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이유는 멈출 이유가 없어서이다

by 함오늘







나는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강인한 체력을 가지고 있는 러너가 아니다. 이제 겨우 두 달 차 햇병아리 러너일 뿐이다. 그렇지만 러닝에 대한 애정은 나름 크다고 자부하고 있다. 신기한 일이다. 달리기는 죽도록 싫어했던 나인데 이제는 달리지 못해 안달이 나다니. 러닝에는 분명히 중독성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귀한 걸 밖에 두고 온 사람처럼 자꾸 뛰쳐나갈 리가 없잖아.


처음에는 달리는 행위뿐만 아니라 운동복 차림새의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도 어색했었는데, 이제는 익숙하게 옷을 척척 갈아입은 뒤 단골 러닝 코스로 향한다. 내가 달리는 곳은 낙동강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생태 공원인데, 이곳의 초록빛 풍경이 정말 아름다워서 집 근처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에 매일 감사한다. 머릿속의 지도는 어느 정도 그려져 있다. 이 방향으로 뛰면 대략 몇 키로를 뛸 수 있겠구나. 저 방향으로 가면 시간이 어느 정도 소요되겠구나.


요 며칠 비가 자주 내린 터라 흙길보다는 잘 다듬어진 조깅 코스를 따라 달리기로 선택했다. 물론 그 전에 스트레칭은 필수다. 코스 바깥의 한 켠에 서서 발목과 무릎을 열심히 풀고 있다 보면 괜스레 슬쩍 주변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아직 당당하게 스트레칭을 할 만큼의 완벽한 러너 마음가짐을 가지기엔 너무 짹짹 햇병아리인가 보다.


5월 5일, 어린이날이라 그런지 날이 흐려도 곳곳에 가족, 연인, 아이들이 많았다. 그 사이로 내달리면서 연휴에도 열심히인 스스로에게 취해 보기도 하고, 오늘 몸이 좀 무거운데 그냥 멈출까? 꾀부리고 싶은 생각도 해 본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를 외치며 1시간 동안 걷고 뛰기를 반복하며 대략 8km를 달렸다.


이건 진짜 장족의 발전이었다. 러닝을 시작한 첫 주까지 1분을 겨우 뛰던 나인데 이제는 30분 정도는 꾸준히 달릴 수 있는 체력을 가지게 되었다. 1차 목표가 30분을 꾸준히 달리는 것이었고, 2차 목표는 10km 마라톤에 참가하는 것이었는데 벌써 1차 목표를 두 달만에 달성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나 생각을 해 보면... 변화에 대한 갈망이 컸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물 먹은 솜 혹은 오래된 배터리 같은 상태에서 벗어나 에너지가 짱짱한 강철 인간으로 변화하고 싶었다. 러닝이 이러한 갈망을 채워 주기에 알맞다고 확신했기에 여태껏 꾸준히 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밖을 나서기 전에는 몸이 꽤나 찌뿌둥하고 귀찮은 마음도 스물스물 올라오지만 막상 러닝 코스 위를 내달리며 땀을 쫙 빼고 나면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달리는 동안에는 아무런 걱정도, 생각도 할 필요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다리를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그 행위에서 오는 해방감이 있었다. 이 달리기를 멈추면 다시 불안과 걱정이 슬그머니 따라올 게 분명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쨌든 달리는 동안에는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니까. 그러니 달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달리다 보면 멈추고 싶은 순간이 덜컥 찾아온다. 그것도 꽤 많이. 아, 진짜 뛸 만큼 뛴 것 같은데 멈출까? 더 뛰기 싫은데. 그런 마음이 들 때면 얼굴 표정도 덩달아 구겨지고 호흡도 거칠어진다. 하지만 멈추겠다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내 발은 착실하게 움직이고 있고, 망설이는 순간에도 나는 조금씩 앞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그 생각에 쉽게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달리면서 주춤하는 순간이 올 때 당장 멈추지 않는 나만의 요령법도 생겼다. 눈앞에 보이는 가까운 것들 중 아무거나 콕 집어서 '그래, 저기까지만 가고 딱 멈추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로 그 지점에 도달하면 멈추는 것이냐? 아니다.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서 새로운 지점을 만들고 또 만든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는 제일 처음 멈추겠다고 생각하던 지점에서부터 멀리 앞서 나가 있다.


그리고 몸도 고통에 익숙해지는 것인지 어느 정도 뛰다 보면 죽을 것 같이 힘들고 당장 멈추고 싶은 상태가 지나간다. 그 순간부터 자유가 찾아오는 것이다. 원하는 만큼 언제든 체력이 허락하는 곳까지 뛸 수 있는 자유.


그렇다고 절대 몸을 혹사시킨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만의 절대적인 법칙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부상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즐기려고 달리는 것인데 어느샌가 욕심 때문에 무리해서 달리다 보면 부상을 당하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달리는 의미가 퇴색된다고 생각한다. 몸이 부리는 엄살을 쉽게 받아 주지 않겠다는 것이지, 신체에서 진지하게 이상 신호를 보낸다고 판단이 되면 가감 없이 멈추는 것도 러너로서 가져야 할 필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지면을 딛고 내달리면서 또다시 몸이 엄살을 부렸다. 아, 오늘 조금 힘든데. 여기까지 뛰고 싶은데.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멈출 이유가 없다. 달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뇌 건강, 심폐지구력, 혈관, 근육, 정신 건강 등등 달리기가 주는 수많은 이로운 효과들이 있는데 왜 멈추어야 하지? 겨우 숨이 차다는 이유로 내가 이 자리에서 멈출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서 그대로 남은 거리를 쭉 내달렸다. 이런 생각까지 드는 것을 보니까 나 자신이 러닝에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쁘지 않았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건강한 취미에 미쳐 있는 것은 꽤나 근사한 일이니까. 스스로 엉덩이라도 토닥여 주고 싶은 심정이 든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당장 토닥여 줘야지.


달리기는 지금의 나를 구원해 주고 있음에 틀림없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이 낯설면서도 기특하고, 앞으로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얼마나 더 발전해 나갈지 기대하게 만드니까. 달리기를 할 때면 아무런 파동 없이 고요하게 머물러 있던 내면의 바다에 새하얀 파도가 가득 몰아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달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달리기가 만들어 주는 이 파도를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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