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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지언 Sep 06. 2015

농부의 화가, 밀레

Jean-Francois Millet, 1814-1875

일생을 통해 전원밖에 보지 못했으므로 나는 내가 본 것을 솔직하게,
그리고 되도록 능숙하게 표현하려 할 뿐이다.


영국의 대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처럼, 그렇게나 우리를 괴롭혔던 무더위는 한여름 밤의 꿈처럼 어느새 잊혀 가고 계절은 벌써 가을의 문턱에 다다랐습니다.

 독서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등의 여러 별칭이 있는 가을이지만, 역시 가을은 일 년간의 농사의 결실을 맞아 추수를 하는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이며, 농부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을에 가장 어울리는 화가가 있습니다. 그 화가는 농촌 출신이고 농부의 아들이며 그 스스로도 농촌의 풍경을 주로 그려서 ‘농부의 화가’라고 불렸습니다.


그 화가의 이름은 장 프랑수아 밀레입니다.


다른 동료 화가들이 풍경을 그리고, 신화를 상상해서 그리고 종교화를 그리고 있을 때 밀레는 일을 하고 있는 농민을 그렸습니다. 그가 그린 농민들은 하나같이 노동을 하고 있는데, 키질, 이삭 줍기, 빨래, 씨 뿌리기, 감자 캐기 등 흔히 농촌에서 볼 수 있는 일거리가 그림에 담겨있습니다. 이러한 밀레의 농촌 그림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받았는데, 이는 그의 그림에서 일 하는 ‘사람’ 자체보다는 ‘노동’ 자체가 잘 드러나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동...입니다.)


밀레의 그림을 보면 사람들의 이목구비는 자세히 확인하기 어려워 초상성이 드러나지 않으며, 그 사람이 하고 있는 노동의 행위만이 그림의 주제로 크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동은 당시가 아무리 산업사회였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본적인 노동이었으며, 이렇게 노동하는 모습을 담은 화면에서 사람들은 그리움과 추억, 추수의 기쁨, 노동의 보람, 농사일의 힘들었던 기억과 농부인 부모님 모습 등을 투영하여 본 것입니다.


밀레의 그림 중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그림은 <이삭 줍기>입니다.


세 명의 여성이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는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목가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이 담겨있습니다. 매우 부드러운 그림의 색감과 안정적인 구도, 멀리 원경에서 보이는 자연풍경과 이삭을 줍는 일꾼 여성들의 정적인 모습은 시각적으로는 매우 평화로운 느낌을 줍니다.

(그림만 봐선 마치 커피 한 잔 하는 여유로움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러나 이 이삭 줍기란 극빈층의 사람들이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이삭을 주워야 하는 고된 노동이었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이삭의 양을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많은 양의 이삭을 줍지도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하나라도 더 많은 이삭을 얻기 위해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열심히 이삭을 주워야 했습니다. 또한 제한된 시간과 범위 이상을 넘어가면 가차 없이 제제가 들어오는데, 화면 우측의 상단 1/3 지점을 보면 멀리서 말을 타고 이삭 줍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감시자가 있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이 노동을 밀레는 매우 정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래서 작품 안의 이삭을 줍는 여성들은 정적이다 못해 고요하게까지 느껴지며, 이러한 조용함은 작품에 엄숙함을 더해주고 힘든 노동을 숭고하게까지 보여주는 요소가 됩니다.


 <이삭 줍기>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밀레의 그림들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만종(The Angelus)>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에 판화와 사진 등으로 복제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팔렸으며, 1889년에 미국으로 잠시 팔렸던 기간 중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라고 소개되어지며 미국 전역에서 전시되었습니다.

작품은 감자밭에서 그날의 식사 거리를 수확하고 저녁 여섯 시의 석양을 등지고 저 멀리 어스름이 보이는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삼종기도를 드리는 젊은 농부 부부를 담고 있는데, 노동 후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평화로우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여타의 종교화보다도 더욱 신성함과 경건함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일까요? 이 작품은 수많은 대중들은 물론이고 다른 화가들의 사랑도 듬뿍 받게 됩니다. 수많은 화가들이 이 작품을 모티프로 다른 작품을 만들어내고, 밀레의 이 작품을 칭송하였습니다.


특히 초현실주의의 대표화가인 살바도르 달리는 <만종>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밀레의 만종에 숨겨진 비극적인 신화”라는 글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달리는 이 그림이 하루를 마무리 짓는 농부 부부가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땅에 묻힌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달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였고, 결국 그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하여 이 작품은 엑스레이 분석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작품 하단의 농부 부부 사이에 위치한 감자 바구니가 원래는 관과 비슷한 형태의 나무상자 모습으로 그려졌었던 것이라고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관으로 그려진 것인지, 아니면 구도를 잡기 위해 그려진 것인지는 아직도 의문점으로 남아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관이라고 한다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신에게 경건한 감사기도를 드리는 작품의 내용은 아이를 읽고 슬퍼하며 기도드리는 내용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지요.

(그림의 내용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밀레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건 비단 달리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빈센트 반 고흐와 우리나라의 박수근도 밀레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밀레의 작품이 사랑을 받고 영향을 받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는 밀레가 생전에 한 말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해선 먼저 자신부터 감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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