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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찬선 Feb 02. 2018

못해도 괜찮아

봄을 기다리며

봄을 기다리며  

  

봄 날 같이 따뜻했던 지난 달 중순 수암봉 자락이 굽이는 곳으로 교회를 이사를 했다. 많은 짐들을 놓고 오거나 버렸지만 10여년묵은 짐들이 12톤 이  넘는다니 할 말이 없었다. 이삿짐을 나르던 사장님께 인사말로 “이삿짐 중 나르기 제일 힘든 짐이 무엇이죠?” 물었더니 책과 화분이라고 대답했다.      

난 정원을 가꾸는 것을 좋아한다. 씨앗을 뿌리고 새싹이 움터 오를 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거친 흙을 파내어 곱고 부드럽게  부순 다음 그곳에 씨앗을 뿌리고 나무를 심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이사하기 전 교회에는 두 평정도 되는 작은 화단 두 개가 있었고 5평정도 되는 제법 큰 화단이 한 개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30개 정도의 화분에 꽃과 나무를 심었었는데 이사를 해야 하니 그 화분들이 문제였다.      

또 사무실 책장에는 그 동안 읽은 책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대충 세어보아도 3천권 정도는 될 듯싶은데 오늘 이삿짐을 나르는 분들 고생이 심하리라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차례 이사를 했다. 결혼한 이후로도 집 이사 4번 교회 이사 세 번 총 일번 이삿짐을 꾸렸었다. 이삿짐을 꾸릴 때마다 설렘과 기대가 있었다. 새로운 변화와 도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초등 시절 잦은 이사 때문에 6년 동안 총 7번 전학을 했다고 한다. 어느 해에는 전학을 떠났던 학교로 다시 전학을 오는 기가 막힌 경험도 있었단다.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이사할 때마다 기대감을 가졌는데 그 때마다 실망 또 실망뿐이었단다. 도심지에서 어렵게 살았던 아픈 기억이 이미 어른이 된 아내를 오랫동안 힘들게 했었다.      

이사한 교회는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면 본당으로 들어가는 입구까지 작은 로비가 있다. 그곳은 남쪽을 향해 나 있는 창문을 통해 하루 종일 햇살이 들어온다. 그곳에 이사할 때 가져온 화분들을 줄 세워 놓았더니 나무들이 봄을 만난 것처럼 춤을 춘다.     

2주 동안 이삿짐 정리하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추위가 온 땅을 꽁꽁 얼려버렸지만 별로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날이 풀려 많이 따뜻해 졌다고 하는데  요즘이 정말 다. 새벽에도 고 낮에도 춥고 밤은 말할 것도 없다. 긴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리라.     


겨울은 춥고 길다. 추위는 모든 활동을 멈추게 한다. 숲속의 동물들은 겨울이 되면 활동을 느리게 하거나 아예 멈추고 동면에 들어간다. 나무들은 겨울에 옷을 벗고 모든 활동을 멈춘다.           

 겨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따뜻한 봄을 소망하며 그리워한다. 그러나 이미 겨울은 봄을 잉태하고 해산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겨울 속에 봄이 시작된 것이다. 봄은 긴 기다림을 통해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온다. 봄을 잉태한 긴 겨울을 사랑하고 가꾼 사람들은 봄이 베풀어주는 향연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차가운 겨울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추위를 견딤이 힘들고 어려워도 조금만 더 기다리면 봄은 남풍을 타고 꽃향기를 몰고 올 것이다. 기다림은 우릴 성숙하게 한다. 나무는 봄을 기다리며 뿌리를 돌보고 가꾼다. 봄이 되면 한층 더 두꺼운 나이테를 입고 힘차게 가지를 뻗친다. 태아는 엄마의 뱃속에서 열 달을 기다리며 완전한 모습으로 성장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변화와 성장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겨울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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