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4 (11m 2d)
천기저귀는 너어무 힘들다. 삶고 말리고 개서 정리하는 과정이 힘든 게 아니다. 도망 다니는 양갱이를 끌어 눕히고 쫓아가서 기저귀 벗기고 씻기고 다시 입히는 것이 힘들다. 심지어 노동 강도가 나날이 세어진다. 더 이상 휘파람 소리도 장난감 유혹도 먹히지 않는다. 무조건 엎드려 기어가버린다. 언제 뒤집나, 언제 기어 다니나 왜 기다렸을까. 이렇게 쏜살같이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버릴 것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리라. 하루에 수십 번 양갱이 엉덩이를 쫓아다니다 보면 그냥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비싼 친환경 일회용 기저귀를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구를 지키는 게 아닐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하루하루 버티던 중에 전화영어 선생님인 Vibes는 첫째 딸을 돌 전부터 배변훈련을 시작해서 15개월에 뗐다는 얘기를 했다. 아마 potty training (배변훈련)이라는 단어를 가르쳐주려고 시작한 대화였는데 나에겐 단비 같은 이야기였다. 안 그래도 시어머니는 3형제를 모두 돌 전에 기저귀 뗐다고 하셨고, 친정엄마는 3개월 때부터 배변훈련 시작하라고 독촉하셨었다. 기억의 왜곡이라고 생각했고 과도하다 여겼다. 유튜브의 어떤 전문가도 돌 전에 기저귀 떼는 것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빨라도 18개월이었고 만 3살에도 기저귀 못 떼는 아이도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의사 전달이 가능하고 방광에 오줌을 모아 참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겨야 배변 훈련이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게다가 일회용 기저귀 기능성이 나날이 좋아져 아이도 엄마도 큰 불편함이 없어서 만 3살까지도 기다려줄 수 있는 것이다.
천기저귀를 쓰는 입장에서 최소 18개월까지 이 짓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제 곧 걸을 텐데 그때는 뛰어다니는 애를 잡아끌어다 갈아야 한다는 것 아닌가. 생각만으로 머리가 다 아프고 어깨가 욱신거린다. 더 이상 못 참겠다. 그래서 Vibes, 시어머니, 엄마의 조언과 tip을 기반으로 오늘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Vibes는 매 시간마다 변기에 앉혀 sh~ 소리를 내며 오줌을 누게 했다고 했다. 어머님은 우선 언제 똥오줌을 싸는지 기록했다가 그 시간쯤에 변기에 앉히거나 플라스틱통에 오줌 누게 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굴러다니던 플라스틱 통 하나를 주셨다. 우리 집에는 플라스틱 용기가 없기에 받아왔다. 엄마는 수시로 바지를 벗겨 플라스틱통을 대고 5분 정도 sh~ 소리를 냈다고 하셨다. 당연히 초반에는 잘 안되니 빨랫거리도 많이 나오고 바닥에 오줌이 흥건해지겠지만, 2달 정도 고생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래! 해보자!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기 힘들 때도 모유수유했고 하루에 열 번 넘게 설사하는 것도 천기저귀로 해냈다. 이것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다.
계획은 이랬다. 우선 이번 주에 언제 싸는지 기록하여 정보를 수집한 뒤 다음 주부터 기저귀를 벗기고 내복바지만 입히기로 했다. 어머님 말씀으론 내복 바지 20개는 있어야 한단다. 그래서 어제부터 당근에서 내복바지 사모으고 있다.
역시! 계획대로 안된다. 막상 기록하려니 기저귀를 차고 있어서 언제 쌌는지 알 수가 없다. 바닥이 흥건하거나 바지가 젖은 게 보여야 알 수 있겠다 싶어 그냥 천기저귀를 벗겨버렸다. 그런데 팬티가 아닌 내복바지만 입히자니 박음질선 때문에 불편할 거 같아 뒤집어 입혔다. 꼴이 우습다.
이제나 저제나 양갱이 앞에서 한 시간 넘게 오줌 싸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영상통화로 편하게 구경하시던 엄마는 화장실 가서 sh~해 보라고 하셨다. 말씀대로 했다. 5분 동안 sh~ 했지만 소용없었다. 다시 바지 입히고 거실에 놓아뒀더니 잠시 뒤 바닥이 흥건해졌다. 그 뒤로 양갱이는 4번 더 오줌을 쌌고 나는 4번 바지를 갈아입히고 바닥을 닦았다. 밥 먹자마자 의자에 앉은 채로 싸기도 하고, 분유 먹다가 누운 채로 싸고, 장난감에 집중하면서 선 채로 싸고, 싸고 나서 몇 분 뒤에 싸기도 한다.
확실히 언제 쌌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양갱이가 오줌 위에서 참방참방 거리며 더 튀기 전에 얼른 씻겨 바지 갈아입히고 바닥을 닦았다. 오줌 누는 시점을 바로 알아챌 수 있다는 문제는 해결했는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한바탕 치우고 나면 기록하는 것을 까먹는다는 것이다. 오줌 뒤처리하는 게 익숙해지면 기록할 여유가 생기겠지.
음! 의외로 천기저귀 가는 것보다 바지 갈아입히고 바닥 닦는 것이 노동 강도가 훨씬 약하다. 단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 9kg 넘는 애를 쫓아가 들고 와서 눕히기를 수 번 반복하는 것이 확실히 힘이 많이 쓰인다. 그에 비해, 내복바지는 벗기고 입히기도 쉬운 데다 애를 들고 기저귀 가는 곳으로 갈 필요가 없다. 바닥은 준비된 물걸레로 닦으면 되니 힘 쓰일 일이 훨씬 줄었다. 이건 정말 예상 밖이다. 다행이다. 좋은 점을 찾았다.
아직 어떻게 하는지 애매한 것이 많다. 무엇보다 똥 싸고 온 바닥 똥칠하면 어떡하지? 아.. 모르겠다. 우선 닥치고 나서 생각할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