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편안한 속을 챙기는 - 채식 (6) 채식의 외로움과 타협
(6) 채식의 외로움과 타협
채식을 시작하고 그동안 먹었던 음식들이 뭉텅이로 먹지 않을 것으로 나눠졌다. 속은 편했지만 마냥 즐겁지 않았다. 채식에 대한 주변의 반응까지 더해져 외롭고 속상할 때도 많았다. 다행히도 남편은 심하게 체해서 아팠던 나를 봤기에 이해하고 도와주었다. 항상 고맙다. 집에서는 눈치 보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나를 챙겼지만, 집 밖에서는 눈치가 보였다.
‘고기를 안 먹는다고? 왜?’하는 질문은 많이 받아서 다듬어진 대답을 만들어 놓고 지냈다. ‘건강에 해롭지 않냐? 얼마나 오래 살려고 그러냐?’는 이야기도 반복해서 들었다. 오래 살려고 채식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막연히 할 이야기가 없을 때 나의 채식은 만만한 이야깃거리로 여겨졌다.
친정과 시댁의 어른들은 갑자기 고기를 먹지 않는 나를 의아하게 생각하셨다. 눈치를 보다 명절에 고기를 먹고 발진이 생겼다. 이후로 고기를 더 권하진 않으셨지만 나의 채식은 성가신 존재였다. 선지 해장국만 파는 가게에서 식사를 하게 되어 해장국 집은 반찬도 김치뿐이라 나는 옆에 식당에서 따로 먹고 싶다고 했다가 ‘그렇게 예민해서 어떻게 사냐.’는 말을 들었다. 나는 먹지 않아도 고기 요리를 해서 상을 차렸지만 같이 안 먹는다는 타박을 들을 때는 속상했다. 생신이라 가족들이 모여 외식메뉴를 정하는데 오리 백숙을 드시고 싶은데 내가 고기를 먹지 않으니 갈 수 없다고 하셨다. 나는 고기 안 들어간 다른 반찬들 먹으면 되니까 가시자고 여러 번 말씀드려서 오리 백숙을 먹으러 갔다. 가족 외식에서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나는 정말 괜찮다고 강조해야 했다. 고기를 안 먹는 내가 불편하게 여겨지는 게 힘들었다. 나의 채식을 어른들이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채식하는 중간에 회사일과 집안일로 스트레스가 겹치면서 체중이 줄고 생리가 멈추었다. 채식에 관련된 카페에서 검색해 보니 비슷한 증상도 있었고 ‘명현반응(장기간에 걸쳐 나빠진 건강이 호전되면서 나타나는 일시적 반응)’이란 댓글도 있었다. 1년 정도를 걱정만 하다가 산부인과에 갔다. 검사를 하니 호르몬이 불균형이라 생리가 멈춘 것 같다며 주사를 놓아주셨고 생리는 곧 정상으로 돌아왔다. 건강하게 지내려고 채식을 하면서 몸에 생긴 이상을 1년이나 내버려 뒀다니 앞뒤가 맞지 않았다. 채식으로 건강을 되찾은 사람들을 방송에서 접하며 채식이 모든 건강문제를 해결한다고 막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후로는 몸에 이상이 생기면 검색하면서 고민하지 않고 빠르게 병원을 찾아간다.
지금은 채식 초기에 예민했던 시기가 지나서인지 약간의 고기(요리하며 간을 보는 정도)는 먹어도 발진이 생기지 않고 마음도 편해졌다. 고기를 다시 먹으려는 마음은 아직 없어서 주위 사람들과 편하게 지내는 요령을 늘리고 있다. 식당에 가기 전에 내가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는지 미리 찾아본다. 비빔밥을 주문할 때 고명에 고기가 들어가는지 미리 물어보고 고기 고명은 따로 달라고 하거나 넣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린다. 주방이 바빠 고기가 들어간 비빔밥을 받으면 차분히 걷어내고 먹는다. 비빔 고추장에 고기가 들어가면 고추장 없이 비벼 먹는다. 명절에는 가족들을 위해 갈비찜도 만들어 간다. 고기도 안 먹는 사람이 맛있게 만들었다고 칭찬해 주신다. 무, 대파, 다시마로 국물을 내어 떡국을 끓여주시며 이렇게 하니 담백해서 좋다고 채식에 공감을 해 주신다. 고기를 안 먹으니 생선을 잘 챙겨 먹으라고 하신다. 채식을 하면서 외롭지 않을 방법들을 찾고 있고, 주위 사람들도 조금씩 더 이해해 주고, 채식을 위한 식품과 식당도 늘어나고 있어서 나의 채식생활은 편해지고 있다.
어떤 분이 나를 채소주의자라고 부른다. 나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예전보다 채소를 많이 사랑하게 된 채소주의자가 맞는 것 같다. 언젠가 고기를 다시 먹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이 좋아서 당분간은 이대로 지내보려고 한다. 속이 편안하고 피부 상태도 나아져서 좋다. 사람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랫동안 먹었던 고기를 먹지 않고 지내는 게 신기하다. 언제든지 그만두어도 괜찮으니 ‘그냥 한 번 해보는 건 어때?’라는 생각을 채식을 통해서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