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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지언 Nov 24. 2015

일본 서브컬쳐의 미국침투와 무라카미 다카시의 성공

순수 미술과 서브컬쳐의 경계에서의 줄다리기

우리나라에서도 G-DRAGON과 루이비통을 통해 유명한 일본의 현대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는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시장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일본 작가이며, 그의 작품의 기저에는 망가와 아니메라고 하는 일본의 서브컬쳐가 존재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서브컬쳐에 심취해 있는 사람을 일명 오타쿠(お宅, おたく)라고 부르며, 무라카미 다카시의 회사 카이카이 키키(Kaikai Kiki)에는 이러한 오타쿠 성향을 가진 작가들이 많이 있다. 무라카미 다카시를 비롯하여 일본의 오타쿠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피규어 제작자인 BOME(ボーメ, 보메), 카이카이 키키 1호 작가이자 실제로 오타쿠인 작가 Mr.(ミスター, 미스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작품을 보면 하나같이 일본의 망가나 아니메에서 그대로 그 이미지를 차용 하거나, 직접적으로 차용하지 않더라도 시각적으로 보았을 때 망가나 아니메의 캐릭터들과 매우 닮아있다.


한 문화가 타 문화에 들어가서 반발작용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스며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즉, 미국 내에서 어찌 보면 생소하다고 할 수 있는 오타쿠 문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본의 서브컬쳐가 미국에 들어가 흡수되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이 미국에 소개되기 전 미국에 진출한 일본 서브컬쳐에 대한 연구와 함께 미국식 오타쿠 문화의 형성과 발달과정이 있었고, 그로 인해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이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선 일본의 서브컬쳐가 미국에 수출되어 성공하게 된 역사를 알아보자. 2007년에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취향을 전문으로 다루는 미국의 유명 잡지 ‘와이어드(WIRED)’에서 일본 망가를 표지 특집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특집 기사로 일본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받아들이는 일본만화의 문화적 위치를 기사화하고, 나아가 초창기부터 망가를 서구권에 소개해온 가장 큰 두 개의 출판사 가운데 하나인 비즈(Viz)의 제이슨 톰슨(Jason Thompson)이 스토리를 쓴 10페이지의 만화가 실렸다. 이 만화는 일본만화의 미국진출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표현해낸 만화인데, 일본인 그림 작가 오쿠라 아츠코와 작업하였으며, 미국 내 망가의 독특한 위치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우철 방식으로 읽도록 되어 있다. 게다가 풀컬러(Full color)인 원래 잡지의 모양새와 다르게 모노톤의 만화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제목은 “How Manga Conquered the U.S., a Graphic Guide to Japan's Coolest Export”였다.

http://archive.wired.com/special_multimedia/2007/1511_ff_manga


제이슨 톰슨의 만화에 따르면 1950년대엔 <고질라>와 같은 괴수영화, 60년대엔 TV애니메이션 <스피드레이서>와 <GIGANTOR>, 70년대엔 <팩맨>과 같은 비디오게임, 80년대엔 복잡한 변신로봇 장난감들, 90년대엔 <마이티 몰핀 파워레인져(Mighty Morphin Power Rangers, 한국명 무적 파워 레인져)>가 당시 미국인들에게 사랑받았던 일본 서브컬쳐라고 말하고 있다.


80년대 후반부터 영어로 번역된 일본 망가가 미국시장에서 팔리기 시작하고, 90년대 초반까지 <슈퍼마리오>나 <스트리트 파이터2>와 같은 비디오 게임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큰 성공을 가지지 못했던 아니메와 망가는 90년대에 들어와서 엄청난 흥행을 맞이하게 된다. 그 중 가장 구심점을 이루던 작품 세 가지를 꼽는다면 <미소녀전사 세일러문>, <드래곤볼>, <포켓몬스터>를 들 수 있다. 이 세 작품은 단 10페이지에 일본 망가의 미국진출을 다룬 “How Manga Conquered the U.S., a Graphic Guide to Japan's Coolest Export”에서도 각각 1페이지를 전면적으로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미국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망가이다.


우선 시기적으로 제일 먼저 들어온 세일러문의 경우 아니메 1995년에, 망가는 1997년에 들어왔다. 미국에 쇼죠(Shojo, 少女)문화를 맨 처음 맛보게 한 작품이 바로 <미소녀전사 세일러문>이다. 쇼죠 망가는 대개 청춘남녀간의 로멘스나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이는 그간의 미국의 만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르이며, 주인공은 대개 사춘기 시기의 소녀들을 다루고 있다. 이 장르의 경우 시각적인 특징으로 망가 컷들의 추상적 이미지, 배경의 꽃 패턴, 한 페이지에 거의 클로즈업 되는 캐릭터, 커다란 눈 등을 들 수 있다. 세일러문의 경우 미국 내에서 확고한 팬 층을 형성하였으며, 특히 여성들이 일본식 놀이문화인 코스프레(costume play)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지금도 수많은 <세일러문>의 미국 팬들이 “Anime Expo”와 같은 곳에서 <세일러문>의 캐릭터로 분하고 있다. 


미국의 소녀들을 사로잡은 망가에 <세일러문>이 있었다고 한다면 소년들을 사로잡은 만화에는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이 있었다. 아니메로는 1996년에, 망가로는 1998년에 소개된 <드래곤볼>은 미국의 10대 소년에 큰 인기를 얻었다. <드래곤볼>은 원숭이처럼 꼬리가 달린 소년 손오공이 겪는 이야기를 다루며, 초반의 줄거리와 등장인물 설정은 서유기에서 따온 부분이 많다. 그러나 <드래곤볼>의 전체적인 내용은 주인공인 손오공이 여러 동료와 함께 수많은 싸움을 이겨내어, 만화 속 우주 전체에서 가장 강한 인물로 성장한다는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이 적을 처치하면 더욱 강한 적이 나타나 이전의 적과 동료가 되어 함께 더욱 강한 힘을 가진 적을 상대한다는 설정은 이후의 거의 모든 소년 만화 장르에 있어서 형식적으로 굳어지게 된다.


그러나 90년대 최고의 일본 서브컬쳐의 수출 대표작은 <포켓몬스터>이다. 1998년에 게임으로 소개된 <포켓몬스터>는 닌텐도에서 제작한 롤플레잉 게임과 그 게임을 바탕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을 통칭하는 말이다. 트레이딩 카드, 게임, 장난감, 아니메, 망가 등등의 다양한 매체로 수출된 포켓몬스터는 그야말로 미국에서 포켓몬 광풍을 일으키며 미국의 대부분의 서점가에 <포켓몬스터>와 관련된 망가를 팔게 하였다. 또한 1999년에 공개된 <극장판 포켓몬스터 뮤츠의 역습(미국 타이틀은 “Pokémon: The First Movie”)>은 일본영화로서는 처음으로 당시 전미 흥행 1위를 기록했고, 전미연간 영화흥행성적 Top 20에 랭크인 했다.


1996년 2월 27일에 발매된 <포켓몬스터> 게임은 일본에서 초등학생들이 소문을 퍼뜨린 것이 유행의 시작이었다. 후에 타 기종을 포함해 수많은 속편, 관련 게임, 관련 제품이 발매되며 2004년 여름까지 동 타이틀로 제작된 게임이 1억 1천만장이 팔렸다(주식회사 포켓몬의 발표). 애니메이션 컨텐츠가 충분해 질 무렵,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서 'Pokémon' 명칭으로 진출하며 게임과 애니메이션 양쪽에서 호조를 보였다. <포켓몬스터>는 미디어 믹스 및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캐릭터 전략의 성공사례로서 일본 케이자이 신문에 소개되어 주목을 받았으며, 동 신문사 주최로 경제 세미나 등에서 '포켓몬'을 테마로 강연한 적이 있다. 이렇듯 일본의 서브컬쳐는 90년대에 있어 급속도로 미국의 서브컬쳐 시장을 잠식해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비단 미국만이 아니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 동아일보 1994. 6. 16.


무라카미 다카시는 2002년에 크리스티 옥션에서 자신의 작품 <Hiropon>을 427,500달러에 낙찰 받았다. 1년 후에는 <Miss Ko²>가 567,500달러에 낙찰 받았으며, 그 이후 작품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2008년에는 소더비에서 <My Lonesome Cowboy>가 135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이들은 무라카미 다카시의 피규어(figure)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피규어란 대개 원작이 되는 작품이 존재하는데,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들은 원작 망가나 아니메가 없다. 이것 역시 하나의 성공요소라고 생각되는데, 만약에 무라카미 다카시가 원작이 존재하는 캐릭터를 가지고 피규어를 만들었다면, 오타쿠들 사이에서는 인정받을지는 몰라도 미술계에서 인정받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작이 되는 작품이 없다고 할지라도 무라카미 다카시의 피규어들을 보면 신기할 정도로 미국에서 성공한 아니메 작품들의 캐릭터와 매우 닮아있다. 

우선 <Miss Ko²>를 보자면 <세일러문>의 캐릭터인 세일러 비너스와 매우 유사하다. 주 복장이 세일러복에서 메이드복으로 바뀌었을 뿐 머리색, 헤어스타일, 머리의 리본장식, 하이힐의 디자인 등이 매우 유사하다. 이러한 부분적 요소들은 아니메나 망가의 캐릭터를 설명할 때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한 캐릭터의 캐릭터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러한 요소들이 닮아있다는 것은 분명히 유명한 캐릭터의 복제를 통한 시각적 친숙함을 노린 것이다. 

<My Lonesome Cowboy>의 경우는 <드래곤볼>의 캐릭터와 닮아있는데, 노란 색의 마치 알로에를 연상시키는 뾰족한 머리는 <드래곤볼>에서 자주 표현되던 방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드래곤볼>에서 노란머리는 주인공이 변신을 하여 평소보다 한층 더 강력해진 상태를 나타내는 형태이기에 <드래곤볼>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란색 뾰족머리=강함’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존재한다. 이 헤어스타일은 도상적 유사성과 함께 <드래곤볼>을 보면서 형성된 미국 소년들의 무의식적인 마초성을 건드리기 위해 무라카미 다카시가 <My Lonesome Cowboy>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Hiropon>과 <My Lonesome Cowboy>는 과장된 성기의 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미국에 있어서 ‘망가’라는 말의 초기 의미는 일본에서 그려진 SF와 에로물에 관한 만화였기 때문에 이러한 공공연하며 과도한 성적 표현은 미국인들에게 자신의 작품은 망가나 아니메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을 주는 하나의 장치로 구실하게 만든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략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19금인지라 이미지는 생략합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Hiropon>과 <My Lonesome Cowboy>를 검색해보시길...)


이 외에도 <PANDA>, <KAIKAI>, <KIKI>의 경우는 모두 머리가 크고 몸이 작으며 특히 팔과 다리가 매우 짧은, 소위 말하는 귀여운 형태를 가지고 있다. 머리가 크고 몸이 작은 형태는 미국에도 대표적인 캐릭터 ‘미키마우스’가 있지만, 무라카미 다카시의 캐릭터가 주는 귀여움은 ‘미키마우스’보다는 <포켓몬스터>의 캐릭터들의 그것과 닮아있다.


이렇듯 무라카미 다카시는 굉장히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일본의 서브컬쳐 이미지를 차용하였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일본 서브컬쳐의 다양한 문화코드를 소지하고 있다는 특징은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들이 구심점이 다원화된 현대미술에 있어 충분히 통용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즉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들은 미국 문화 전반에 있어 하나의 익숙함이자 새로움으로 다가온 것이다. 서브컬쳐에 있어서의 그 도상적 이미지를 차용한 대중적 익숙함은 오히려 미국 현대 미술계에선 하나의 새로움으로 다가설 수 있었으며, 이는 상호작용을 일으켜 대중들과 미술계의 관계자들 모두에게 통하게 되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인기상승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일본식 망가나 아니메의 독창성에 문화적인 쇼크를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는 19세기 일본의 풍속화가 그 독특한 이미지로 유럽의 미술계에 있어서 자포니즘의 바람을 일으킨 것과도 닮아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네오팝에 있어서 무라카미 다카시의 성공은 작가의 솜씨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일본의 오타쿠들이 쌓아올린 문화를 가져온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오타쿠의 이미지를 예술작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미술계라는 유통을 이용해 무지한 구미인에게 파는 것은 어떻게 보면 대단히 놀라운 중개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을 단지 인용, 혹은 차용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수많은 미술 평론가들이 네오팝에 대해 오타쿠, 서브컬쳐, 전후(戰後) 등의 어려운 말들을 써가며 그 모습을 포장하고 과장하며 확대 해석한다. 하지만 일본의 오타쿠 문화, 전후의 상황 등을 모르는 미국인에게 있어 네오팝이 다가간 것은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아닌 시각적인 친숙함이 먼저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즉, 네오팝의 성공의 기반에는 우선 일본 서브컬쳐의 성공이 자리하고 있다.

경향신문 1999.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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