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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제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by 사월

나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게 어떠한 것이든 간에 하고자 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하고 나 역시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한 모습이, 사람이 내가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와도 같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로 포기하고 멀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자기 나름의 계획을 짜고 그 일을 더디지만 이어나가는 사람을 볼 때면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 '대단함'이 남들이 생각하는 정말 '대단한' 그 무언가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스스로의 삶에 '주제'라는 것을 안고 살아갈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멋들어진 그 무언가가 아니더라도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을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있다. 남들이 들으면 '그게 무슨 주제씩이나 되니'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름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해 아니, 발전되지 않더라도 그저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하는 것들이 있다. '나'라는 사람을 오롯이 생각하며 보내는 그런 시간. 그 일들을 머리 속으로 하나 둘 나열해보고 있자면 정말 '대단한'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간단히 몇 가지 예를 들자면 하루에 영화 한 편씩은 꼭 보려고 한다는 것, 웬만하면 뉴스는 빼놓지 않고 보려고 한다는 것, 엄마와의 시간을 조금 더 많이 보내려고 한다는 것, 강아지를 조금 더 많이 이뻐해주려고 한다는 것, 오늘 떠오른 생각들을 글로 옮기려고 한다는 것, 오늘 있었던 일을 일기장에 적으려고 한다는 것 등등 이 외에도 나름 살아가면서 습관처럼 배어있는 일들은 많다. 참으로 사소하다 말할 수 있는 내 나름의 규칙들이자 나를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의 일부분들이다.


하나씩 따져보자면 정말 '직업'을 가질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다. 직업을 갖기 위해, 스펙을 쌓기 위해 하는 일과는 전혀 먼 일들의 연속. 하지만 그 무엇보다 마음을, 생각을, 감정을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이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팔자 좋은 얘기를,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말이다. 맞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현재를 살기 바쁘고, 미래를 대비하기 바쁜 사람에겐 한편으론 한량 같고 어쩌면 꿈같다 말할 수 있는 삶의 '주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언가가 '된' 완성형보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고'있는 과정형이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 더욱 주체성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해서이다.


사람들은 보통 '과정'을 중시하라고들 한다. 과정 속에 배우는 것들이 많다면서. 그렇지만 정말 '과정'에만 비중을 두고 살아가려 하면 다들 한 마디씩 하기 바쁘다. '그렇게 살아도 되겠니' '그래도 자격증이라도 하나 따야 하지 않아' '이제 나이도 들어가는데'.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삶이라도 누군가에게 피해 주지도, 도와달라 사정하며 살지도 않은 삶을 살아왔을 뿐인데 주위에서 나를 다그치는 듯한, 잘못 살고 있는 듯한 말들을 듣게 되면 괜스레 불안해지곤 한다. 나는 나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만들어 낸, 만들고 있는 무수한 과정들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내 주제가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내가 살아왔던 과거를 복기하게 만든다.



꼭 무언가가 돼야만 하는 걸까. 그저 과정형 그 어디쯤에 존재하고 있으면 안 되는 걸까. 삶을 살아감에 있어 꼭 무언가를 완성시켜야만 하는 걸까 생각하게 된다. '완성형'인간이라는 것이 진짜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은 삶을 살아가고 시간을 살아가고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계속 겪고 경험하면서 살아가게 되는데 그 무수한 삶 속에서 과연 '완성'시킬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나 있을까. 지금 내가 '완성시킬 수 있다'라고 떠올려지는 것은 단 두 가지뿐이다. 직업을 갖는 것과 결혼을 하는 것. 사실 이것 역시 '완성'이라고 말할 순 없다. 살아가면서 직업은 수도 없이 바뀌고 변화할 것이며 어떠한 의미에선 결혼 또한 마찬가지다. 한 사람과 평생 함께 살아가기에 새로운 연애는 없을 수 있겠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새로운 모습들을 경험하고 적응하게 되니 그것도 엄밀히 따지면 '완성'이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내가 살아가는 삶의 '완성'인 듯 단정 짓는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좋은 직업을 가지면, 좋은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마치 내 인생이, 내 삶의 '주제'가 완성되는 것처럼. 그건 그저 단면적인 '완성'이지 않을까. 밖으로 보이는 외향적인 '완성'보다 내향적인 '완성' 또한 삶을 살아감에 있어 중요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획을 세운다. 나를 위한 아주 사소한 계획. 마음의 풍족함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것, 상상을 위해 영화를 보는 것, 나를 위한 음식을 만드는 것. 그러한 사소한 과정들을 통해 완성시키는 무언가가 아니라 자신 스스로를 알아가고 발전시키는, 그 어떠한 것들을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가 나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 본받고 싶은 사람 흔히 '멘토'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나에게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느 다큐 속에서 본 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의 모습'이라고 말이다. 내가 원하고, 내가 말하는 삶의 '주제'는 바로 그런 모습이다. 늦은 나이에, 굳이 글을 배워도 되지 않을 나이에, 이제 배워 뭐하냐는 그 나이에 꿋꿋이 자신을 위해 노력하며 글을 배우는 그 할머니의 모습. 나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느리더라도 하나씩 배워가는 모습을 볼 때면 항상 감동하게 된다. 누군가는 비웃더라도, 누군가는 하찮다 여길지라도 '나' 스스로가 하고 싶다면, '나' 스스로가 원한다면 누군가의 시선 따위, 말 따위에 주눅 들지 않고 해나가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존경'이라는 단어에 적합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내가 나이 들었을 때의 모습이길 바라면서.


그런 의미로 보자면 나는 존경하는 사람이 아마 한 트럭쯤을 될 것이다. 주위만 둘러봐도 내가 가지는 '주제'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말이다. 가족의 밥을 짓기 위해 아침마다 일어나는 우리 엄마도, 돈을 벌기 위해 새벽에 나갔던 우리 아빠도, 잠이 덜 깬 얼굴로 출근한 우리 오빠도, 어제의 속상함에 부운 눈을 하고 출근한 내 친구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과정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 대단하지도 멋들어지지도 아니, 조금은 구질구질하고 찌질하다 할지라도 과정형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 자체만으로 빛이 난다.






과정을 이어가다 보면 결과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과정이 곧 결과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결과가 나오는 일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고 결과가 좌절돼서 일 수도 있다. 결과가 좌절됐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제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완성되지 않았다고 망가진 것도 아니다. 완성을 위해, 결과를 얻기 위해 수없이 노력하고 경험했던 그 무언가는 꼭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과정형'은 나에게 힘이 필요한 순간, 내가 결코 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일들 앞에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니 과정이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좌절하지 마시길. '과정' 그 자체가 충분히 아름다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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