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기업에게 나를 고용해 달라고 요구한다. 기업은 주판알을 튕겨 본 후, 당신을 고용하면 오히려 이윤이 줄어든다고 답한다. 당신은 기업의 ‘계산’을 넘어설 수 있는 무언가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당신은 자신이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 ‘열정적인 인간’이라 주장한다.
(중략) 만약 당신이 자본가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그에게 고용되지 못할 것이다. 구직자들은 제각기 특별한 존재임을 주장해야 한다. 말하자면 ‘영웅’이나‘초인’이 되어야 한다.
_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34-35쪽
나의 첫 직장은 ‘당신의 토요일까지 궁금해하는’ 회사였다. 내가 입사 지원을 한 2006년 가을, 2007 공채를 모집하며 내 건 이 회사의 슬로건은 “당신의 토요일이 궁금하다”였다. 당시 이 포스터는 나름 참신하다는 평을 받았다. 다른 회사에서 보는 학점, 토익 등의 스펙 요건을 과감히 없애고, 자기소개서만으로 지원자를 뽑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세울만한 특별한 취미도, 특기도 없는 나와 같은 평범한 대학생에게 그 슬로건은 그리 반갑지 않았다. 토요일의 대부분을 밀린 잠을 자거나,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거나, TV를 보며 뒹굴거리며 보냈기에 쓸 말이 없었다. 이제 토요일마저도 특별하게 만들어야 하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결국 내가 그 회사에 지원하기 위해 한 선택은 ‘자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엄마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했던 수영은 ‘지구력을 키우며 혼자와의 싸움을 견디게 하는 정신 무장의 취미’가 되었고, 그해 스터디를 하며 토론 도서로 선정되어 마지못해 읽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앞만 보고 달려온 내게 삶의 속도를 생각하고, 삶의 가치관을 바꾸어 준 내 인생의 최고의 소설’이 되었다. 어쩌다 보니 전공 수업 중 유일하게 A+를 받았던 수업이었던 <중국 신화의 세계>라는 과목은 ‘인간의 원형이 담겨 있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과목’이 되어 주말이면 도서관에 가 관련 책을 찾아보는 인문학도로 나를 탈바꿈시켜주었다.
그렇게 바뀐 나의 토요일이 궁금했는지 회사는 나를 뽑아주었고 나의 첫 직장 생활은 시작되었다. 물론 입사 이후로 나의 토요일이 그 취미들로 채워졌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늘 밀린 잠을 자거나, 데이트를 하거나, 친구들과 노는 것이 전부였다.
열정은 고용, 사후 평가, 자기 계발의 모든 측면에서 주요한 고려 대상이 되었다. 그 어떤 공장과 사무실에서도 ‘열정’이라는 이름의 서류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것은 그것들보다 더한 ‘물질성’을 갖고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 열정의 시대에 우리는 ‘자발성의 의무’, ‘열정의 제도화’, ‘노동자의 경영자와’ 같은 형용 모순이 제도로 정립되고, 심지어 도덕으로 선포되는 광경을 보고 있다.
_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48쪽
어찌 되었던 취직은 나에게 큰 사건이자 큰 기쁨이었고, 이제 더 이상 나는 ‘열정 있는 사람인 척’하는 연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만한 착각이었다는 건 출근 첫날 회의실로 날 데려가 일장연설을 하는 팀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을 수 있었다. ‘왜 이 일이 하고 싶냐’, ‘네가 하려는 이 일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일인 줄 아느냐’, ‘너는 단순히 직장인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주관하고만 드는 사람이라 생각해야 한다’, ‘직장인 마인드는 버리고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보든 너는 늘 기획자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등등. 분명 사회 초년생의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말들이기는 했지만, 며칠 지나자 그가 왜 그런 말들을 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걸 다 못 봤어? 그랬으면 주말에 집에서라도 보고 와야지”
“이렇게 밖에 못써와? 나 같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써오겠어”
“회사가 월급도 주면서 이렇게 가르쳐도 주고 얼마나 좋아?”
“공부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는 이런 직업이 흔한 줄 아니?”
나의 주말은 나의 주말이 아니었고, 퇴근 시간이 지나도 그 시간은 나의 시간이 아니었다. 주말에 난 신문기사를 왜 꼭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물어보는지(그 이야기는 결국 주말에 봤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니깐), 어차피 점심 즈음 마감하게 될 것을 왜 꼭 전날 새벽 2시까지 날 붙잡아 두고 일을 시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퇴근했잖아요”,“주말이잖아요”라는 말을 꺼내면 나를 이기적인 아이로, 개념 없는 요즘 아이들로 치부해버리고 ‘월급’ 얘기를 꺼내기라도 하면 “이 바닥에 너보다 못 받고 일하는 애들 엄청 많아”라는 말로 내 입을 막아버리는 그 문화는 견디기 쉽지 않았다.
결국 이 회사가 나의 주말을 궁금했던 이유는, 주말에도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열정이 있는 아이인지가 궁금했던 것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자소설은 그 기준에 합격했고, 그래서 나는 이 회사에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니 입사 후에도 그 열정은 계속 유지되어야 했다.
그렇게 3년쯤 지나고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을 즈음, 이번엔 내가 경험했던 것보다 더 특이한 채용 방식이 등장했다. 그건 다름 아닌 인턴 채용 공고였는데 최종 채용 인원의 두배 수를 최종 합격 인원으로 뽑아 3개월간 일을 시켜 본 뒤 그중에서 절반만 채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팀도 TO가 있었던지라 팀장은 이번 채용에서 신입사원을 받겠다고 했고,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남녀 각 한 명씩의 신입 아닌 신입이 우리 팀에 들어오게 되었다. 팀장은 미리 우리들을 회의실에 불러 놓고 이번 채용방식을 설명하며 “더 훌륭한 친구들을 선별하기 위함이니 많이 가르쳐주고, 그 친구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라고 말했다. “우리가 함께 일 할 사람을 뽑는 것이니 언제든 그 친구들에 대한 의견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말해달라”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지금이야 많은 기업들이 이런 방식의 채용을 하지만 당시 내 눈에 그 채용은 너무나 이상해 보였다. 바로 내 옆자리에서 ‘배틀로얄’ 게임이 시작된 것이니 말이다. 옆 사람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고, 옆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 해야 내가 채용될 수 있는 채용 게임. 차라리 총을 들고 싸우기라도 하면 방어라도 하고 공격이라도 할 수 있지 키보드 앞에 앉아 상대방이 뭘,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채 싸워야 하는 이 게임은 참가하는 사람도, 지켜보는 사람들도 모두에게 잔인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선배들은 실제 아무렇지도 않았는지, 그런 척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그 두 친구를 모두를 팀에 새로운 신입사원처럼 대해줬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3개월을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저 뒤에서 회사 욕하고, 두 친구들과 정을 쌓지 않고, 최소한의 것들만 해주고 그들에 관한 어떤 코멘트도 내뱉지 않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왜 아무 말 못 하냐고요? 저처럼 기사 하나 쓰고 싶어 하는 애들 엄청 많거든요.
됐다고, 너 나가라고 하면 전 그냥 나가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 그냥 이렇게 쫌만 버티다 보면 기사 조금씩 쓰게 해 주고, 그러다 보면 정식 기자가 될 수 있어요.
어차피 요즘은 공채를 뽑는 잡지사가 거의 없어서 기자가 되려면 이 길이 거의
유일해요. 예전에 누군가가 한번 부당 노동행위라고 고발한 적
있었는데, 그래서 그 잡지사는 아애 FD채용을 안 하게 됐대요. 오히려 기자가 되려고 하는 애들 사이에서는 일자 리만 없앴다고 욕먹었어요.
나의 두 번째 회사는 그야말로 ‘열정 노동’의 극한을 볼 수 있는 잡지사였다. 잡지사의 트렌디하고 화려한 모습에 꿈을 가지고 찾아오는 졸업생들은 정말 많았다. 월 40만 원 주면서 아침 9시에 출근해 온갖 잡무란 잡무는 다 하고, 마감 시즌이 오면 퇴근은커녕 집에 가서 씻고 옷만 갈아입고 다시 출근해야 하는데도 기자가 되고자 하는 친구들은 군말 없이 그 자리에 앉아서 견디고 있었다.
그게 다 일을 배우는 거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것들도 많았다. 협찬 따는 것을 배운다고 하기에도 그들이 하는 대부분은 물건 셔틀이었고 그 마저도 중요한 브랜드들은 시키지도 않았다. 소품 챙기는 것도 촬영 준비를 배우는 것이라고 하지만, 촬영 콘셉트나 방향도 공유받지 못한 채 소품 리스트만 받아 그것을 챙기기만 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나 싶었다. 선배들의 밥 주문과 간식 챙기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서 뭘 배워야 하는 건지, 밥 정도는 돌아가며 챙겨도 되는 건 아닌가 싶었다.
문제는 이런 불합리함 속에서도 아무도 말도 못 하고 조금만 참으면 기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묵묵히 버티며 일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잡지사 FD의 부당 노동을 고발했다는 친구는 그 잡지사가 더 이상 FD 채용을 하지 않게 되면서 오히려 FD들의 적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현실 속에서 기업은 꿈의 대가로 몸 바쳐 일하는 열정 노동으로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고 무럭무럭 성장해 나간다.
그런데 바틀비가 그의 은둔처에서 나오지 않고 매우 상냥하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아니 당황했을지 한번 상상해보라.
_ <필경사 바틀비> 29쪽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는 법률 사무소에서 필경사로 일하는 주인공 바틀비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월스트리트에서 성공한 변호사는 필경사로 바틀비를 고용한다. 바틀비는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잘 해내고 있었기에 변호사는 곧 바틀비를 마음에 들어한다. 그래서 변호사는 그에게 좀 더 주도적인 일을 주고자 필사본 검증 업무를 맡긴다. 그러자 바틀비는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라며 업무를 거부한다.
처음 보는 반응이기에 당황한 변호사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그렇게 바틀비의 업무 거부를 받아들인다. 며칠이 지난 뒤 다른 심부름을 시키자 바틀비는 또다시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업무를 거부한다. 변호사는 어떻게든 그를 이해하려 애써보고 동정도 해보지만 결국 그를 해고한다.
변호사가 바틀비의 반응에 당황한 것은, 그저 열심히 일하고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삶만이 정답이라고 여겨왔기에 주어진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바틀비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바틀비가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누구도 회사가, 상사가 지시한 일에 “하지 않겠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다. 일을 하러 들어간 회사에서 일을 거부한다니, 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겠다며 새로운 일을 주려고 하는데 그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니, 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으로 보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조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애도 있고, 블로그도 하면서 일까지 할 수 있겠어요?"라고 묻는 어느 회사 면접관의 질문에 "내가 애가 있든, 블로그를 하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온 거지"라는 대답 대신 "그럼요. 모든 건 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맞고, 그렇게 할 거니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며 거짓으로 열정을 보인 나는 아마 평생 바틀비처럼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할 것이다.
상사가 업무가 아닌 개인적인 일을 지시할 때도, 시도 때도 없이 전화와 문자로 업무 지시를 하고 주말에까지 카톡으로 업무 이야기를 할 때도, 합리적인 보수 없이 무리한 업무를 요구받을 때도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회사 밖에 두렵고, 회사에 있으려면 열정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하지만 언젠가, 이제는 더 이상 회사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판단이 드는 그 시점에는(돈에서 자유로워져야 하니 아마도 불가능한 일이 되겠지만)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더 이상 고용에 휘둘리지 않아도 되고, 월급이 아쉽지 않을 그때쯤 회사 생활의 마지막 한 마디는 꼭 그 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네, 저는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