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의 경험을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는 5가지 전시 마케팅 사례
최근 전시회를 참가하는 기업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전시회의 참가 필요성에 대하여 회의적 시각을 갖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판매할 수 있는 채널들이 다양해지고, 고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은데, 굳이 전시회를 참가하여 판매나 계약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온라인 마케팅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이 시대에, 전시회는 정말로 불필요한 것인가?
위의 질문에 답을 하려면, 우선 전시회가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쉽게 말해서 전시회라는 것은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나 홍보의 목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의 마케팅 수단일 뿐이다.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하는 수단으로써 전시회는 활용할 수 있는 많은 마케팅 방법 중의 하나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인류가 본격적으로 산업화 시대를 살아온 이후 소비자의 소비 패턴이나 기업 마케팅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시회가 어떻게 변할 것이고, 또 전시회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도 예측할 수 있다.
Industry 1.0 : 대량생산의 시대 -> 견본시의 등장
인류가 물물교환이라는 형태로 시작하여 자신의 모든 제품을 들고 나와 판매하는 형태는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전시회는 제품을 모두 들고 나와 판매하는 형태가 아니라 샘플 등의 견본 제품을 전시하여 계약을 체결하는 이른바 '견본시(見本市)' 형태로서 본격적인 산업 전시회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1851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만국 박람회가 어찌 보면 이러한 오늘날의 무역 전시회의 초기 모습일 것이다. 이때의 전시회는 그야말로 현장에서 전 세계의 바이어들이 모여 제품을 계약하기 위한 목적으로 참가하는 전시회였다.
Industry 2.0 : 매스 마케팅의 시대
대량생산은 대량 공급을 낳는다. 대량 공급은 결국 어딘가 팔릴 만한 시장을 찾아야 하기에, 제국주의의 식민지 확대 정책과도 맥을 같이 하게 된다. 19세기를 지나 20세기 초반의 전 세계 패권 다툼은 이러한 대량 생산된 제품의 수요처를 찾기 위함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제품 공급이 확대되면서, 기업의 마케팅 방법 역시 국지적 수단이 아닌 대규모 마케팅의 기회를 찾게 된다. TV와 라디오 등 전파 매체가 발명되면서 이러한 매스 마케팅은 날개를 달게 되고, 판매를 위한 '광고'가 중요한 마케팅 수단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Industry 3.0 : 온라인 쇼핑의 등장
모두가 지금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우리는 여전히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시대에 살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명은 여러 혁명적 기술발전을 이루어 왔지만 소비하는 방식을 가장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결제 시스템과 연동된 온라인 쇼핑은 수십 년간의 진화를 통해 모바일 쇼핑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본질은 여전히 우리가 무언가를 '구매'하는 것이고, 구매한 물건을 '소비'하는 형태이다.
Industry 4.0 : 공유하고, 구독하다
소비가 미덕이었다면, 이제는 제품과 서비스를 빌려 쓰거나 정기적으로 교체해가며 구독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가 왔다. 아직 한국에서는 활성화가 덜 되었지만 우버나 넷플릭스 같은 형태의 공유나 구독 경제가 점점 화두가 되고 있다. 기술발전이라는 것이 결국 인간이 좀 더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욕망을 채우기 위한 방향으로 진화해간다면, 우리도 필연 이러한 빌려 쓰고 정기적으로 교체해주는 서비스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조만간 소비할 필요가 없는 시대에 와 있음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위에서 굳이 장황하게도 4가지 산업 변화에 따른 소비 패턴의 변화를 살펴본 이유는 결국 기업들이 전시회를 참가하는 목적도 변화할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초창기에는 전시회 참가 목적이 판매하기 위함이었지만, 이제는 소비 패턴이 바뀌었고, 기업들 역시 굳이 판매할 방법이 없어 전시회를 찾지 않는다. 점차 기업과 소비자, 기업과 파트너 간 교류와 협력을 위한 수단으로 전시회를 활용할 것이 분명하다.
점차 변화해가는 전시회 참가 목적에 맞게, 일부 선도적 기업들은 벌써부터 전시회를 판매 목적이 아니라 '교류와 협력'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래의 5가지 사례는 전시회를 통해 고객과의 경험을 확장하는 오프라인 마케팅의 모습들을 정리한 것이다.
1. 고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라 : 핑크퐁
육아하는 집 치고 핑크퐁이나 상어송을 모를 수가 없다. 소위 틀면 나오는 상어송은 심지어 최근 영국 싱글 차트 65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어린이 콘텐츠를 만드는 기업들은 대부분 '애니메이션-캐릭터 완구-캐릭터 라이선스-뮤지컬 제작'의 패턴을 따른다. 이른바 원소스 멀티유즈의 기법을 충실히 따르는 것인데, 핑크퐁의 성공 사례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핑크퐁은 다른 콘텐츠 회사와는 다르게 전시회(유아전)에 참가하여 직접 아이를 둔 부모와 교감한다. 콘텐츠를 사고파는 캐릭터 페어에 참가하는 기업은 많지만 직접적인 소비자들이 방문하는 전시회에서 고객들과 만나는 기업은 많지 않다. 핑크퐁은 고객들이 직접 전시 부스에서 캐릭터와 이야기하고 보고 놀 수 있도록 체험형 마케팅을 통해 온라인의 콘텐츠를 오프라인 전시회로 확대하는 전시 마케팅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2. 구매고객을 충성고객으로 변환하라 : 루이비통
4P 마케팅의 창시자 필립 코틀러는 그의 최신작 '마켓 4.0'에서 연결 후 시대의 고객 마케팅에 대하여 이야기한 바 있다. 'Aware(제품 인식)-Appeal(제품 호감)-Ask(제품 탐색)-Act(제품 구매)-Advocate(제품 추천)의 A5 단계는 고객이 최초 제품 인식단계에서 시작하여 Act의 구매행동 단계에서 끝나지 않고 최종적으로 제품을 변호하거나 추천하는 단계로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패턴을 전시 마케팅으로 잘 활용하는 기업이 바로 루이비통이다.
루이비통은 판매를 위한 마케팅보다는 명품 브랜드의 가치와 구매고객에게 자부심을 부여하기 위한 마케팅 활동에 치중한다. 이른바 A5단계의 가장 최종 목표인 Advocate의 관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루이비통은 최근 월드 투어 형식의 전시회를 기획, 세계의 구매고객을 충성 고객으로 변환시키고 있다.
2017년 6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열린 루이비통의 '여행의 발명' 전시회는 이러한 의도를 가장 명확히 보여준 전시였다. 루이비통은 전시회에서 가방을 팔거나 기념품샵을 만들지 않았다. 오로지 루이비통이 창조한 여행 가방의 역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 구매를 한 고객이건 처음 루이비통을 만나는 고객이건 모두에게 브랜드의 가치와 명품으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루이비통은 전시회를 통해 고객의 로열티를 확보하는 훌륭한 마케팅 방법을 구사했다.
3. 교육과 협력의 장을 만들어라 : E-Bay
이베이는 우리나라의 온라인 쇼핑몰 '옥션'을 인수한 기업이다. 엘론 머스크가 자신이 개발한 결제 시스템 '페이팔'을 수백억 원에 이베이에 팔고 받은 돈으로 지금의 테슬라와 스페이스 X를 창업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아마존과 더불어 전자 상거래의 대표기업으로 인정받는 이베이는 어찌 보면 온라인 쇼핑몰 기업들의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즉 온라인 쇼핑몰의 주인은 쇼핑몰 그 자체가 아니라 쇼핑몰에 입점한 벤더(판매업체)들이라는 점이다. 벤더들은 수수료가 조금만 비싸도 금방 다른 온라인 쇼핑몰로 움직인다. 또한 쇼핑몰 자체의 광고나 프로모션이 약하면 다른 플랫폼으로 쉽게 움직인다. 이베이 역시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와 같은 거대 전자상거래 업체와 경쟁관계에 있다 보니 벤더들과의 관계 구축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베이는 벤더들의 충성심 확보와 판매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E-Bay Open이라는 오프라인 이벤트를 만들었다.
E-bay Open은 벤더들에게 판매 교육과 우수 업체 시상, 전시, 네트워킹 등 다양한 교류와 교육을 목적으로 만든 자체 이벤트이다.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 행사는 벤더들로 하여금 이베이와의 소속감을 높이고 자부심을 갖게 만들어 쉽사리 끊을 수 없는 동맹관계를 구축하게 한다. 이베이는 가장 성공적으로 기업행사를 활용하여 벤더와의 협력관계를 구축한 회사 중 하나이다.
4. 미래를 선도하라 : Apple
애플이 아니고서 누가 IT의 미래를 예측하겠는가?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애플은 그야말로 미래를 창조해왔다. 그리고 그 창조의 무대는 늘 애플의 독자적 이벤트인 맥월드(Mac World)를 통해서였다.
애플은 CES에 참가하지 않는다. 대신 자체 전시회를 만들어 스스로 무대를 창조했다. 모든 회사들이 참가하는 종합 전시회를 버리고 스스로 전시회를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애플만의 기술과 혁신적 파트너들만의 장에서 미래를 선도하기 위함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홀로 1시간에서 2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아이폰과 맥북 에어를 선보였고, 스피치가 끝나면 전시회 부스에서는 시연한 아이폰과 맥북이 생생하게 전시되었다. 애플은 기업이 쇼(Show)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가장 예술적으로 보여준 기업이다.
5. 독자적 기술 생태계를 조성하라 : IBM
AI를 활용한 의료기술 중 가장 진보적인 것으로 인정받는 것은 바로 IBM의 Watson이다. Watson은 자체적인 데이터 분석으로 암 진단에 필요한 지원 역할을 하며 미래 디지털 헬스케어의 아이콘으로 각광받고 있다. IBM은 Watson의 인공지능 기술을 비단 의료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적용시키며 미래 성장 엔진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 IBM은 WoW(World of Watson)이라는 자체 전시회를 개발하였다. WoW는 Watson의 응용분야별로 전시회의 섹션을 구분하여 AI의 활용 분야 및 사례를 즉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구성하였다. 이틀간의 전시회 기간 동안 약 1만 5천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WoW를 통해 IBM은 성공적인 자체 브랜드 전시회를 창조했고, 독자적 기술 생태계 구성 및 AI 시장의 선도적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한 것이다.
전시회가 판매 수단으로써 점차 그 의미를 잃어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온라인 채널이 다양화해지고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변화해가는 상황에서, 더 이상 전시회를 통해 판매나 세일즈 계약을 바라볼 이유가 없다. 전시회는 오히려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해결되고 고객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없어지는 흐름에서, 유일하게 아날로그적으로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이제 전시회 참가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자. 고객과 가장 가깝게 교류하고 만나는 수단으로 전시회는 활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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