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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건 어떤 것일까

끝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늙어가는 것에 적응하는 것이겠지

by 사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아니, 빨리 지금에서 벗어나 멋있는 사람으로 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의 내 보잘것없는 모습에서 벗어나 어른으로, 그것도 내가 환상을 갖고 있는 멋있는 어른으로 변하고 싶다는 생각. '어른'은 '멋있는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던 그때의 난, 나 역시 그렇게 멋있고, '어른'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내가 꽤나 큰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엄마와 사소한 대화를 자주 나누는 편이다.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 속에서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들에 대한 생각들도 이야기하는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나는 엄마의 과거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곤 한다. 그러니까 지금의 내 나이 때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자주 묻곤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엄마가 기억하고 있는 어릴 적의 모습들도 궁금해하며 물어보는 편이다. 그게 습관처럼, 어렸을 때부터 나누었던 당연한 대화이라고 생각해서 일까. 나는 엄마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너무도 당연하게 나는 엄마의 어릴 적 모습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궁금하기도 하고, 지금의 우리 엄마를 만들어낸 과거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꽤나 흥미로워서 그렇기도 하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엄마의 과거 연애 대상에 대한 스토리 역시 잘 알고 있다.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인기가 그렇게 많았다는 약간의 허세가 담긴 이야기까지도.


불과 몇 년 전의 난 뒤늦게 온 성장통에 허덕거리고 있었다. 뒤늦은 성장통 탓에 이런저런 생각에 자주 빠지곤 했는데 그때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줄기차게 했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과연 뭘까. 내가 어릴 적 생각했던 '어른스러운'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왜 나는 나이가 들어도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 '나'인 채로 머물러 있는 것인가. 나를 다그치고 한심해하고 있던 그때,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나이는 그냥 내가 원하지 않아도 끝도 없이 먹어가는 데, 그래서 사람들이 나의 나이에 따라 나를 바라보려고 하는데, 나는 그저 '나'인 상태로 발전 없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차마 이렇게 구구절절 그 당시에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를 다 말하지 못하고 그저 짧은 문장으로 물었다. '엄마는 고등학교 때의 엄마의 생각과 마음 그대로야?'라고.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가 살아왔던 그 생각과 마음 그대로 엄마 가슴속에 남아있다고. 그때 생각했던 생각과 가치관들이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때의, 어릴 때의 마음과 감성은 그대로라고. 그저 겉모습만 늙어가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난 차오르는 마음을 괜스레 웃어넘겼던 기억이 있다. 웃어넘기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왜 눈물이 나올 것 같았을까. 그냥 좀 허무해서이지 않았을까. 허무하고 헛헛해서 눈물이 나오려 하지 않았을까. 우리 엄마도 나처럼 이런 생각과 마음을 한 번쯤 가졌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사무쳤다. 왜 그렇게까지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을 받았는진 모르겠지만 '살아가는 것'에 또다시 물음표가 붙여지는 순간이었다. 그 삶에 대한 물음표 때문에 엄마 말이 위로가 되면서도 왠지 모르게 서슬프게 느껴졌던 것 같다. 끝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늙어가는 것에 적응하는 것이겠지. 그저 나의 나이에 맞게, 내가 늙어가는 속도에 맞게 그렇게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 어른이지 않을까. 이렇게 엄마와 나누었던 이야기로 '어른'이라는 말을 정의 내보려 하지만 도무지 딱 손에 잡히는 정의 같은 것이, 마음 같은 것이, 생각 같은 것이 쉽사리 자리 잡지 못했다.



내가 엄마의 말에 허무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나에 대한 실망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뭐랄까. 너무 큰 의미를 두었다고 해야 할까. 그저 TV 속에서, 내 주변에서 보이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어른들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꽤나 그럴듯하게 봤기 때문일까. 내가 저 나이가 되면 자연적으로 얻게 될, 보이게 될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되면 게으른 나의 모습이, 부정적인 나의 모습이, 까칠한 나의 모습이 모두 지워지고 새로운 내가 탄생되는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마치 히어로 물의 한 인물처럼 '변신!'하고 외치면 멋있고 근사한 내 모습이 '짠!' 하고 나타날 거라는 큰 착각을 했던 것 같다.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허무맹랑한 착각을 말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뭘까. 그것이 과연 무엇이기에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처연하게 만들어놓는 것일까.


엄마와 대화를 나눈 후 나의 생각은 더 복잡해졌지만 그래도 왠지 모를 위로를 받기도 했다. 우선 내가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별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위로를 느꼈다. 따뜻한 목소리로 '지금 혼란스러워도 괜찮다'는 듯 말했던 엄마의 말에 격려를 받기도 했다. 그저 지금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혼란스러우면 혼란스러운 대로 너의 템포대로 어른이 되는 법을, '어른'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도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가 있다. 아직 겁은 나는데, 해야 할 것들은 차고 넘치고, 거기에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기분까지 느껴지는 그런 순간. 나의 템포는 너무도 느린데, 그래서 천천히 내 호흡대로 나가려 해도 정차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걱정에 가로막히는 것 같은 순간들의 연속일 때. 이래도 될까.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그냥 내 템포대로 가도 될까. 사람들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막연한 두려움. 이유 없이 갈 곳을 잃은 것 같은 그런 두려움. 그럴 때마다 한없이 주춤거리고, 당황해하다 끝내 다시 나의 템포를 찾아 걸어가기 일쑤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나름의 방황을 하며 얻게 된 생각 한 가지가 있다. 이제 나는 나의 나이에 조금 의연해졌다는 것. 받아들여서 그럴까. 지금의 내 나이를 그렇게 싫어하지 않게 된 것 같다. 뭐랄까. 그냥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적은 나이는 아니기에 왠지 모를 불안함과 압박감은 항상 존재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불안함은 어렸을 때도 있었다. 아니, 더 심했다. 그래서 그저 그 불안감을 조금 인정하려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 인정한다. 나는 살아가는 매 순간이 무섭고 불안하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 참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고 해야 할까. 그 다짐을, 인정을 한다고 해서 내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그저 인정을 하고 나니 내가 흔들려도 '이러다 지나갈 것이다'라며 스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나는 올해 20대 후반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만큼 초조해졌지만, 또 그만큼 담담해졌다. 이제 나이 드는 것이 익숙하다고 해야 할까. 내 기억력의 감퇴가 원인일 수도 있지만 예전엔 그렇게 더디게 먹던 나이가 요즘엔 참 빨리도 먹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일까. 생각할수록 여전히 궁금증은 늘어난다. 하지만 '나이 드는 법', '어른이 되는 법' 같은 것은 잘 모르겠지만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가는 법'정도는 익혀가는 것 같다. '남들과 다른 나의 템포와 생각으로 살아가는 법' 말이다. 지금 이렇게 나의 템포대로 살아간다면 나는 먼 훗날 후회를 하게 될까. 아니면 어찌 되었건 너의 식대로 살아가길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을 하게 될까. 글을 써 내려가면서 역시 또 질문의 연속이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의 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내가 희망하고 생각하는 식대로 뻗어나가려는, 뻗어나가는 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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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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