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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화란 어떤 것일까

끝내 모든 대화의 끝엔 진심이 담겨있어야 할 것이다

by 사월

나는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하고 싶은 말들은 머릿속에서 빙빙 돌고 있는데 그걸 말로 표현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지 한참 머릿속에서 정리를 한 후에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다 가끔 머리보다 말이 앞서서 말하게 되면 두서없는 말들을 쏟아내어 후회하게 되니까. 그래서 나는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말을 정리해서 말하는 것이 좋고 편하다. 그러한 더딤때문에 나는 누군가와 통화를 해야 할 때 항상 미리 메모를 하곤 한다. 특히 사적인 통화가 아닌 어떠한 질문과 답변을 해야 하는 통화에선 언제나 미리 말해야 할 것들을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하나 둘 어떠한 말을 할지, 그 말에 어떤 대답할지 생각나는 것들을 미리 적어두었다가 통화하는 동안 미리 적어놓은 메모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며 통화를 하곤 한다.






나는 한 가지 버릇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 아니, 약속을 잡아놓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버릇 하나. 그 사람을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미리 이야기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혼자 곰곰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머릿속으로 작은 리스트를 하나 만들어 두곤 한다. 사실 자주 연락하는 사람과 만날 때는 이런 행동을 비교적 덜 하는 편이지만 정말 오랜만에 만나거나, 일 때문에 만나야 하는 그런 조금 서먹하고 어색한 사람들과의 만남에선 항상 대화의 준비를 해갔던 것 같다. 최근 한 달 동안, 아니면 더 길게 몇 달 사이에 나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나눌만한 일들을 떠올려보고 어떻게 말을 할까 혼자 장면을 그려 보곤 한다.


그렇게 미리 이야기를 생각해가는 것이, 준비해 가는 것이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꽤나 유용하게 쓰일 때가 있다. 물론 머리가 좋지 않아 생각해놓은 것을 까먹은 경우들도 종종 있었지만. 그럼에도 미리 할 말을 준비해나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나 어색한 만남에선 이렇게 준비해 간 이야기가 서로의 근황을 재미있게 전달할 수도 있고 내가 꺼낸 주제로 어색했던 분위기가 풀어졌던 경우도 있었으니까. 만나기 전 혹여 불편하지 않을까,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대화가 생각보다 즐거운 분위기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속 깊은 이야기로까지 이어지면 대화를 통해서 내가 몰랐던 상대방의 생각, 성격들을 새로이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


사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대화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내 생각을 메모하고 정리하는 것이 사실 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언제부터 나에게 이런 버릇이 생긴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건 아마도 대화하는 중간중간 느껴지는 어색한 침묵, 기류 때문일 것이라 짐작해본다. 그 어색함 속에서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생각 속에서, 아니면 혹시 나와의 대화가 재미없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시작된 버릇이지 않을까. 내가 지루하고 말 못 하는 사람인 것을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건 나는 이렇게 미리 대화의 내용을 준비해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 나름의 장점이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불편해하는 주제, 말하고 싶지 않은 주제들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가끔 눈에 띌정도로 불편한 표정을 짓는 경우들을 종종 보기도 했으니까. 미리 어떤 이야기를 할지 정리하다 보면 그 사람이 불편 할만한, 상처받을 만한 이야기를 대화 속에서 배제시킬 수 있다. 괜히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배려할 수 있는 나름의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버릇 중 이 버릇은 좋아하는 편이다.


자주 만나고 편한 사람, 굳이 어떤 말을 해야겠다 생각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 있다. 아주 소수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만남에, 대화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내가 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을 하다 중간에 가끔 멍 때린다는 것을, 대화 중 말을 까먹거나 단어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기에, 그래서 나를 이해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에 아마 두려움을 덜 느낄 수 있는 것이지 아닐까. 나의 허점을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어떤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한 가지 깨닫게 된 점이 있다. 친분관계만을 믿어선 안된다는 것. 친하더라도 내 마음을 다 알고 있을 거라 착각하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그 관계는 더 멀어질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다.



나에겐 무척 친하고 의지했던 친구 한 명이 있었다. 오랜 시간 알고 지냈기에 너무 편하고 의지했던 그런 친구. 그 친구와의 대화는 항상 즐거웠다. 내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가끔은 내 마음속에,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 것처럼 나의 이야기를 잘 이해해주고 내 맘과 같았던 친구였기 때문에. 그 친구와의 대화 패턴은 항상 비슷했던 것 같다. 흔히들 말하는 '속 깊은 대화'를 많이 나누었었다. 내가 가장 고민되고 힘든 것들, 그래서 정말 가까운 관계가 아니면 혹시나 나를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두려움에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그런 주제로 대화를 많이 나누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와 나누는 대화 시간이 항상 좋고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었다.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내뱉을 수 있고 받아주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마냥 좋은 건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속 깊은 이야기를 한다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두려움을 공유한다고 해서 그것만이, 그러한 아픔만을 공유하는 대화가 전부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 자신의 아픔을, 상처를, 고통을 나누는 동안 정작 친구와 나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일상을 나누지 않게 되어버렸다. 오늘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음식을 먹고, 어디를 갔다는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를 점점 등한시하게 되어버렸다. 조금 시시한 이야기라 치부하면서. 우리는 이런 이야기 나누지 않아도 친하다는 믿음 하나로 말이다. 하지만 서로의 고통으로만 이루어진 대화를 이어가게 되면 우리의 삶을 온통 걱정투성이가 되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점점 그런 대화를 나누는 만남을 멀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사실 나는 대화하는 동안엔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만났다는 것이 기뻐서, 다행이라서 더 주위를 둘러봐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 같다. 한동안 그 친구와 만남을 갖지 않고 멀리 떨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아무리 친하다 믿어도 모든 주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과거 그 친구와의 대화를 되돌아보면 난 그 친구에게 참 무심했던 것 같다. 그래, 무심했다는 말이 딱 맞다. 나는 그 친구와의 만남에서, 대화에서 참으로 둔하고 무심하고 무덤덤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믿었기에, 그래서 나와 똑같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정작 그 친구의 주변 일들을 궁금해하지 않고 당연한 듯이 여겼던 것 같다. 정말 이야기하고 싶다면, 꼭 전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면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을 거라 믿으면서 아니, 조금 자만하면서. 대화를 하면서도 서로를 조금씩 잃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바보같이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나는 그 친구와의 대화 이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조금 어려워졌다. 아니, 조금 무서워졌다. 나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는지, 혹 내가 이상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대화하는 내내 살피게 되고 그와 동시에 나는 지금 충분히 너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고, 그 생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표현하지 않았지만 나는 충분히 너의 말을 기억하고 궁금해하고 있다고 더 노력해서 표현하려 애썼던 것 같다.


서로에게 좋은 대화는 어떻게 하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일까. 끝내 그건 '진심'과 연결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수많은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 중 가장 기분 좋고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대화는 끝내 마음이 통했다는, 내 진심과 같다는 느낌에서 비롯되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때의 나를, 그때 함께 나누었던 너와의 대화를 가끔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을 너 역시, 그대 역시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누군가를 만나기 전 준비를 한다. 마음속에 약간의 다짐을 하면서. 너와의 대화 속에서 내가 부족했던 것을, 그리고 네가 나에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내 생각들을 담아 만났던, 만나고 있는, 앞으로 만날 너에게, 그대에게 좋은 대화의 느낌을, 좋은 관계의 느낌을 서로 느낄 수 있길 바라면서.






그래서 오늘도 나는 메모를 하고 이렇게 글을 쓴다. 메모를 하고 글을 쓰며 내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전하고 싶었던 진심을 정리해보면서. 그리고 그 진심이 통할 수 있도록, 믿으면서, 기대하면서, 바라면서 너를, 그대를 만나러 간다. 많고 많은 대화 속에 어떤 것이 딱 정답이다 말할 수는 없을 테지만 네가 말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너의 눈을 바라보면서 그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고, 그리고 네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까먹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그러니 나에게 너의 숨겨놓은 말을, 진심을 말해주어도 된다고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 역시 너에게 더 좋은 말을 할 수 있게, 더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그래서 우리의 만남이, 앞으로 이어질 시간이 차곡차곡 잘 쌓여 더 이상 불편해하지 않고, 어색해하지 않을 그런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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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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