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묶였어
할머니, 할아버지는 부지런하시다. 하루 종일 집에 누워있으라고 하면 "감사합니다!" 하고 당장 침대 위로 뛰어들 나와 다르게 두 분은 예전부터 방 안에만 있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사람들을 만나러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나가셨고 할아버지는 옥상에 텃밭을 만들어 작더라도 농사를 지으시거나 일이 없어도 바깥 구경을 하고 오셨다. 아흔이 훌쩍 넘으신 할아버지는 이제 체력이 많이 떨어져 예전만큼 활동적이시진 않지만 여전히 할아버지가 재배한 고추나 상추가 식탁 위로 올라온다. 할머니도 체력과 신체능력이 많이 떨어지셔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시진 않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뭔가를 하시려고 한다. 문제는 예전에는 외부로 향했던 그 선이 나이가 들어 외부로 나아갈 수 없으니 집안 내부로 향한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종종 주말에 큰댁을 가신다. 큰아버지가 크진 않지만 밭을 가지고 농사를 지으시는데 내가 보기엔 그게 할머니의 '소소한' 취미생활로 이어진 것 같다. 할머니가 큰댁에 가셨다고 하면 그날 오후는 거실에 나가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아침 일찍 이모할머니나 고모의 차를 타고 가서 밭에서 수확한 농작물을 한아름 들고 오시기 때문이다. 깻잎, 오이, 방울토마토, 고구마 등등.. 어떻게 보면 주말농장인데 품은 안 들이고 수확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가성비 있는 취미일 수도. 물론 할머니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진 않으시겠지만.
그렇게 할머니가 농작물을 가져오시면 집안에는 긴장이 감돈다. 엄마는 할머니가 자꾸 큰댁에서 농작물을 가져오는 걸 끔찍이도 싫어한다. 너무나 귀찮은 일거리이기 때문이다. 또 할머니는 냉장고 사정을 생각하지 않고 일단 가져오기 때문에 뒤처리도 어렵다. 같은 갈등이 매번 반복된다.
"이걸 어디다 놔요, 어머님!"
"냉동실에 넣으면 되지."
"냉동실에 자리가 없다니까요."
"베란다도 있고..."
엄마가 아무리 말을 하고 화를 내도 할머니는 변하지 않는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다 어떤 말에도 타격도, 흔들림도 없는 안정감으로 자신의 행동들을 유지하는 걸 보면 가끔은 신기하기도 하다. 그만 가져오라는 말에 큰형이 농사를 지어서 주면 고맙다고 생각해야지 형제간에 정이 없다고 역정을 내시는 할머니를 보면 노인들이 백 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굳어진 가치관과 사고를 바꾸는 건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심지어 그것들이 스스로를 힘들게 해도 말이다. 아흔이 다 된 할머니가 밭일을 하고 두 시간 이상 강원도에서 서울로 이동해서 수확물들을 가져와 정리를 하신다면 당연히 힘드실 것이다. 힘든 정도가 아니라 그날 할머니는 온몸에 무리가 와 괴로워하신다. 젊은 사람에게도 힘들 강도이니 아흔의 노인이 소화하기에는 고될 수밖에 없다. 큰댁에 다녀오시면 하루의 끝에 힘이 쭉 빠진 채로 앓으면서도, 엄마와 이 문제로 심각하게 싸우고 나서도 변함없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하면서 그냥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라고 이해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해방, 6.25 전쟁, 독재, 민주화, 경제호황기... 나열만 해도 벅찬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관통해 오면서 살아남기 위해 평생 일했던 사람들의 생존본능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일단 할머니가 큰아버지네의 흙 묻은 상자를 우리집에 들이는 이상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다. 신문지를 펼치고 이것저것 꺼낸다.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 낀 아빠는 그만 가져오라고 타박하는 듯 하지만 말투는 그리 강하지 않다. 할머니 곁에 앉아 나물과 야채들을 다듬는다. 엄마는 화가 나 방에 들어가지만 시간이 흐르면 나와서 같이 일을 하거나 일을 뒷받친다. 계속 나오는 설거지를 한다던지, 마루에 앉아서 채소를 다듬는 모자에게 그릇이나 기구들을 가져다주던지 하며 보조한다.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채소를 다듬은 할머니는 죽겠다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시고 아빠도 채소를 다 다듬으면 방에 들어간다. 신문지 위에는 다듬은 줄기들과 떼어버린 이파리들, 흙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엄마는 그걸 치운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다듬은 줄거리들을 데치고 삶고, 남은 쓰레기들을 버린다. 많은 일들이 이런 식이다. 할머니는 일을 벌이고 뒤처리는 엄마가 한다. 11시가 넘은 시간까지 뒤처리를 하느라 주방에 서있는 엄마를 보면 할머니를 그저 "그런 사람"이라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사라진다. 그때는 다시 할머니가 나의 할머니가 아니라 시어머니로 느껴진다. 내 엄마의 시어머니. 아무리 엄마가 화를 내고 싸워도 지는 싸움이 되는 건, 할머니가 (사실 할머니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고집이 센 할아버지와 아빠도) 자신의 행동을 바꾸지 않는 건 결국 당신이 바뀌지 않아도 손해보지 않고 힘들어지지 않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최대한 나와 동생에게 부담을 주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엄마가 없으면 밥을 혼자 찾아드시고 잔소리도 가급적 안 하시려고 노력하신다. 큰아버지네의 농작물을 가져와도 나에게는 와서 도우라고 하지 않으신다. 할머니가 큰아버지네 농작물을 가져온 어느 날이었다. 퇴근하고 오니 거실에 손질된 고구마줄거리 한 무더기가 거실 한가운데에 놓여있었다. 엄마가 외출했었는지 (공적인 일 때문이었던 거 같다) 집에 없었는데 엄마가 돌아와서 치우려면 피곤할 것 같아 내가 치우려고 하니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마 피곤할 텐데 놔두고 엄마 오면 엄마가 치우라고 해라." 분명히 나를 생각해 준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듣자마자 솟구치던 짜증을 잊을 수가 없다.
친구와 즐겁게 2박 3일 여행을 마치고 온 어느 날이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바로 아수라장이 된 거실이 보였다. 그때도 큰아버지네에서 할머니가 뭔가를 잔뜩 가져와 다듬고 있었다. 할머니와 아빠가 신문지 위에 앉아 수북이 쌓인 나물들을 만지고 엄마가 주방 싱크대 앞에 서있는 그 풍경에 왠지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순식간에 무기력함이 나를 덮쳐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가만히 천장만 바라보았다. 엄마의 일상은 너무 자주 할머니, 할아버지에 의해 좌우된다. 그걸 바라보는 딸은 무력감을 느낀다. 함께 여행했던 친구는 이런 감정을 느껴봤을까. 거미줄에 갇힌 이 기분을.
나는 할머니가 나와 동생을 위해 애쓰며 손녀들을 배려하는 분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엄마의 노동을 당연시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할머니가 미워진다. 시대와 문화가 만들어낸 할머니의 사고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이 미움의 방향은 나와 엄마, 할머니를 얽매는 가부장제의 구조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할머니가 미운 감정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집안과 관련된 일이면 모든 것이 엄마의 일이 되어버리는 이상한 중력의 질서에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엄마는 홀로 더 많은 짐을 짊어진다. 미움과 죄책감이라는 거미줄에 꼼짝없이 걸린 계속 그곳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