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K손녀일기 06화

윈터 이즈 커밍

It's the Most Wonderful Time of the Year

by 일상세팅러


겨울은 생일의 계절이다. 일단 세상에서 가장 큰 생일이 겨울에 있다. 크리스마스. 무신론자인 내가 크리스마스를 축하할 일은 없지만 그날을 좋아하는 편이다. 마치 세상에 걱정할 문제가 없다는 듯 알록달록 화려하게 꾸며지는 거리와 행복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밝고 따뜻한 캐럴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많은 지구인들이 공유하고 행복을 조성하는 공식 즐거움의 날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회사를 가지 않는 날이라는 것도 내가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이유에서 뺄 수 없다.


하지만 우리집에는 크리스마스 외의 겨울 생일이 여러 개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생신이 모두 다 겨울에 몰려있어 가히 우리집에서 겨울은 생일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외할머니의 제사도 겨울에 있다.) 크리스마스는 남의 집 행사이니 그냥 멀찍이서 즐기기만 하면 되지만 집안 어른의 생신은 그럴 수 없다. 집안 어른이 진짜 같이 사는 '집 안'에 계시면 더더욱. 그래서 겨울이 되면 엄마는 신경 쓸 게 많아진다. 윈터 이즈 커밍!


우리집은 음력으로 생일을 챙겨 매년마다 생일이 달라진다. 대략적으로 할머니의 생신은 12월 말, 할아버지는 할머니 생일로부터 한 달 후, 외할아버지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늦겨울. 말 그대로 겨울 내내 어른들의 생일을 챙겨야 하는 것이다. 요즘은 나가서 외식을 하는 것으로 생신상을 대신하지만 몇 년 전에는 집에서 직접 상을 차려 가족들을 초대해 생신을 났다. 생신상을 차리기 위해 전날부터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엄마는 하루 종일 움직였다. 마녀의 솥처럼 깊고 커다란 냄비에 이미 볶아놓은 재료들과 당면을 넣고 간장을 들이부은 후 팔을 힘껏 휘젓는 엄마를 보며 잡채가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손이 많이 가고 재료가 많이 들어가도 잡채는 음식 하나일 뿐. 잡채를 마친 엄마는 얼른 다음 요리로 넘어갔다. 가끔 재료를 볶거나 칼질 정도를 조금 부탁할 뿐 엄마는 우리에게 요리를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뭐 할까?"라고 물어도 엄마는 됐다고 했다.


평소 우리가 교류하는 가족은 아빠네 형제가 다였기에 집에 오는 가족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손님을 맞이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엄마가 신경 써야 할 건 요리만이 아니었다. 집안을 청소해야 했고 엄마의 지휘 아래에 우리도 방 청소를 해야 했다. 방을 청소하는 건 원래 해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내 의지가 아니라 타인을 들이기 위해 하는 방 청소는 달갑지 않았다.


생신 당일 퇴근한 아빠와 함께 어딘가에 깊숙이 박아놓았던 정사각형의 큰 검은색 교자상 두 개를 꺼내 이어 붙이고 그 위에 일회용 커버를 씌운다. 싱크대 찬장 위에 보관해 두었던 손님 접대용 금색 수저도 꺼내 상 위에 놓는다. 상이 금방 음식으로 가득 채워지고 사람들이 상에 둘러앉았다. 남자 어른들과 할머니, 나와 같은 손자들은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지만 엄마(큰댁이 오시면 큰엄마도)는 계속해서 주방에서 일을 하다가 한참 후에야 상 앞에 앉는다. 가끔 고모가 음식을 더 떠오거나 접시를 정리하기 위해 일어나기도 한다. 생일 케이크에 초를 꼽고 노래를 부른 후 저녁을 파하면 남자 어른들은 자기들끼리 2차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남은 음식들과 접시들이 쌓인 싱크대 앞에는 엄마(+큰엄마)와 고모가 서 있다.


연말, 연초 한 달 간격으로 이런 풍경이 반복되었다. 그 속에서 어느 순간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아들인 아빠는 이런 진 빠지고 불편한 생일 준비과정에서 빠져있었다. 두 분의 생신을 어떻게 진행할 건지 사전에 조율하고 저장하는 건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와 연락하는 상대도 큰엄마와 고모였다. 자연히 가족행사를 챙기는 건 여자들의 몫이었다. 친가의 행사임에도 조율의 주체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아들들은 빠져있었다. 전날부터 장을 보고 재료 손질을 하고 요리를 하는 중노동의 과정에도 아빠는 일절 관여를 안 했다. 생일 주인공의 자식은 엄마가 차린 음식을 칭찬하고 고생했다는 뉘앙스의 말 몇 마디하고 남자들과 2차를 나가 술에 잔뜩 취해 들어오는 아빠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 돌아오는 외할아버지의 생신을 챙기는 걸 보면 이상함은 더욱 증폭됐다. 이번에도 사전 조율은 엄마와 이모들의 몫이었다. 삼촌이 결혼을 하지 않아서였을까? 만약 삼촌이 결혼을 했다면 외숙모가 엄마들에게 연락을 했겠지. 여전히 아빠는 이 과정에서 빠져있었다. 엄마가 시부모님의 생신을 준비한 것처럼 아빠는 장인어른의 생신을 준비하지 않았다. 결국 아빠는 본인 부모의 생신도, 장인어른의 생신도 준비할 필요가 없었고 엄마는 본인의 아버지의 생신도, 본인의 부모도 아닌 시부모의 생신도 모두 챙겨야 했다. 나도 결혼을 하면 나의 부모보다 남편의 부모를 더 잘 챙겨야 하게 될까. 그러고 싶진 않다.


겨울이 되면 나는 시부모의 생신을 챙겨야 하는 부담을 토로하는 엄마를 매번 보았다. 그건 분명한 스트레스였고 고된 노동이었다. 그나마 할머니는 그 수고를 가늠하셔서 대놓고 집에서 생일을 보내자고 말하시진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그 어려움을 인지하지 못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식과 며느리, 사위, 손자들을 보며 흐뭇해하기만 했다. 가족들이 이렇게 모이니 얼마나 좋냐고 행복해하며. 타인을 집안에 들이는 부담과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집을 청소하고, 상에 가득 찬 음식을 만들고, 그것들을 만들면서 쌓인 설거지 거리들을 처리하고, 가득해진 음식물 쓰레기와 더러워진 접시들과 그것들을 치우는 시간은 할아버지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엄마가 마법을 부려 그 생일상을 뚝딱 만들고 뚝딱 치운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심지어 해리포터의 세계에서도 음식은 마법으로 만들지 않는데. 호그와트의 호화로운 음식들도 다 집요정들이 보이지 않는 주방에서 만드는 것이다.


그 고된 노동이 인지되다 못해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나에게는 점차 두 분의 생신이 축하해야 할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생신이 아니라 준비해야고 챙겨야 할 시부모의 생일처럼 느껴졌다. 손녀인 내가 아니라 며느리인 엄마의 입장에 이입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듯 조부모를 시부모로 느낄 때면, 그리고 나와 다른 세대의 인식과 가치관에 정면으로 부딪힐 때마다 미움이라는 감정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긴다. 그 조각들은 조부모님뿐만 아니라 아빠, 나 스스로에게도 튀어버린다. 계속 종종 튀어 오르는 미움의 파편은 나와 아빠, 조부모님의 관계에 생채기를 낸다. 그것이 언젠가 사라질지, 아니면 끝내는 흉터로 남을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지금의 생채기는 여전히 붉고 선명하고 따갑다. 마치 세상을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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