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경험하는 베뉴 - 박물관(Museum)
베뉴가 인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만나는 장소라고 하였는데 지금부터는 각각의 시간적 개념과 대응되는 장소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이렇게 시간적으로 베뉴들을 이해하는 것은 베뉴의 기능과 마케팅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모든 베뉴들은 그 이름만 다를 뿐 실제 기능과 운영 방식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뉴의 다양한 형태들을 개략적으로나마 이해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긴 시간의 터널을 뚫고 과거부터 현재를 지나 미래로 가는 동안 베뉴는 우리에게 그 시대를 만나게 해주는 경험을 전달한다. 그 경험은 사람과 문화, 역사, 기술 간의 교류를 불러일으켜 새로운 자극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태어나지 않은 과거 시대의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당연히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 역사적 유적이 많은 도시는 어느 곳이건 박물관을 보유하고 있다. 도시의 유산과 유물이 모두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브라질의 국립 박물관에서 일어난 화재는 브라질뿐 아니라 남미 대륙 모두의 손실이었다. 남미의 문화와 역사가 모두 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과거의 유산을 박물관을 통해 기억한다.
박물관의 영어 표현인 뮤지엄(Museum)은 원래 그리스의 신화 속 여신들을 일컫는 뮤즈(Muse)에서 나온 단어이다. 뮤즈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9명의 학문과 예술의 여신이다. 미술관도 뮤지엄이란 단어를 보통 같이 쓰는데 이렇게 뮤지엄이란 단어를 쓰는 이유는 이러한 예술적 가치가 있는 인류의 문화 및 자연 유산들을 모두 간직한 공간이라는 의미라는 유래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박물관 하면 떠올리는 것이 보통 그리스 신전의 기둥과 같은 이미지이다.
중세에는 귀족들이 외부 세계에서 획득한 전리품이나 귀중품을 자기 집 창고나 캐비닛 속에 보관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보르미아니 박물관 이야기'란 책 표지에 나와있는 호기심 캐비닛 그림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박물관은 전통적으로 역사적 유물이나 가치가 있는 물건들을 잘 '보존'하여 가족이나 국민들을 '교육'하는 것이 주 기능이었다.
한편으로 18세기에서 19세기 유럽이 세계 여러 국가들을 침략하여 식민지 국가의 국보급 유물들을 모두 자기 나라로 가져가서 보관하고 전시하기 위해 만든 장소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란 설도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나 영국 대영박물관이 세계적인 박물관인 것도 그런 이유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전통적인 박물관의 유물 보존과 교육 기능이 21세기 들어오면서부터는 여가와 오락의 목적이 추가된 형태로 바뀌었다. 프랑스 박물관법 1조는 '지식의 전파와 교육이 목적이다'라고 되어 있었다가 2000년대 들어오면서 '여가와 오락을 위하여 존재한다'라는 문구가 추가되었는데, 이것은 박물관이 단순히 유물 보존이나 교육의 목적뿐 아니라 국제적 관광산업과 연계하여 관람객 확대 및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면과 시대적 흐름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박물관의 기능이 기억을 보존하는 장소라기보다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는 다른 베뉴와는 다른 차별화된 즐거움을 경험케 하여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지적 즐거움(Intelligent Entertainment)'이란 개념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란 베뉴가 지적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박물관의 본질적 기능은 여전히 유물의 보존과 전시를 통한 교육이다. 그렇다면 이 본질적 기능을 관람객들에게 더욱 즐겁게 다가가게 하기 위한 역할들이 추가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이른바 확장된 서비스(Augemented Service)가 생겨난 이유들이다. 확장된 서비스들이란 요즘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로서 베뉴의 건축미, 굿즈(기념품), 주차 및 직원 서비스, 카페 및 레스토랑, 사이니지 등 전체적으로 전시 콘텐츠와 더불어 박물관의 총체적 경험치(Museum Experience)를 가늠케 하는 요인들을 말한다.
최근 박물관의 기능이 지적인 즐거움을 위한 경험쪽으로 기울어지다 보니, 전시 등 콘텐츠 역시 그 목적에 부합되게 이루어지게 된다. 최근의 전시 기획의 흐름을 보면 과거 박물관의 고집스러운 유물 전시 기법(유리 진열장에 전시품을 넣고 패널의 안내문을 통해 전시품을 해설하는 방식)을 탈피하여, 관람객의 자연스러운 동선에 따라, 그리고 역사적 배경에 몰입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 요소들을 활용하여 육감적 체험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 파리 자연사 박물관의 진화 갤러리나 용산 국립박물관 등의 전시 콘텐츠를 보면 이러한 경향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베뉴중 첫번째로 인간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경험하기 위한 박물관을 살펴보았다. 박물관은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고 지리하게 교육하는 장소에서, 지금은 박물관 자체를 즐기러 가는 세대들이 나올 만큼 즐거운 장소로 변화하고 있다.
박물관은 지금 세대와 교감하고 소통하는 네트워킹의 베뉴로서 그 기능이 확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