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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선택한 장난감

2025.11.19 (10m 28d)

by 슈앙

우리 집은 아기 키우는 집치곤 장난감이 매우 매우 적은 편이다. 플라스틱 장난감은 없다시피 하고 나무 장난감도 거실 한 구석에 모아두면 아기 있는 집 같지 않다. 대신 장난감도서관에서 플라스틱, 나무 가리지 않고 빌려와서 다양한 놀잇감을 제공하고 있다. 양갱이는 어떤 것이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살펴보며 작은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만져본다.

10개월 아기가 있는 집의 장난감


내가 제공한 장난감 외에도 양갱이가 선택한 장난감도 다양하다. 워낙 다른 집에 비해 아기용 놀거리가 없어서 그런 양갱이가 찾은 장난감은 색다르다.


1. 식기세척기


식기세척기 문 위에 올라타는 것을 좋아한다. 문을 열면 부리나케 와서 그 위에 올라타 자리 잡고 논다. 얼마 전부터는 조금만 열려 있어도 직접 문을 열어 올라탄다. 혹은 문을 닫았다 열었다 하기도 한다. 문에 있는 세제 넣는 작은 통에 손가락이 꼈는지 찌잉 거리기도 하는데도 매번 만지작거린다. 몇 주 전엔 문에서 떨어져 머리 쿵하는 바람에 남편이랑 실랑이도 벌였었다. 안에 있는 칼을 꺼내 들기도 하는 등 큰 일 날뻔한 적도 있었다. 더욱 조심하되 못 올라가게 하진 않는다.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올라타기는 대근육 발달, 세제통을 만지작하고 그릇을 꺼내는 소근육 발달, 서랍을 밀며 수납바퀴를 관찰하는 관찰력을 키우기에 좋은 장난감이라 생각한다.


2. 광파오븐기

광파오븐기에 음식을 넣어 시작버튼을 누르면, LED창에 뜨는 움직이는 숫자를 보러 멀리서도 다다다다 기어 온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숫자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작동하지 않을 때는 발끝으로 서서 손을 뻗어 톡 튀어나온 둥근 버튼을 눌러보려고도 한다. 버튼을 돌리면 숫자가 바뀌는데 이만한 숫자 놀이 도구도 없는 거 같다.


3. 진공청소기

오늘 양갱이의 활동량이 좀 적었다 싶으면 청소기를 밀면 된다. 청소에 방해가 될 정도로 졸졸졸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로봇 청소기와 친해지면 그만한 운동시키는 도구가 없겠지만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도 못 한다. 되려 로봇 청소기가 청소하는 내내 옆을 지켜줘야 해서 그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4. 폴딩도어

최근 추워지면서 여름 내내 접혀있기만 했던 폴딩도어를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다. 고정되어 있는 줄만 알았던 유리가 움직이니, 엄청 신기했나 보다. 움직임을 인지하고 나서 양갱이는 직접 밀면서 접기도 하고 접힌 폴딩도어를 펼쳐보려도 한다. 펼쳐진 폴딩도어를 접을 때는 걸음마 보조기 역할을 한다. 물론 유리창은 양갱이 침과 손바닥 자국이 범벅이다.


5. 빨래 건조대

배밀이 때부터 좋아하던 장난감이다. 빨래 건조대 다리를 밀고 당기더니 잡고 일어서기도 했다. 그러다 빨래건조대랑 같이 넘어져 울기도 했지만, 자기 몸에 몇 배가 되는 물건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는 게 뿌듯한지 여전히 양갱이의 최애 장난감이다. 큰 이불이 걸려 있으면 그 안에 들어가 있기도 하는데 아기 텐트 대용으로 딱이다. 빨래를 손에 잡히는 대로 빼내 휘휘 돌리며 신나게 노는 모습은 이제 그러려니 한다. 손에 잡히는 곳에 빨래를 넌 내가 잘못이지.




바닥이 쓸데없는 물건이 굴러다니는 꼴을 볼 수 없어 얼른얼른 치우다 보니 양갱이가 발견한 장난감은 대체로 크기가 크다. 흔한 국민템 장난감 하나 없기에 위험하지 않는 선에서 허용하는 편이다. 게다가 도저히 집안이 형형색색의 장난감으로 꽉 채워진 광경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기적인가 고민하던 중에 요즘 아기들이 과도한 자극에 노출되어 되려 집중력이 떨어뜨린다는 의견이나 뉴스가 반가웠다. 사실여부를 떠나 그냥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발도르프 교육이라는 게 있고, 비싸도 숲유치원에 보내는 부모들이 있는 이유가 이런 데 있지 않을까.


음?! 건전지가 필요 없는 저자극의 나무 장난감만 고집했건만, 양갱이가 찾은 장난감이 대체로 전기로 작동되는 플라스틱이다. 지어 남편은 양갱이가 6살만 되면 같이 프라모델할 생각에 벌써부터 들떠있다. 이 두 남자가 나랑 손발이 안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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