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무대 위 포디엄을 치워라.
코로나로 한때 온라인으로만 열렸던 CES가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돌아왔다다. MWC를 비롯한 글로벌 전시회들 역시 예전의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국의 스타트업을 비롯한 기업들도 다시 한번 세계 무대로의 도약을 위한 전시회 참가 준비에 한창이다.
국내는 아직 코로나의 여파로 전시회 시장이 웅크리고 있지만 두바이 엑스포를 비롯한 세계의 무역 전시회들은 다시 한번 손님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중요한 것은 기존과는 다르게 온라인과의 접목을 한층 강화하여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기업들은 전시회의 마케팅이 단순히 부스 준비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점차 이해하고 있다. 전시회의 성과를 위해서도 부스를 벗어나 전시회의 모든 플랫폼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것 또한 이해하고 있다.
부스를 벗어난 전시 마케팅의 기술 중 가장 돋보이는 방법은 투자자와 바이어를 대상으로 스피치 하는 것이다. 이미 CES는 2022년 참가기업을 대상으로 Speech의 기회를 접수, 마감했다. MWC나 IFA, 또는 Slush 같은 스타트업 전시회 역시도 참가기업의 speech opportunity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온라인과 전시회가 결합될수록 스피치를 통한 마케팅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영상을 통한 스피치이건 무대 위의 발표이건 전시회에서 이러한 스피치의 기회를 활용하려면 최소한의 기술은 이해하고 참가하자. 누구나 다 스티브 잡스처럼 할 수는 없지만 대략 몇 가지의 방법만 알아도 슬라이드만 쳐다보며 읽어 내려가지 않고 청중들의 눈을 바라보며 설득할 수 있다.
전시회에서의 발표 기술을 스피치가 아니라 피칭이라고 한 것은 최근의 전시 스피치는 대부분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피칭 형태가 많기 때문이다. 전시회가 투자 이벤트와의 결합이 많아짐에 따라 전시회에서의 피칭 기술은 기업 참가자, 특히 CEO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역량이다.
1. 내 피칭을 듣는 사람이 누구인가?
피칭을 위한 준비의 첫 시작은 발표 자료의 작성이 우선이다. 발표 자료를 만들기 전에 반드시 듣는 사람이 누군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우리는 발표 무대에서 두 부류의 청중을 만나게 된다. 졸고 있는 사람과 웃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등록한 청중들이 어느 직급에 있고, 어떤 직종에 있으며 특히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는 지를 파악하고 자료를 만들어야만 몰입감 있는 발표 자료를 만들 수 있다. 온라인을 통한 영상 피칭도 마찬가지이다. 영상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전에 목표 대상에 맞춘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전시 주최자에게 반드시 내 세션에 참가 등록한 사람들의 정보를 입수하라.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피칭 준비의 첫 시작이다.
2. 이야기하듯 발표하라.
어떤 소설이나 영화를 봐도 처음부터 남녀가 부둥켜안고 울거나 폭탄이 터지지는 않는다. 첫 도입은 이야기의 시작으로서 어떻게 남녀가 만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어벤저스와 타노스가 갈등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어야만 전체 과정을 이해하며 몰입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고등학교 때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배운 적이 있다. 처음부터 제품의 가격이나 스펙을 장황하게 나열해봐야 청중들은 '왜 이 제품이 필요하지?', '이미 다른 회사에서 만들고 있는데 다른 게 뭐지?'라는 궁금증만 생길 뿐이다. 제품의 개발 배경이나 소비자의 고민 등 제품의 스토리를 이해해야 고객들은 스피치가 끝나고 무대 아래로 연사를 만나려 달려올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예전에 아이폰이나 맥북 에어를 론칭할 때의 PT를 찾아보라. 무려 2시간을 혼자 이야기하면서도 한 시간 동안은 전부 다른 회사 제품에 대한 문제점만 쭉 나열한다. 청중은 당연히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럼 애플은 뭐가 다른데?'라는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그 순간, 스티브 잡스는 청바지의 앞주머니에서 아이폰을 집어들고 노란 서류 봉투에서 맥북 에어를 꺼낸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다르지 않다. 이야기에 대한 공감과 그 기대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 그것뿐이다.
3. 발표자는 무대 한가운데에 서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대에 오르면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무대 한 구석의 포디엄(연단) 뒤에 숨어 발표 자료를 읽어 내려간다. 심지어 연설문을 가지고 올라와 그대로 읽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지금 학교에서 시를 낭독하는 게 아니다. 투자자의 눈을 바라보고 투자를 받아내야 하는 이 순간에 그저 슬라이드를 읽어 내려간다면 무슨 설득이 되겠는가? 슬라이드는 발표자를 도와주어야지 무대 위 주인공이 절대로 슬라이드 화면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발표자가 화두를 던지고 0.5초에서 1초 후 슬라이드에 내용이 나타나는 연출이 자연스럽게 발표자에게 몰입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발표자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무대 중앙까지 걸어 나와 청중의 눈을 바라보고, 웃으며, 인사를 한 후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TED나 해외의 유명 피칭 현장을 영상으로 찾아보라. 무대에서의 주인공은 분명 발표자, 그 자신이다. 무대 위 포디엄을 치우고 온몸을 드러내며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효과적인 피칭의 방법이다.
4. 조명, 객석 규모, 화면 크기 등 현장을 파악하라.
Slush나 Viva Tech 등 최근 글로벌 전시회들은 피칭 무대를 별도의 회의실보다 전시장 한복판에 만드는 경우가 많다. 고립된 회의실에서 진행하는 것보다 전시회 부스들 한가운데서 진행하는 것이 훨씬 현장감과 다이내믹한 연출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전시장 한복판에서 피칭을 진행할 경우 단점이 있다. 주변의 소음으로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고, 만약 청중이 100명 이상을 넘어간다면 뒤에 있는 사람들은 슬라이드 화면이 안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피칭 현장을 사전에 파악하고 화면의 폰트 크기나 마이크의 볼륨, 또는 발표자의 의상까지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 피칭 전에 행사 주최자와 사전 세팅 상황을 점검해야 현장에서의 문제점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5. 피칭할 제품과 부스 내 전시품을 일치시켜라.
스피치는 가장 극적인 마케팅의 수단이다. 생전 스티브 잡스의 연설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 제품을 사야 할 것 같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애플은 이 매혹의 순간을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애플의 맥월드 행사에서 아이폰과 맥북, 아이패드가 차례로 발표될 때마다 사람들은 스피치가 끝나자마자 제품들이 전시된 전시 현장으로 곧장 달려갔다. 애플은 늘 출시하기 몇 달 전에 스피치를 통해 제품을 보여주고 그 자리에서 입도선매 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피칭 무대에 오르는 기업들 역시 피칭하고 있는 제품은 반드시 부스에서 똑같이 시연되어야 한다. 발표한 제품을 보고 싶어 부스에 왔는데 그 제품이 없다면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피칭의 목적은 늘 최종적인 Sales Lead 발굴에 있음을 잊지 말자.
6. 발표자가 직접 발표 자료를 만들어라.
너무나 당연한 얘기 같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문서를 직접 만드는 기회는 점점 없어진다. 직원들의 문서를 검토하고 승인하는 게 경영자의 주요 일이지만, 피칭 무대에 오르는 발표 자료만큼은 발표자가 직원이건 경영자이건 본인이 직접 만들어야 한다. 자기 고백을 하는 사람들은 무대에서 대본이 없어도 절대로 떨지 않는다. 한 시간이건 두 시간이건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자기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피칭 무대에 오르는 발표자가 남이 만들어준 자료를 들고 올라가면 아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떨 수밖에 없다. 설사 남이 써주었더라도 발표 직전 최소한 단어나 문구라도 본인의 언어로 수정해야 어느 순간에 목소리를 높이고, 어느 순간에 청중을 바라볼지를 짚어낼 수 있다. 자신의 언어를 쓰는 사람은 어느 순간에나 당당하다.
글로벌 전시회의 피칭 무대에 오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피칭은 기업의 투자유치나 바이어 발굴을 위해 매우 중요한 기회이다. 더구나 피칭의 기회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중소기업보다 스타트업에게 더욱 절실하다. 글로벌 무대에서, 수많은 바이어와 투자자에게 단 한 번의 임팩트를 던지기 위해, 위의 6가지를 이해한다면 반복하여 연습하라.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의 눈을 바라볼 수도, 이야기하듯 말할 수도, 그리고 무대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 나올 수도 없다. 지금 당장 무대 위 포디엄은 치워버리고, 온몸으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연습하라. 전 세계의 투자자가 무대 위의 조명이 켜지길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