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이면 (耳をすませば, 1995)
<귀를 기울이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감독인 콘도 요시후미(1950-1998)의 이야기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의 뒤를 이어 지브리의 다음을 이끌어갈 인물이라고 여겨진 콘도 요시후미는 그야말로 두 거장의 사랑을 받은 천재였습니다.
그에 관한 일화로 <이웃집 토토로>와 <반딧불의 묘>의 동시 제작 당시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의 콘도 요시후미 쟁탈전이 유명합니다. 두 감독은 서로 어떤 스태프를 데려가도 상관없으니 콘도 요시후미만큼은 자신의 팀에 넣기를 바랐습니다.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보다 다카하타 이사오가 그림을 못 그린다는 이유로 <반딧불의 묘> 팀으로 들어갔지요.
그는 지브리에 입사하기 전부터 미야자키 하야오, 다카하타 이사오와 함께 일을 하였습니다. <미래소년 코난>에서는 원화, <빨간 머리 앤>에서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 감독, <톰 소여의 모험>에서 원화, <명탐정 홈즈>에서 작화 감독과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지브리에 들어와서는 <반딧불의 묘>에서 작화 감독과 캐릭터 디자인,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작화 감독, <추억은 방울방울>에서 작화 감독과 캐릭터 디자인, <붉은 돼지>에서 원화, <바다가 들린다>에서 원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 원화, <귀를 기울이면>에서 감독, <모노노케 히메>에서 원화를 맡았습니다. 지브리의 작품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안 그래도 지병으로 몸이 약했던 콘도 요시후미는 <귀를 기울이면>을 감독에 이어 <모노노케 히메>의 원화 작업 후 결국 쓰러지게 되고 이듬해 급사하게 됩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애니메이션 관계자들만 2000여 명이 조문하러 왔다고 하고 <귀를 기울이면>의 주제곡 “Country Road”가 흘렀다고 합니다.
그럼 천재 감독의 하나뿐인 유작의 스토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중학교 3학년의 소녀 시즈쿠는 여름방학의 어느 날 독서를 하다 자신이 읽는 책들에 자신보다 먼저 책을 빌려 본 사람의 이름을 발견한다. 그 이름은 아마사와 세이지. 아마사와 세이지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책을 더 빌리기 위해 학교 도서관에 간 시즈쿠는 절친 유우코와 만나 포크송 “Country Road"의 일본어 개사에 대하여 의논한다. 시즈쿠는 유우코와 노래 가사에 대한 이야기, 유우코가 자신의 친구인 스기무라를 좋아하고 있다는 이야기 등으로 신나게 한참을 떠들고 난 후 학교를 나온다. 그리고 시즈쿠는 자신이 책을 두고 온 것을 깨닫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는데, 책을 두고 온 곳에 한 남자 아이가 자신의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남자 아이는 책을 돌려주고 유우코가 개사한 노래 가사를 놀렸다.
어느 날 시즈쿠는 아버지의 점심 도시락을 가져다 드리기 위해 지하철에 몸을 싣고 거기서 고양이 ‘문’을 만난다. 아버지의 도시락을 가져다 드리는 것도 잊은 채 문을 쫓아가던 시즈쿠는 멋진 골동품 가게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바론’이라는 고양이 인형을 만나 신기한 힘을 느낀다. 주인인 ‘니시’할아버지는 시즈쿠에게 가게를 천천히 구경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시즈쿠는 고양이 인형 바론, 커다란 시계 등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다 도시락 심부름이 생각나 서둘러 아버지가 일하는 도서관으로 갔다. 그러나 서두른 탓에 정작 중요한 도시락을 두고 온 상황, 지난번에 학교에서 본 남학생이 시즈쿠에게 도시락을 가져다준다.
개학 후 시즈쿠는 절친 유우코가 좋아하는 스기무라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듣게 된다. 복잡한 마음에 골동품점에 간 시즈쿠는 골동품점이 닫혀있는 것을 보고 낙심하였지만 그 곳에서 아버지의 도시락을 가져다 준 남학생을 만난다. 그 남학생은 골동품점 니시 할아버지의 손자였다. 바론을 보고 싶어 하는 시즈쿠를 위해 남자 아이는 가게 안으로 시즈쿠를 데려 오고 바론을 마음껏 볼 수 있게 해준다.
바론을 본 시즈쿠는 그 소년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바이올린을 만드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고, 바이올린 제작에 대한 소년의 꿈에 대하여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바이올린을 연주해보라는 시즈쿠의 주문에 소년은 “Country Road”를 연주하며 시즈쿠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시킨다. 흥겨운 연주와 노래가 끝나고 시즈쿠는 자신이 여태껏 소년의 이름조차 몰랐다는 것을 깨닫고 소년의 이름을 물어보게 된다. 그 소년은 시즈쿠가 그렇게나 만나보고 싶어 하던 “아마사와 세이지”였다.
이후 세이지는 시즈쿠에게 자신의 바이올린에 대한 꿈과 유학에 대하여 말하고, 시즈쿠는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세이지를 보며 자신만이 멈춰있는 느낌이 들어 자신의 꿈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이지의 유학이 결정되기 전까지 소설을 완성하려고 결심, 골동품 가게에 가서 니시 할아버지에게 바론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써도 되는지 허락받는다. 니시 할아버지는 흔쾌히 허락하고 대신 그 조건으로 소설의 첫 독자가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한다. 그날 이후로 소설 집필에 온 몸과 온 정신을 쏟은 시즈쿠는 학교 성적이 떨어지고 부모님과 상담을 하면서도 결국 소설을 완성해낸다. 소설의 제목은 “귀를 기울이면”.
곧바로 니시 할아버지에게 소설을 가져간 시즈쿠는 할아버지가 읽기를 기다리고 감상을 묻는다. 시즈쿠는 긴장되는 마음과 함께 스스로의 소설이 너무 졸렬하다고 생각하며 자괴감에 빠진다. 그러나 니시 할아버지는 따뜻한 식사와 함께 세이지가 처음 바이올린을 만들던 날의 이야기를 해주며 둘 다 에메랄드 원석 같다고 말하며 이를 선물한다.
다음날 새벽, 무언가에 홀린 듯이 일어난 시즈쿠는 창밖을 보았는데, 그 곳에 세이지가 있었다. 세이지가 비행기를 하루 앞당겨 귀국하여 아침일찍 시즈쿠를 볼 수 있을까 하여 잠시 들른 상황에 기적적으로 시즈쿠가 창밖을 바라본 것이다. 기대하지 못했음에도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세이지의 비밀 장소로 가게 된다. 그 곳에서 서로의 꿈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세이지는 시즈쿠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청혼을 한다.
중학교 3학년 남자 아이의 청혼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이 작품은 (95년에 중3, 현재라면 대략 30대 중후반 정도의 나이인데... 시즈쿠씨, 세이지씨 정말 결혼은 하셨는지요?) 그 나이대의 소녀 감성을 듬뿍 담고 있습니다. 이름만 아는 상대방에 대한 로맨틱한 상상, 자신의 꿈에 대한 방황, 좋아하는 남자 아이라도 지기 싫어하는 마음, 상대방의 짐이 되기 싫어하는 모습은 복잡한 소녀의 마음을 잘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기존의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은 생각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룬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섬세하고 소소한 심리 묘사를 잘 다룬 이 작품은 별다른 주제의식 없이도 드라마가 나올 수 있고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만일 콘도 요시후미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지브리는 지금과 같이 제작 중단의 상황이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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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쿠가 골동품점에 가서 구경한 물건 가운데 커다란 시계가 있습니다. 그 시계의 제작사(?)는 바로 붉은 돼지...(포르코 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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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애니메이션에서 묘하게 큰 인기를 얻은 고양이 인형 바론은 후에 <고양이의 보은>에서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물론 이 작품도 포스팅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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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천재 감독 콘도 요시후미의 다른 그림들 몇 점을 준비하였습니다. 그의 따뜻한 감성이 드러나는 그림들을 한 번 만나 보세요.
본문의 이미지들은 상업적 목적으로 쓰이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오직 작품 소개 및 본문 포스팅을 위해서 쓰였으며, 문제시 즉각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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