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I

2025.08.29 (8m 7d)

by 슈앙

회사에서 회의하다 보면 항상 ROI를 따진다.

“ROI가 맞아?”

“ROI가 충분해?”


ROI : Return On Investment, 투자대비수익률


육아 ROI는 어떨까.

회사에서 육아 ROI 검토회의를 한다고 상상해 봤다. 다들 팔짱 끼고 대놓고 이걸 왜 하겠다는 거지라고 말하겠지. 본인은 여기에 개입하지 않겠다며 한 발 물러설 것 같다.


정자에서 할머니들의 그 시절 아이들 키운 이야기를 들으면, 하나같이 놀라울 정도로 최선을 다하셨다. 매일 육아일기를 쓰기도 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곳에 데려가 많은 경험을 하게 하고, 예민한 아기 걱정되어 잘 때도 먹을 때도 항상 기도문을 외고, 사춘기 아들 엇나갈까 편지 써서 가방 한켠에 넣는 등 듣다 보면 대단하다 싶다. 천기저귀 빨고 포대기에 업고 다니던 시절에 말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아침마다 정자에 나와 우두커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양갱이와 놀아주길 기다리니, 참 거저 키운다 싶을 정도다. 동네 분들만큼 갖은 정성과 온마음을 다해 투자하면, 스티븐 잡스급은 아니라도 의사나 판사는 되어야 할 거 같다. 하지만, 우리 동네는 자식들이 의사나 판사인 부모들이 사는 동네는 아니다. ROI 가 낮아 보인다.


나만 해도, 우리 부모님의 나에 대한 ROI는 많이 낮다. 7살 때부터 영어를 시켰지만, 1년 어학연수 다녀온 수준의 영어보다도 못하다. 스케이팅, 피아노, 바이올린, 쿵후, 수영 등등 각종 예체능 학원도 다녔지만, 다룰 줄 아는 악기 하나 없고 유연하지 못한 몸으로 자연분만하는 바람에 휠체어 타고 다닐 정도로 근육통이 씨게 왔다. 온 마음을 다해 키우신 정성보다 맞은 기억이 더 크다. 임원급으로 승진할 생각은 꿈에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일 뿐이다.


양갱이에게 한 달에 4~50만 원 정도 쓴다. 천기저귀 쓰고 웬만하면 당근에서 중고용품을 이용하는데도 이 정도다. 지금은 내 품 안에만 있으니 50만 원 안짝에서 해결이 되지만, 크면 클수록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다. 지인 중에는 중고등 아이들 사교육비만 4~500만 원 쓰는 집이 허다하다.


몸은 어떤가. 아무리 늦은 나이에 낳았다 하지만, 겨우 하나 낳아서 기르는데도 너덜너덜하다. 타이핑 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왼쪽 손목이 저린다. 목이 뻐근하다. 앉았다 일어날 때 무릎이 쑤신 느낌이 여전히 당황스럽다.


지금이야 배시시 웃는 얼굴과 잘 먹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지만, 나중에 지 잘났다고, 지 혼자 큰 줄 알고 사춘기랍시고 반항하면 얼마나 어처구니없을까. 그 와중에 사고 나거나 아프면 실랑이와 감정 소모로 인한 스트레스는 그나마 낫을지도 모른다. 생후 80일에 요로감염으로 입원한 양갱이를 돌보느라 몸도 마음도 지쳤을 때를 생각하면 또다시 같은 경험은 하기 싫다.


돈, 몸, 마음을 양껏 투자해도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본전인 걸까. 육아에 ROI를 따진다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일까. 그저 양갱이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충분할까. 투자한 만큼 똑똑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나는 양갱이가 어떤 삶을 살든 만족할까. 정자에서 들은 할머니들의 ROI 안 나오는 육아 스토리에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양갱이를 육아하는 마음을 되돌아보았다. 좀 더 똑똑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다양한 장난감을 던져주고, 좀 더 빨리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에 발달상황을 체크한다. 평소보다 적게 먹거나 적게 자면 뭐가 잘못 됐는지 복기하고 고민한다. 노래 불러주고 책을 읽어줄 때, 양갱이와 재밌게 시간을 보내려는 마음보다 많은 어휘에 노출되어 말을 빨리 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결국 뉴런의 시냅스가 더 촘촘하게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ROI가 낮은 나와 달리 양갱이의 ROI는 높길 바란다. 욕심일까.


욕심이다. 그래서 육아 ROI는 높다는 결론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이기적인 마음과 좁은 시야로 보면 육아 ROI가 낮아 보이겠지만, 실은 아니다.


양갱이는 알아서 잘 크고 있다. 양갱이는 혼자 수십 번을 넘어지고 다시 도전하며 뒤집고 되짚고 기고 일어선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몸속에서 수많은 호르몬들이 만들어지고, 매일 수천억 개의 뉴런이 촘촘하게 이어진다. 직립보행을 향해 근육은 단단해지고 있다. 나는 입히고 먹이고 재우기만 하면 된다. 내가 해주는 것에 비하면 아기는 어마어마하게 성장하고 있다. 양갱이가 떼를 쓰게 되는 시기와 사춘기를 겪는 과정 또한 한 인간의 성장 과정이지 않을까.


또한, 한 생명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은 실로 엄청난 경험이다. ROI의 수익(Investment) 범위를 양갱이의 성장뿐 아니라 부모로서의 나의 성장까지 포함한다면 엄청나게 높은 ROI 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정리가 된다.


그나저나 이제 8개월이다. 앞으로 20년 남았다. 우리나라는 대학 입학나이를 낮출 계획은 없겠지?


8개월 기념 촬영
8개월 기념 촬영 메이킹
장난감 도서관에서 빌려온 터널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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