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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곡이 없는 명반

by 박재우

중고 CD 가게에 진열된 두 종류의 앨범을 상상해 봐. 하나는 당대 최고의 히트곡만을 모아놓은 ‘컴필레이션 앨범’이고 다른 하나는 비틀즈의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같은 ‘콘셉트 앨범’이야.


컴필레이션 앨범은 어때? 익숙한 히트곡들로 가득해 처음 듣는 순간부터 귀가 즐겁지. 파티를 열기에도 좋고, 누구에게 선물해도 실패할 확률이 적어.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시절이 지나고 나면 좀처럼 다시 손이 가지 않아. 그저 유행했던 노래들의 기록일 뿐, 그 앨범 자체의 이야기는 없기 때문이야.


반면 ‘서전트 페퍼스’ 앨범은 정반대의 경험을 선물하지. 이 앨범은 역사상 최초의 ‘콘셉트 앨범’ 중 하나로 꼽히는데, 말 그대로 앨범 전체가 하나의 뚜렷한 주제나 이야기를 가진 작품이란다. 비틀즈는 이 앨범에서 자신들이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라는 가상의 밴드인 척 연기를 했어. 그래서 첫 곡은 마치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왁자지껄한 소리로 시작하고, 곡과 곡 사이가 끊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져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이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지. 어떤 곡은 낯설고 기이하게 들릴지 몰라도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순서대로 귀 기울이다 보면 우리는 비틀즈가 창조한 그 가상의 밴드가 들려주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 속으로 빠져들게 된단다. 개별 히트곡의 합이 아니라 앨범 전체가 하나의 위대한 작품이 되는 거야.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마치 컴필레이션 앨범처럼 만들려고 애쓰는 것 같아. SNS에 자랑할 만한 멋진 여행(1번 히트곡),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학점(2번 히트곡), 근사한 연인과의 데이트(3번 히트곡). 그렇게 반짝이는 순간들을 모으는 데 집중하느라 정작 ‘나’라는 앨범 전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는 거지.


결국 인생이란, 너라는 아티스트가 ‘나’라는 이름의 콘셉트 앨범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너는 그 앨범의 유일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이며, 주인공이지. 어떤 장르로 앨범을 채울지, 어떤 악기를 사용할지, 어떤 이야기를 가사에 담을지는 오직 너만이 정할 수 있단다.


물론 앨범에는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는 멋진 싱글 히트곡도 필요하겠지. 하지만 그 한 곡의 성공을 위해 앨범 전체의 흐름과 이야기를 망가뜨리는 프로듀서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로는 너의 앨범에 대중의 사랑을 받는 히트곡이 없을 수도 있어. 오히려 어떤 곡들은 너무 실험적이라 외면 받거나, 어떤 곡들은 서툴러서 비웃음을 살지도 모르지. 괜찮다. 중요한 건 모든 트랙이 ‘너’라는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니까. 잠시 주목받는 히트 싱글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서툴더라도 너의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너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이란다.


돌아보면 내 인생이라는 앨범에도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하지 못한 B-side 곡들이 훨씬 더 많았어. 대학 시절, 모두가 취업이라는 히트곡을 준비할 때 뜬금없이 소설책과 영화에 빠져 밤을 새우던 시간들이 나의 B-side 곡들이었지. 하지만 그 서툴고 투박했던 곡들이 모여 지금의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더구나. 마지막 순간에 재생할 너의 앨범이 온통 다른 사람의 스타일을 흉내 낸 히트곡 모음집이라면 얼마나 허무할까.


그러니 순간의 히트곡 몇 개를 위해 너라는 앨범 전체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차트를 석권하는 히트곡은 없을지라도 너의 이야기가 담긴 트랙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렴. 너라는 이름의,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 명반을 완성해나가는 것. 그것이 너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프로젝트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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