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펼쳐낸 세계가 어느 한 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생각.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글이 써지지 않았다. 오늘은 왠지 쓸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들어 부리나케 노트북 앞에 앉아 열심히 타자를 두드리다가도 이내 내가 무슨 말을 쓰려고 했는지 이야기를 까먹거나, 급격히 의욕이 떨어져 멍을 때리다 화면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글도 거의 서른 번의 시도 끝에 쓰게 된 글이다. 사실 이 글도 생각했던 대로 끝맺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글을 쓰려고 한 이유는 사실 별거 없다. 엄청난 깨닭음을 얻어 이건 무조건 글로 남겨야 한다, 라는 대단한 마음 같은 것도 없다. 그저 대책 없이 흩어져 있는 마음을 조금 쓸어볼 요량으로, 알 수 없는 이 헛헛함을 조금 정리해볼 생각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다소 단순한 의미가 담겨있다.
책을 내고 4개월가량이 지났다. 벌써이기도 하고, 아직이라고 느껴지기도 하는 4개월이었다. 책이 거의 마무리되어가던 당시, 한참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사실 책이 나온다는 것을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 출간일이 확정되고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게 되었을 때, 그제야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책이 나오면 굉장히 기뻐할 줄 알았다. 드디어 끝났구나, 같은 후련함이 먼저 터져 나올 줄 알았다. 아니면 수고했다, 기특하다 같은 뿌듯한 마음이 차오를 줄 알았다. 그러나 처음 책을 받아 들었을 때, 당황스러울 정도로 정반대의 감정이 터져 나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 같은 것이 울컥하고 차올라 정말 오랜만에 꺽꺽 소리를 내며 울어버렸던 것이다. 하필 책이 집에 도착한 날 엄마와 다투는 바람에 감정이 더 격해져 꺽꺽 소리까지 내며 울어버린 걸 수도 있겠으나, 지금도 괜스레 코 끝이 찡해지는 것을 보니 그 이유만은 아닌 듯하다. 한동안 꺽꺽 소리를 내며 울다가 또 인증샷은 남기겠다고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사진을 찍은 것이 내가 처음 책을 대면한 순간의 모습이다. 유난 떨고 싶지 않다, 라는 마음을 먹어서 인지 모르겠지만 책을 대하는 내 마음은 책을 처음 대면했을 때가 가장 격렬했다. 서점에서 내 책을 처음 발견하게 되었을 때도, 지인이 책을 봤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줬을 때도, 연락이 뜸했던 사람에게 축하한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도 생각보다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아니, 덤덤함을 뛰어넘어 책을 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큰 일이라도 나는 사람처럼 굴기도 했다. 누군가가 내 책, 이야기를 꺼내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 황급히 이야기의 주제를 돌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행동했던 이유에는 약간의 자격지심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유명하지 않은, 책을 냈는지도 모를,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책을 낼 수 있는 수준의 글인가, 같은 자기 검열이 책을 볼 때마다 스멀스멀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자랑스레 떠벌리지는 못하더라도 떳떳하지 못한 책은 아닌데, 나는 자주 책 앞에서 작아지곤 했다.
유명한 작가가 아니다 보니, 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알 수 있는 방법이 굉장히 드물다. 사실 내 책을 몇 명이나 읽었는지도 잘 모른다. 그나마도 주변 지인들에게 책에 대한 감상을 조금 들을 수 있었는데, 각자 책에 대한 감상이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공통적으로 들었던 말이 하나 있었다. '언니, 책을 읽는 내내 언니 목소리가 들렸어요', '읽을 때마다 언니 말투가 떠올라서 신기했어요', '누나가 옆에 있는 것 같았어요'. 마치 서로 말을 맞추기라도 한 듯이 이러한 말을 해주는데,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참 묘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너무 나 같은가, 같은 생각이 들어 기분이 묘했다고 해야 할까. 당연히 내가, 내 생각으로 써낸 글이니 나 같은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분에 넘치게 나를 보여주는 건가 싶었다. 적당히 나,를 숨길 줄도 알아야 하는데 너무 단순 무식하게 나를 드러내버렸나 싶기도 했다. 내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데 뭐 어쩌겠는가 싶다가도,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이 정도면 그래도 나쁘지 않다 라는 생각이 수없이 교차했다. (이렇게 글로 써놓고 보니 다중이 같다.)
개인적으로 책에 대한 반응이 가장 웃겼던 건 아빠였다. 어찌하다 보니 책이 나온다는 사실을 아빠에게 가장 늦게 말하게 되었는데, 말하게 되었을 때가 이미 책이 출간되고 난 뒤였다. 그러니까 이미 책이 우리 집에 배달이 되고도 한참이나 지난 뒤에야 아빠에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꺼내게 된 것이다. 사실 몇 번 이야기를 꺼내야지, 타이밍을 보긴 했는데 계속 어긋나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좋게 생각하면 이미 책이 나온 뒤니까, 나름 증거품처럼 책을 보여줄 수 있으니 말 뿐인 것보다 효과적인 알림, 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아무튼 아빠에게 처음 책을 보여주었던 순간으로 되돌아가 보자면, 아빠가 퇴근을 하고 한참 TV를 시청하고 있을 때였다. 내 방 책상 위에 쌓아두었던 책을 한 권 들고 아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주 무심하게 아빠를 부르며 책을 건네주었다. 아빠는 뭐지? 하는 얼굴로 책을 쓱 한 번 보더니 내 얼굴을 쳐다봤다. 책 나왔어, 내 책. 큰 물음표 같은 표정을 짓던 아빠는 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올~". 그리고 끝이 났다. 책을 처음 본 아빠의 반응은 오올~ 로 정말 끝났다. 정말 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래, 새삼 참 우리 아빠이지 싶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가장 반응이 핫했던 사람은 우리 엄마였다. 사실 출간을 준비하다 한 번 엎어졌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엄마도 나도 책을 준비하는 내내 눈치 보는 시간이 많았다. 혹시 부정이라도 탈까 봐 서로 쉬쉬하면서. 그렇게 꽁꽁 싸매며, 끙끙 앓으면서 썼던 글이 책으로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엄마는 나보다 더 기뻐하셨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이 우셨다. 왜 울었을까. 언제 한 번 물어본 적이 있다. 왜 자꾸 우냐고. 뭐 때문에 우는 거냐고.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자꾸 그 문장이 머리에서 안 떠나간다고. 이렇게 말하고는 또다시 우셨다. 나는 그 문장이 무엇인지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왠지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더 묻지 않았다. 그렇게 나보다 핫한 반응을 보였던 엄마는 한동안 아침마다 자고 있는 나를 깨워 사람들의 리뷰를 읽어주기도 했다. 다예야, 어떤 사람이 이런 글을 썼어. 다예야, 오늘 보니까 리뷰가 두 개나 더 올라왔더라, 읽어봤니? 사실 리뷰가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두렵기도 했다. 내 글을 너무 유치하다 생각할까 봐, 이런 걸 글이라고 썼나 싶을까 봐 리뷰를 읽지 않았는데, 엄마 덕분에 웬만한 리뷰는 다 읽어봤다.
이제 막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썼던 글이 하나 있다. <그냥 그게 나 같아서, 그 책이 너무나도 나 같아서.(https://brunch.co.kr/@april2r/18)>라는 글이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방향조차 세우지 않았을 때 썼던 글인데, 요즘 내 상황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서 새삼 다시 읽어보았다. 지금보다 많이 투박하고 정돈되지 않은 글이지만, 이 글은 마치 지금의 내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냥 그게 나 같아서. 그 책이 너무나도 나 같아서.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유명해진 책, 영화화되면서 사람들이 찾는 책, 아니면 유명한 작가가 낸 신간 책. 그 수많은 책을 사이로, 그래도 어딘가 흔적을 내려고 열심히 붙어 있는, 그 자리에 조용히 존재하고 있는 그 책의 느낌이 나 같아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래도.. 그래도 자기 나름 열심히 스스로의 흔적을 남기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모습이 나 같아서.. 그래서 애착이 간다고 해야 하나?"
말을 끝낸 뒤 괜스레 눈을 동그랗게 뜨며 친구를 쳐다보는 여자. 친구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여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여자는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말한다.
"굳이 살아가면서 내가 살고 있다고, 존재하고 있다고 흔적을 남길 필요가 있을까? 그게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람? 그런 생각. 그런데 요즘엔, 그래도 어쨌든 간에 '흔적'이라는 걸 남겨보자고 생각해. 설사 아무 의미가 없더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반대로 생각하면 굳이 의미를 담아서 흔적을 남길 필요는 없잖아. '흔적'이라는 게 사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건데."
사실 조금 의기소침해 있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책에 대한 반응이 없을 줄 몰랐는데, 생각보다 책에 대한 반응이 너무 없어서. 내가 열심히 한 게 다 헛수고였던 걸까 혼자 못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과거의 나는 그저 내 이름이 적힌 책 한 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거라고, 행복할 거라고 말하고 있는데, 정말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건가 싶었다. 하나를 가지니 둘 또한 갖고 싶어 하니 말이다. 정. 말.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때. 정. 말.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쓰고 있을 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꿋꿋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과거의 나는, 그때의 나는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냥 그런 거 있잖아. 내가 펼쳐낸 세계가 어느 한 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런 책이라도 좋을 것 같아. 왠지 그런 거 있잖아, 우리끼리 아는 책이라도 뜻깊은 일을 한 것이라 말한다. 과거의 내가 전하는 위로를, 그때의 내가 건네는 손을 붙잡으며 아무도 읽지 않지 않을 글을 다시금 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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