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다 야생의 거북이와 마주친 적 있나요

반복되는 일상 속 뜻밖의 이벤트

by 함오늘





여느 날처럼 러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한 지점에 눈길이 갔다. 그 어떠한 의도도 없이 무심하게 둔 시선 끝에는 무언가 둥그런 물체가 나무 위에 놓여 있었다. 평소라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어쩐 일인지 제자리에 멈추어 서서 집요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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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그런 물체의 실체를 알게 된 순간


뭔가 좀 수상하게 생기긴 했는데... 바위인가? 거북이 같기도 한데, 에이, 설마 도심을 타고 흐르는 강가에 거북이가 살겠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카메라 렌즈를 통해 확대한 그 물체는 바로 거북이가 맞았다.


우와. 순간 너무 신기해서 육성으로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생물쪽에는 지식이 많이 없는 터라 거북이는 오직 바다에 사는 줄로만 알았다. 여태 거북이를 보았던 경험은 전부 미디어 아니면 아쿠아리움처럼 인위적 매체를 통해서였기 때문에 더더욱 이 순간이 놀라웠다.


갑작스레 벌어진 소소한 이벤트에 얼굴에 미소가 만연한 채 연신 사진을 찍었다. 아니, 근데 진짜 강가에 거북이가 사는 게 맞아? 집에 돌아가서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은 샤워를 하며 따뜻한 물줄기와 함꼐 흘러가 버렸다.


그렇게 야생 거북이와의 만남이 자연스레 내 머릿속을 떠나는가 싶었는데, 그 주에 또 한 번 러닝을 마치고 같은 자리를 지나다가 거북이가 불현듯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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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오늘은 같은 자리에 거북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뭐야. 내심 아쉬워서 그 자리를 잠시 맴돌다가 거북이 대신 또 다른 반가운 녀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낙동강 야생냥이. 나무 사이사이를 날아다니는 까치를 예의주시하며 냥발을 휘적거리는 녀석을 보면서 본가에 있을 우리집 두 뚱냥이들을 떠올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귀가했다.


그리고 대략 이틀 뒤였을 거다. 나는 요즘 격일 아니면 매일 러닝을 뛰기 때문에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을 시점이었다. 혹시나 오늘도 거북이가 있으려나? 반신반의하며 바라본 곳에 두 눈을 둥그렇게 만들 만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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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쬐고 있는 거북이 가족


내가 지금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처음에는 두 눈을 의심하다가 이내 함박 웃음이 지어졌다. 와. 살면서 야생 거북이 가족이 일광욕하는 것도 다 구경하네. 엄마 거북이가 새끼들을 데리고 여유롭게 햇빛을 쬐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우뚝 선 발걸음이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애기들이 총 몇 마리야? 하나, 둘, 셋. 귀한 장면을 눈에도, 카메라에도 담은 후에는 꼭 이 순간을 글로 남기리라 다짐했다. 러닝을 하다 보면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있구나. 뛰다가 하루살이의 습격도 받아 보고, 흩날리는 민들레 씨를 삼킬 뻔도 해 보고, 미지의 길에 들어서서 헤매 보기도 하고.... 그 밖에도 여러 일이 있었지만 거북이를 마주한 건 개인적으로 귀한 이벤트였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거북이 가족까지 마주하고 나니 사그라 들었던 호기심이 다시 들어 당장 거북이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내가 발견한 친구들이 진짜 거북이가 맞는지 아닌지부터 궁금했다. 검색을 하기 전 아버지께 사진을 보여 드리니 민물에는 보통 자라가 사는 경우가 흔해서 거북이가 아닐 확률이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정보를 검색해 본 결과, 저 친구의 정체는 거북이가 맞았다.


자라는 민물에서만 살지만 거북이는 민물에서도 살고, 바다에서도 산다고 한다. 그리고 둘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일광욕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자라는 햇빛을 피하고 물속에 머무르려 하지만 거북이는 일광욕을 자주 즐긴다고 한다.


오케이, 내가 본 게 거북이가 맞구나.


앞으로 러닝을 하며 즐길 요소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이전까지의 요소들을 나열하자면, 첫째, 나의 개인적인 성장 과정을 관찰하는 것이고, 둘째,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바뀌는 공원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셋째, 거북이 가족과의 눈인사까지 추가됐으니 앞으로의 러닝 여정이 더욱 풍성해졌다고 볼 수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이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에는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여유가 생기면 평소에 못 보던 하늘도 올려다볼 수 있고, 길가에 피어난 꽃, 아이들과 강아지가 뛰어노는 모습까지 전부 아름다워 보인다.


러닝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마음의 여유 공간이 늘어났던 건 아닐까? 그렇지 않았더라면 거북이의 둥그런 등껍질을 발견하는 일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거북이의 등껍질뿐만 아니라 삶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벤트나 행운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무심히 지났을지도.


달리다 보면 점점 신체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던 말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앞으로 다가올 일상 속에서도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선물들을 놓치지 않고 온전히 즐길 수 있기를, 여유 있는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조금씩 더 자라날 수 있기를.


기분 좋은 미래를 상상해 보며 앞으로도 꾸준히 길 위를 달려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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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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