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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앙 Jan 22. 2024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고요?

ESG 사업해 보겠다고 전배한 새로운 팀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일을 시작한 지 이제 3주가 지나가고 있다. 초반 어색함을 덜어 내는 데는 밥 같이 먹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라 생각해서 웬만하면 팀원들과 심 먹으려 하고 있다.


 두 번째 점심이었나.. 함께 일하게 된 선배와 점심 먹으러 나갔었다. 밥 먹을 때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한 것을 눈치 못 채다가 커피 마실 때 알아채고 화들짝 놀란다.


"이거 뭐예요? 텀블러를 들고 온 거예요?"


 기다렸다. 이 반응을!


"제가 실은 환경주의자거든요~....."


 그제야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다는 것과 그래서 ESG 관련 팀에 온 거라고 얘기를 시작. 작년 팀원들에겐  이미 익숙한 모습이라 한동안 하지 않았던 나의 환경주의자 코스프레 스토리 간만에 하니 신난다.


  새로운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텀블러 들고 다나의 모습을 보며 굉장히 신기해하고 궁금해한다. 이게 그렇게 크게 반응할 일인가 싶을 정도다. 집에서는 어떤지, 왜 시작하게 됐는지, 남편은 비슷한 지도 궁금해한다. 그럼 나는 또 신이 나서 막 얘기한다.


 이미 이 과정을 거친 사람 나 대신 설명해주기도 한다. 다들 대단하다며 어떻게 매번 씻어서 다니느냐며 쉽지 않다고들 한다.


 요 며칠 여러 차례 얘기하다 보니 텀블러 들고 다닌다는 것이 렇게 대단할 일인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지금 지구가 뜨거워진다고 난리인데 고작 텀블러로 커피 마시는 변화도 힘들다는 건가.


응! 힘들다.


 개인이 환경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첫 번째 보통 텀블러를 언급한다. 마치 가장 간편하게 실천할 수 있는 거처럼 말이다. 아니다. 습관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절대 쉽지 않고 난이도가 높은 단계임을 이번에 다시금 깨달았다.


 폰이나 지갑은 그나마 주머니에 쏙 들어가기라도 하지,  텀블러는 손에 쥐고 다닐 수밖에 없다. 작은 가방에 매고 가면 되지 않냐고? 마침 점심 먹으러 나가는 그 순간, 그 자리에 텀블러가 깨끗한 상태로 작은 가방에 잘 들어가 있으면 그나마 가능하겠다.


 모닝커피 한 잔 한다고 이미 텀블러를 썼으면 점심때 가져갈 텀블러가 없다. 2개 쓰면 되지 않냐고? 설거지 거리만 늘어날 뿐 상황은 똑같다. 책상 위에 그날 먹은 커피컵 치우지 않아 하루 종일 쌓이는 경험이 있지 않은가. 일회용 컵 버리는 것도 제 때 하지 않는데 텀블러 개수 늘린다고 해결될 일은 아 듯하다.


 게다가 텀블러가 의미 있게 쓰이려면 1000번을 써야 한다 과학적 뒷받침까지 있다. 과도한 텀블러 구매로 인한 그린 워싱을 피하자는 취지였겠지만 결국 종이컵낫다는 것으로 귀결키는 게 몸도 마음도 편하다.


 이런 생각을 이기심으로만 해석할 일이 아니다. 이는 습관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반영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 습관이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금방 생겼냐고? 절대 아니다. 잊지 않고 챙기는 데 2년이 걸렸다. 이제 회사 점심 때 챙기는 건 거의 습관화되었지만 주말 외출할 때는 여전히 까먹는다. 


 이렇듯 부족한 게 많기에 주변 사람들에겐 항상 말한다.


 "전 취미처럼 즐겁게 하는 거예요. 제 눈치 보지 마세요~"


 휴지 쓰거나 밥을 남길 때 자꾸 내 눈치를 보길래 안심시키려 하는 말이다. 아량 넓은 마음으로 계몽하지 않은 이들에게 부담주지 않고자 한 말인데 문득 깨달았다. 내가 되려 사람들 눈치를 보고 있었다. 텀블러가 너무 더러운데 미리 씻어 놓지 않아 종이컵 써버리까 싶어도 이미 내뱉은 말이 있어서 점심 먹으러 가기 직전 부랴부랴 화장실 가서 텀블러에 든 음료수만 얼릉 버리고 챙겨간다.


 분에 어제 먹은 커피가 묻은 텀블러에 오늘의 커피를 마신 게 한 두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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