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경험하는 베뉴 - 컨벤션센터
한국은 국가가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나라이다. 198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할 때부터 지금 정부의 소득주도형 경제성장까지,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이 성장해온 모습은 전형적인 국가 주도형 경제발전모델의 그것이다.
한국 마이스 산업도 국가 주도형 모델로 성장하여 왔다. 마이스란 말조차 생소하던 2천 년대 초반, 정부는 전시컨벤션산업을 통한 서비스 경제 육성을 위해 제일 먼저 전국에 컨벤션센터(무역전시장)를 건립했다. 아셈(ASEM) 정상회의를 위한 코엑스의 확장, 국내 최대 전시장 킨텍스의 건립, 부산 벡스코와 대구 엑스코 및 경주 하이코에 이르기까지, 지난 20여 년의 한국 마이스 산업은 정부가 하드웨어를 공급하고, 그에 맞춰 전시회를 육성하는 전형적인 국가 주도형 성장과 그 궤를 같이 해 왔다. 그래서 한국 마이스 산업은 지금까지도 컨벤션센터 중심의, 소위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확인되지 않은 모습으로 정부의 지원 아래 성장하여 왔다. 그래서 한국 마이스 산업을 논할 때 컨벤션센터부터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컨벤션센터는 무엇인가? 컨벤션센터는 무역전시회, 컨벤션(회의), 집회, 이벤트 등을 개최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객 시설이다. 집객 시설이란 용어를 쓰자면 굳이 컨벤션센터뿐 아니라 경기장, 공연장, 문화회관 등도 집객 시설이다. 그렇다면 컨벤션 센터는 다른 집객시설보다 어떤 가치가 있을까?
산업 전시회이건 미술 전시회이건 전시회를 방문해본 사람들은 모두 한 번쯤 전시회장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생경한 공간 연출에 ‘와우!’ 하며 작은 감탄사를 외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전시회 기획자들이 전시 공간 중에서 제일 신경 쓰는 곳이 바로 이 전시장 입구이다. 전시공간에 들어서는 '첫 경험'을 어떻게 제공하느냐에 따라 전체적인 경험치와 만족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상적 삶에서 새로운 경험의 세계로 이동하는 공간을 '전이(轉移) 공간 - moving space'라고 하는데, 이것은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웜홀(wormhole)을 통해 블랙홀에서 새로운 화이트홀로 넘어가는 통로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전시회의 입구가 관람객에게 생경한 체험을 전달하는 전이 공간이라면, 컨벤션센터는 방문객들을 다양한 미래의 세계로 안내하는 전이 공간이다. 박물관은 과거의 기억을 얘기하지만, 컨벤션 센터는 미래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CES는 통합되어가는 ICT의 미래를 보여주고, 서울 카페쇼는 커피를 매개로 여유로운 삶을 살기 위한 살롱 문화를 한 발 앞서 제시한다. 서울 모터쇼는 신기술로 발전하는 자동차의 미래를 제안하며, 그 어떤 마이스 행사이건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 그래서 컨벤션 센터가 미래의 비전과 꿈을 보여주지 않고 오직 가동률이나 수익창출에만 급급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비판을 받는 것이다.
컨벤션센터는 민간 자본이 들어가지 않는다. 컨벤션센터 자체 수익보다 베뉴에 방문하는 바이어나 기업들로 인한 산업 성장과 그 지역에 기여하는 경제효과 때문에 국가와 지자체가 투자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컨벤션센터의 평가는 대부분, 아니 모든 곳에서 가동률과 수익창출로 평가된다. 가동률이란 무엇인가? 가동률은 시설의 회전율, 즉 시설을 얼마나 사용했는가의 기준인데 이것은 생산 공장 시설을 평가할 때 쓰는 지표이다. 컨벤션센터는 공장이 아니다. 공장이 필요하다면 굳이 도시에 지을 필요가 없다. 공장은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기 때문에 물류가 편리한 지역이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그러나 컨벤션센터는 도시에 있어 사람과 정보가 활발히 교류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도시가 컨벤션 센터를 품는 이유는 베뉴가 불러들이는 사람과 정보의 교류를 통해 도시 어메니티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설 가동률과 그에 따른 수익으로 컨벤션센터를 평가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컨벤션센터는 현재를 거쳐 미래로 들어가는 웜홀이다. 이제 컨벤션센터가 단순히 하드웨어의 운영지표로 평가받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부터는 미래의 담론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화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