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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취미생활

그러니까 끝내 엄마의 취미생활은 우리,였기 때문에.

by 사월

사람들은 각자 어떠한 취미를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했던 적이 있다. 나는 원체 이것저것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 더욱 그러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나의 취미생활을 말하자면,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인 영화보기와 요즘은 조금 뜸해졌지만 한 때 1일 1 글쓰기를 목표로 삼을 만큼 글을 쓰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손으로 하는 건 무엇이든 좋아해서 요리를 하거나 뜨개질을 하거나 퍼즐을 맞추거나, 손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취미로 갖고 있었다. 아, 그리고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것도.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었던 취미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집에 있는 것들을 이용해 시간을 잘 때우는 편인 것 같다. 나의 다양한 취미생활을 나열해보며, 문득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엄마의 취미생활이 떠올랐다.






나는 무척이나 무뚝뚝한 딸에 속하는 것 같다. 엄마와 항시 붙어 다니며 함께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그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항상 조금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하곤 하니까 말이다. 타인에게는 절대 말할 수 없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도 서슴없이 다 쏟아내는, 그런 무뚝뚝한 딸. 그런 딸이 뭐가 그리 좋은지 엄마는 항상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길 바라신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 혼자 영화를 보러 가거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갈 준비를 하면 엄마는 항상 말하곤 하셨다. 나가지 말고 엄마랑 같이 집에 있자고. 그러면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집이라는 공간에 그저 같이 있을 뿐이지, 엄마는 TV를 보고 나는 노트북을 하며 서로 딴짓을 하고 있잖아. 그거나 내가 밖에 나가거나 똑같은 거 아니야,라고. 그러면 엄마는 서운한 듯 말씀하시곤 했다. 그냥 그렇게 말하지 않고 있어도 함께, 있는 것 그 자체가 좋은 거라고.


나에게는 세 살 위 오빠가 한 명 있다. 오빠도 나 못지않게 무뚝뚝한 편이지만, 그래도 평균적으로 아들, 이라고 말하는 남자들보다 살가운 편이라고 엄마는 말하곤 하셨다. 어쨌든 시시콜콜 자신의 근황을 보고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거라고 말이다. 우리 오빠는 게임 덕후이다. 그래서 항상 퇴근하고 집에 와서, 또는 쉬는 날이면 항상 방에서 게임을 하느라 잘 나오질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그러더니 여전히 게임 덕후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시키는 것은 위험한 일, 이라는 걸 오빠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게임을 하고 있는 오빠에게 무언가를 묻거나 부탁을 하면 굉장히 예민하게 말하거나 건성건성 대답하곤 한다. 그런데 그렇게 건성건성, 가끔은 짜증을 부리며 대답하는 오빠에게도 예외의 순간이 존재했다. 바로, 엄마의 취미생활에 동참해야 하는 순간이다.


엄마의 취미생활을 수수께끼로 내볼까 한다. 혼자서는 절대 하지 못한다. 꼭 동참해야 하는 이가 존재해야 한다. 동참하지 않는다면, 아예 취미생활을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그리고 형광등이 아주 환하게 켜져있어야 한다. 음, 또 보통 누워서 하는 경우가 많다. 아, 그리고 특수한 기구가 필요하다. 무엇인지 떠올랐는가. 바로, 귀 파기이다. 참, 웃기다. 다른 사람의 귀를 파주는 게 취미,씩이나 될 수 있다니 말이다. 믿기지 않을 수도 있으나, 우리 엄마는 귀를 팔 때마다 항상 말씀하시곤 했다. 엄마 취미 생활해야 하니까 누워봐,라고. 오빠와 나에겐 약간의 마법 같은 말이라고 해야 하나. 엄청난 게임 덕후인 오빠도 엄마의 그 한마디면 바로 오케이를 외치며 예약을 해놓는다. 이번판만 하고 갈게. 그러면 정말 그 게임 한판을 끝내 놓고 안방 침대에 몸을 눕힌다. 그리고 포근한 베개에 누워 몸을 왼쪽으로 뉘었다고 뒤집어서 오른쪽으로 뉘었다가를 반복하곤 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을 때, 엄마의 마법 같은 그 한마디면 바로 보던 화면을 정지시키고 엄마 앞에 베개를 놓고 옆으로 눕곤 했다.



사실 잘 몰랐는데, 나는 간지럼을 많이 타는 편이었다. 엄마의 취미생활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내 귀를 이리저리 잡아당기며 귀를 파곤 하는데, 그게 어찌나 간지럽던지 혼자 낄낄거리며 웃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계속 그렇게 웃으면 흔들려서 귓구멍이 잘 안 보인다며 핀 잔 아닌 핀 잔을 주곤 했다. 그러면 알겠다며 진정시키려 해보지만, 다시 귀지를 파내는 느낌이 나면 혼자 낄낄거리며 웃곤 했다. 간지러움을 잘 타서일까. 간지러움 덕분에 웃게 된 기억 때문일까. 나는 귀 파는, 행위를 좋아하는 것 같다. 포근한 침대 위에서 낄낄거리며 보내는, 그 시간을 꽤나 따뜻한 순간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간지러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포근한 이불의 감촉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엄마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라서.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순간 같아서.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나도 좋아하는 행위,라고 시간, 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취미생활 치고 참 검소하다. 귀 파기가 취미생활이라니 다시 생각해봐도 참 소박하기 그지없다. 귀 파기를 제외한 엄마의 또 다른 취미를 생각해봤다. 음, 사실 잘 모르겠다. 엄마의 취미생활. 그나마도 생각할 수 있는 건, TV 보기나 인터넷 쇼핑하기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전적으로 나만의 생각이다. 그나마 엄마가 집에서 자주 하고 있는 것을 나열한 것인데, 과연 그것이 취미 일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 근데 또 생각해보니 엄마가 하는 인터넷 쇼핑은 거의 살림살이를 위해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기 위해 사이트를 타고 타고 타고 들어가 샀던 생활용품들. 그나마 가끔 옷 구경을 하는 걸 보기는 했지만, 택배로 오는 것들은 거의 생활용품들이었던 것 같다. 뭔가 생활용품을 사기 위해 구경하고 있는 인터넷 쇼핑은 취미생활, 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음, 진짜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엄마의 취미를 모르겠다. 엄마의 취미생활은 언제나 가정과 오빠나 내가 포함되어있는 것들 뿐이니까. 그러니까 끝내 엄마의 취미생활은 우리, 였기 때문에.


엄마는 어릴 적에 화가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엄마 시대 때면 으레 그러했듯,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꿈 한번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지금까지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을 굉장히 부러워하신다. 그러면 나는 말하곤 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취미생활로 그림 그리는 걸 배워보라고. 하고 싶은 건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그러면 엄마는 항상 이런 말을 하셨다. 이제 눈도 제대로 잘 안 보여서 그림도 못 그린다고. 맞긴 하다. 요즘 들어 부쩍 가까운 글씨도 안경을 벗어야지만 제대로 보실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눈치채고 있다. 아마 과거와 같은 이유인 돈, 때문일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림을 배우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지금 내 능력으론 선뜻 돈을 대주겠다, 말을 할 수 없으니 다시 한번 가슴 한켠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왜 이모양인가, 라는 자책의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나는 왜 번듯한 직장 하나 가지지 못해서 엄마의 취미생활도 지원해주지 못하는가, 스스로를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원망해봤자, 자책해봤자 바뀌는 것은 없을 테니까. 그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엄마의 또 다른 관심사를 찾기.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유추해보기. 생각에 생각을 하다 간신히 찾아낸 그것을, 꼭 올해 안에 해드리기로. 사실 내가 느꼈다. 미루지 말고 일단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것을. 나에게도, 너에게도 우리 엄마에게도. 그래서 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며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봤다. 엄마의 관심사를. 그리고 간신히 떠올랐다. 뮤지컬. 콘서트. 엄마는 음악을 워낙 좋아하셨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 하나가 있다. 아침마다 청소를 할 때면 거실 한가운데에 있는 굉장히 커다랗고 검은 CD플레이어 버튼을 눌러 음악을 들으며 청소를 했던 기억. 계절마다 노래의 목록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대체적으로 잔잔했던 음악들. 그 음악에 맞춰 엄마는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했고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거실에 깔려 있던 카펫의 문양을 따라 돌아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덜컹, 위잉 소리를 내며 돌아다녔던 청소기 소리와 알 수 없는 문양이 이어져 기묘하게 길을 만들어냈던 자줏빛 카펫, 그 카펫을 어지러울 정도로 따라 걸었던 내 발걸음의 기억.






그러니까 드디어 찾아낸 듯하다. 엄마의 취미생활이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엄마를 데리고 콘서트 가기. 사실 연말이면 콘서트나 뮤지컬 중 꼭 하나를 정해서 다녀오곤 했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반 돈 없다는 핑계 반으로 근 몇 년 동안 가지 못했다. 이번해에는 꼭 가야지. 꼭 표값도 내가 내야지, 다짐하며 다이어리를 폈다. 올 하반기 목표. 돈 모아서 엄마와 함께 연말 콘서트 가기. 단, 내 취향도 어느 정도 고려한 가수로 정할 것. 참, 나는 끝까지 내 이익 하나는 챙기겠다는, 의지가 아주 가득가득하다. 그래도 돌고 돌고 돌아 간신히 찾아냈다. 기억에서, 추억에서 드디어 한 가지 뽑아냈다. 엄마의 취미생활을. 이걸 뿌듯해하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 창피하지만, 그럼에도 찾았으니, 실행에 옮길 것을 새삼 다짐해본다. 엄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나 소복이 눈이 쌓이는 겨울이 되면 꼭 가요.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잔뜩 들을 수 있는 그 공간으로,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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