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집엔 항상 큰 어항이 있었다.
아빠가 한 달에 한 번 집에 올 때 즈음, 엄마는 어항을 없앴지만 그전까지 나는 그 속에 금붕어, 열대어, 그리고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촐랑거리며 헤엄치는걸 코를 박고 구경했었다.
물고기들의 밥을 주는 것으로 내 하루가 시작되었었는데.. 20년도 훌쩍넘은 기억들인데 왜이렇게 선명하게 떠오르는 걸까.
엉겁결에 오게된 아빠집 현관 입구에 있는 어항을 보니 그 기억이 반사적으로 상기됐다.
어항엔 금붕어와 온 몸에 새하얀 색의 꽃잎을 두른 것 같은 비늘을 가진 물고기가 있었다.
이 물고기는 이름이 뭐야. 하고 아빠에게 물어보니, 아빠도 몰라, 그냥 키우는거야.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진을 찍어 검색을 해보니 베타라는 물고기였다. 다시 어항을 보려는데 발밑에 무언가가 스쳤다. 고양이었다. 회색과 검은색이 적절하게 섞인 귀여운 길고양. 그리고 보기 드문 개냥이었다. 아빠는 얘를 길에서 주워왔다고 했다.
'이거 뼈밖에 없었어, 불쌍해서 그냥 내가 데려왔어. 얼마나 애교가 많은지 몰라. 성가셔.'
'마음이 여린 게 제 아빠랑 똑 닮았네.' 하는 친척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다가 사라졌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웃음기 섞인 아빠의 얼굴을 보니 가슴 한쪽이 이상하게 아렸다.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는 표정을 숨기려 열어본 화장실 문안에는 하얀 잉꼬 한쌍이 있었다. 안 맞는 퍼즐처럼 걸려있는 새장안에서 잉꼬두마리는 나를 보며 연신 고개를 까딱거렸다. 또 안방을 가득 매운 화분들은 식물원을 방불케 했다. 옷방에는 형형색색의 모자와 옷들, 그리고 은은하게 들려오는 비지엠..
이런, 이건 내가 원하는 집이었다.
우리는 한 번도 진득하게 같이 살아 본 적이 없는데, 아빠가 무슨 생각으로 이 집을 가꿨는지 알 것 같았다. 잎이 넓은 식물을 방 한가운데에 놓았을 때 아빠의 표정,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왔을 아빠의 심정, 어항에 물고기 밥을 주며 물고기 하나하나를 관찰했을 아빠의 눈동자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같은 피를 가지고 있다는 건, 서로를 완벽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는 뜻이라는 걸 난 그날 알았다.
아빠는 요리를 즐겨했다. 어느 겨울날 시사모를 사 온 적이 있었다. 검은 봉지에서 꺼내지는 시사모는 굉장히 작았다. 아빠는 그걸 정성 들여 구웠고,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양의 생선과 냄새에 잔뜩 경계를 했지만, 아빠는 이런 요리도 먹을 줄 알아야 한다며 시사모의 꼬리를 잡곤 그대로 입에 넣었다.
요리를 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니 그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부엌에서 백숙냄새가 솔솔 났다.
솥에 담긴 백숙 한 마리를 보며 아빠는 내게 '너 이거 다 먹어야 돼,' 했다.
가지런히 담긴 반찬들과 색이 좋은 백숙이 식탁 위에 놓여있었다.
숟가락을 들었다 놨다 결국 한 술도 뜨지 못하는 아빠를 보며 지난 10년과 앞으로 아빠가 살아갈 수 있는 날이 교차되었다.
아빠를 이해하면 미워할수 없을까봐 그 긴세월을 그저 흘려보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