일에 한 편을 쓰고 그걸로 학점을 받아야 했다면 진작에 관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시간과 체력을 써서 글을 썼다.
조금 오버하자면 가끔 글을 쓸 때 저항하는 기분도 든다. 글의 내용으로 가 아니라, 쓰는 행위 자체가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효용성이 중요한 가치다. 만약 내가 이 글을 쓰는 시간과 체력으로 자소서를 썼다면 못 해도 두 개 기업엔 지원했을 거다. 기대수익률로 보자면 자소서를 적는 게, 내가 적는 산문 보다, 내 일기 보다, 내 작전 후기보다, 내 독후감보다 몇 십배는 크다.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알면서도 나는 쓴다. 그리고 이렇게 쓰고 있노라면 괜히 세상의 요구를 거절하는 기분도 든다. 그런 중2병 같은 반항심은 내 글쓰기에 원동력이 됐다.
이건 전적으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뭔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자소서 한 줄 더 채우려고 하는 일도 아니다. 좋은 스펙을 얻자고 적는 것도 아니다. 효용성도 없다. 취업엔 전적으로 무용하다. 그럼에도 나는 쓴다. 그 쓴다는 행위를 하면서 나는 자주 행복하다. [4,661자]
“필패하는 자소서”에선 자소서 문항을 제 맘대로 대답하는 형식의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진로 고민, 하고 싶은 일과 해야 되는 일 사이에서의 갈등, 부끄러움, 대인 관계 등이 키워드입니다. 기획 의도가 담겨있는 프롤로그를 첨부합니다. 팔로우를 하시면 글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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