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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지언 Oct 12. 2015

반 고흐에게 있어 창작이란 신앙이었다

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

내가 사용한 색이 내 그림에서 훌륭한 효과를 발휘한다면, 그것이 사물의 색과 동일한 색인지하는 문제는 더 이상 내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1987년 3월 30일에 한 화가가 붓꽃(아이리스)을 그린 한 폭의 그림이 뉴욕의 소더비즈에서 539만 달러라는 기록으로 팔렸습니다. 3년 후 1990년 5월 15일에는 크리스티즈에서 동일한 화가가 그린 한 폭의 초상화가 8,250만 달러라는 가격으로 한 일본의 사업에게 팔렸습니다. 이는 당시 미술계에 있어서 새로운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운 것이었습니다.


이 화려한 경매 기록을 작성한 작품의 화가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천재 화가입니다. 그러나 이 남자는 현재의 유명세와는 다르게 생전에는 화가로서 너무나 인지도가 없어 자신의 그림을 재료값 이상으로 받고 팔아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림 좀 사주세요...)


고독한 화가, 불운한 천재 등의 별명으로 알 수 있듯이 반 고흐는 작품 외적인 요소로도 유명합니다.

미술사에 있어 가장 불운한 삶을 살다가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한 그는 언젠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고 늘 입버릇처럼 되뇌었습니다.


고흐는 천재로 일컬어지는 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화가로서의 시작이 다른 화가들에 비하면 매우 늦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20대 후반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3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의 모든 작품들은 권총 자살로 죽기 전 10년 동안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흐는 화가로서의 10여 년간 900여 점의 페인팅, 1100여 점의 드로잉과 스케치 등 2000여 점의 작품을 창조해낼 정도로 열정적이었습니다. 10년을 날짜로 계산한다면 단순히 1년을 365일로 잡아도 3650일입니다. 즉 그는 드로잉을 제외하고 페인팅 작품만 말해도 평균적으로 나흘이 멀다 하고 작품을 하나씩 그려낸 것입니다.  


이토록 강렬한 창작에 대한 열망은 도대체 고흐의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이는 고흐의 집안 환경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고흐의 집안은 대대로 신앙이 깊은 집안이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빈센트 반 고흐는 1811년 라이덴 대학에서 신학 학위를 받았고, 아버지 테오도르 반 고흐는 독일 개신교의 목사였습니다. (반 고흐의 이름인 빈센트는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며, 당시에는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고흐의 신앙심은 대단하여 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1879년 1월 벨기에의 석탄 광산마을에 임시 선교활동을 떠났습니다. 그는 광부들의 숙소 뒤편의 임시 막사에서 설교자들과 같이 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같이 나누려고 했는데요. 하지만 고흐의 선교활동은 금전적 지원을 해주던 교회에서 원조가 끊어지게 되어 오래가지 못하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회가 원조를 끊은 이유는 고흐가 너무 열성적으로 선교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고흐의 선교활동이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을 방해할 정도여서 교회가 지원을 끊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해프닝은 고흐가 얼마나 열성적으로 활동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선교를 열심히 했는데, 왜 후원을 끊는 거지...?)


이후로 고흐는 그림을 통해 신을 전파하기를 원했습니다. 즉 고흐의 창작은 그의 평생에 걸친 신앙이자 삶의 목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고흐의 열정은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이 정신병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고흐는 정신병원에 다니면서도 자신의 창작력과 창작욕이 정신병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고흐의 정신병은 특히 죽기 전 마지막 몇 년간 더욱 증세가 심해졌는데, 증세가 심해질 동안에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자신의 재능을 더 이상 표출할 수 없다는 좌절감으로 바뀌어 자살의 원인이 됩니다.

그의 창작욕은 마치 해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와 닮아있습니다.


고흐의 그림은 감상자의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 다른 화가의 그림들처럼 대상을 단순히 화폭에 재현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흐는 그림을 그릴 때 언제나 대상을 철저하게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그림 대상이란, 신이 주신 선물이었고 놓쳐서는 안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고흐는 다른 화가들과는 다르게 물, 공기, 구름, 별의 흐름 등을 느끼고 이로 인한 색채와 형태의 변형을 캔버스에 표현하였습니다.


그림이라고 하는 것이 화가가 자신의 눈으로 실제 대상을 시각으로 관찰하고 얻은 정보를 머릿속에서 재구축하여 붓과 물감을 통해 형태와 색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고흐의 그림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자연의 율동과 하늘의 움직임을 보고 표현할 수 있는 화가였다는 것입니다.

(똑같은걸 봐도 고흐는 저렇게 보인다는 걸까...)


이렇듯 자연의 운행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고 있는 반 고흐의 그림은, 그래서인지 미술사에 있어 고흐 이전의 어떠한 사조나 유명한 화가의 작풍들과도 비슷한 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고흐의 그림은 형태적인 측면에서 아침마다 뉴스에서 접하는 일기예보에서 왕왕 볼 수 있는 대기 흐름도와 닮아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눈을 통해서는 확인할 수 없는 무색, 무정형의 에너지의 흐름이 화폭에 담겨있기에 고흐의 그림은 감상자에게 더욱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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