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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지언 Sep 14. 2015

만(萬) 가지에 능(能)한 천재, 김정희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아주 예전에 (아마도 2006년으로 기억이 됩니다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추사 김정희에 대한 기념 전시가 열렸었습니다. 전시를 관람하던 때 “추사 김정희를 설명하자면 전공과목, 부전공 과목, 교양과목을 들으며 타과 수업까지 전부 A+를 받았던  학자였다.”라는 도슨트 분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추사는 말 그대로 모든 것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천재였죠.

그중 추사가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인 분야가 바로 ‘감식’ 이었습니다.

"금강안과도 같은 예리한 눈과 중국과 우리나라의 서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추사는 그 시대 최고의 미술사가(美術史家) 임이 분명합니다. 그러한 심미안을 가지고 제자들을 가르쳤으니 석파 이하응(흥선대원군), 조희룡, 오경석 등이 뛰어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추사는 ‘십연천필(十硯千筆: 열 개의 벼루와 천 자루의 붓)’이라는 말로 노력하는 천재의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노력하는 천재...정말 이길 수가 없어..ㅠㅠ)


아무리 마음의 스승이라고 여긴다는 청나라의 옹방강을 따라 금석학을 공부하였다고 할지언정 그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인 것도 서예에 대한 열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흥미가 있는 일을 더욱 깊게 연구하기 위해 주변 학문마저도 일류가 되도록 공부하는 추사는 그 노력하는 자세만으로도 이미 대가의 경지에 올랐다고 보입니다.


조선 말기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예술가, 문예일치를 완성한 사람, 자신만의 글씨체를 완성한 서예가. 실사구시의 정신에 입각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 추사를 수식하는 말들은 이렇게나 많습니다. 수식하는  말뿐만 아니라 그의 호도 추사(秋史)뿐만이 아니라 완당(阮堂), 예당(禮堂), 시암(詩庵), 노과(老果), 농장인(農丈人), 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으로 다양합니다.


부작난도


“예술가가 한 대상을 가지고 몇 번을 그려야 그 그림의 달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일 누군가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저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이렇게 말을 하겠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난초 잎을 그린 수만큼 그리면 달인이다.”


동양화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군자화,  그중에서도 특히나 난초화는 평생을 연습하며 그려야 하는 그림입니다. 난초화라는 것이 남들이 그리는 본새를 보고 있자면, 붓으로 몇 번 쓱쓱 그어내는  것처럼 보여 크게 어렵지 않은 그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큰 오산입니다. 평생을 하얀 화선지 앞에서 팔을 걷어 붓을 잡고 그려도 걸작 하나를 건지기가 쉽지 않은 그림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난초 한 획을 그어놓고 다음 난초 획을 그을 때 어디에 어떻게 그어야 아름다운 가를 알 수 있는 건, 수천 번 수만 번을 그 자리에 획을 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벼루 열 개를 닳아 없애고, 붓 천 자루를 닳아 없앤 추사야말로 바로 그러한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추사의 난초에는 글씨가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추사의 글씨에는 난초가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평생 셀 수 없을 만큼 쓴 글씨이고, 셀 수 없을 만큼 그린 난초화입니다. 그리하여 추사는 글자 어느 부분에서 얇아지고, 어느 부분에서 굵어져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이고, 난초가 어느 부분에서 어느 길이로 뻗어 나와야 아름다운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글씨가 난초처럼 보이고, 난초가 글씨처럼 보입니다.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추사는 글씨를 그림으로 생각하고 썼지 글로 생각하고 쓴 것이 아니다”라며 “추사는 난초 그림도 늘 ‘예서 쓰듯 난을 치라’고 했다”고 합니다. 확실히 추사의 난초화는 마치 서예의 예서와 같이 아름답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이는 끊임없는 반복적인 연습, 즉 '경험에서 온 미(美)'입니다. 오직 한 가지의 ‘미’를 추구하기 위한 추사의 연습량을 생각해보면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나에겐 오직 연습 뿐이야!)


그러나 추사의 예술적 활동을 단지 글씨와 난초만으로 보기엔 선생의 다른 뛰어난 작품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어 국보 180호인 <세한도(歲寒圖)>가 그렇죠.

세한도

이 작품은 추사가 1840년에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때의 작품으로, 당시 중국에서 유학 중인 제자 이상적이 귀한 책을 가져다 준 것에 감사하여 그 답례로 그려 준 작품입니다.

(고마워!)


그림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 겨울인데도 변함없이 고고하게 서 있는 소나무와 잣나무는 제자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경 계절인 겨울은 권세를 잃어버리고 귀양살이를 하는 추사의 지금 상황을 빗댄 것입니다. 그래서 작품의 내용은 권세가 없는 겨울에도 한결같이 자신의 곁에 있어준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추사의 글씨와 그림을 보고 있자면 우리나라가 느껴집니다.

그의 글씨에는 우리나라의 화강암의 거친 면이 느껴지며, 우리나라의 소나무의 딱딱한 껍질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서성 왕희지의 글씨를 보면, 아름답다고 느껴지지만 그 아름다움에는 이국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우리의 정서와는 다르다고 생각될 정도로 글자들이 매끈하고, 단정하고, 유려합니다. 마치 기름기 많은 중국음식 같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김정희의 글씨는 거칠고, 우직합니다. 필체가 글씨의 주인을 닮았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추사의 글씨체가 더욱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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