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K손녀일기 04화

당신들의 삶

해방이 무엇입니까?

by 일상세팅러



작년 광복절 저녁, 할아버지가 갑자기 나와 동생을 불러 식탁 앞에 앉혔다. 그렇게 나는 대뜸 할아버지가 겪은 79년 전 그날의 이야기를 들었다.


열두 명의 식구들을 두었던 할아버지의 부모님은, 즉 나의 증조부모님은 할아버지를 다른 집에 보냈다. 그때는 그렇게 하면 무슨 세금을 깎아주었나 보다. 또 그렇게 하면 "입이 굶지 않으니까" 증조부모님은 열다섯 살의 할아버지를 남의 집에 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남의 집에 간 할아버지는 "왜놈"들에 의해 일을 했다. 평소에는 새벽 여섯 시에 나가 일을 했는데 그날따라 왜놈들이 일곱 시까지 일을 시키지 않았다. 일곱 시쯤 어떤 방(묘사를 들어봤을 때 헛간으로 추측된다)에 조선인들을 몰아넣어 가둬두고 밖에서는 왜놈 군인들이 계속 왔다 갔다 한다고 했다. 그 두 시간 동안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두려운 감정을 묘사하진 않았다.


그리고 나오라는 말에 나오니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일본인이었던 같다.) 사이렌을 울리며 해방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물었단다.


"해방이 무엇입니까?"


천황폐하가 항복했다고, 천황폐하가 졌다고.


일본사람이 설명했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해방의 순간에 들었던 2차 세계대전과 원폭투하에 대한 설명을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할아버지가 쓴 "왜놈"과 "천황폐하"라는 말이 뇌리에 콱 박혔다. 아, 그 시대를 실제로 살아낸 사람이 바로 내 앞에 있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해방이 무엇이냐고 되물었다던 할아버지의 말이 그렇게 아렸다. 내가 교과서로 배운 광복절과 영상으로 보았던 태극기 물결이 가득한 해방의 순간이 아니라 망국의 국민이라는 힘겨운 삶이 주어진 조선인들의 일상에 다가온 해방의 순간을 목도한 기분이었다. 기록되지 않았기에 어떤 역사책에서도 볼 수 없는, 하지만 분명한 역사의 한 순간.


할아버지가 말씀을 마치고 안방에 들어가시니 할머니의 목소리도 들렸다. 이번에는 79년 전 그날 할머니의 하루다. 열 살의 할머니는 10리를 걸어 학교에 갔다. 어린 할머니는 옆구리에 찬 칼을 언제 끄집어낼지 모르는 일본 놈들을 두려워했다. 조선말도 쓰지 못하게 했던 그 놈들이 그날은 해방되었다고 할머니를 그냥 집으로 돌려보냈다. 할머니도 해방이 뭔지 몰라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 <경성스캔들> 은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청춘의 특권이 허락되지 않는 척박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희망가"라는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는 실제로 일제강점기에 히트한 최초의 대중가요라고 한다. 한창 드라마를 좋아하던 때 이 노래를 흥얼거리니 할머니가 곧장 이 노래를 부르시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드라마의 한 요소였던 노래가 할머니에게는 청춘의 특권이 허락되지 않았던 그 시대 속에서 실제로 들었던 노래였던 것이다. 내 앞에서 희망가를 부르는 할머니는 멀리 떨어져 있던 티브이 속 그 시대 자체였다.


할아버지가 설명한 2차 세계대전과 원폭투하, 일본의 항복은 내가 더 정확하고 깔끔하게 배우고 알고 있다. 할머니는 "희망가"의 가사를 더듬거리지만 나는 언제든지 희망가를 쉽게 찾아들어 가사를 정확히 알 수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말하는 그 사건들은 단순히 정제된 역사가 아니라 그의 삶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친 인생 자체이다. 내가 읽고 배운 교과서의 몇 줄, 정돈된 음질의 노래는 실제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인생이다. 힘들고 고단하고 괴롭고 아팠던, 그럼에도 삶을 살아낸 사람들의 인생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우리는 힘든 걸 다 겪었다. 알고 있어라."

아흔다섯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순간들은 사라진다. 그 시대를 겪은 사람들이 사라지면 찾아올 무덤덤함이 때때로 두렵다. 벌써부터 잊은 사람들이 많은 거 같아서. 나조차도 이미 잊고 있어서.


가진 것 없고 배우지 못한 조부모님의 악착같은 인생을 발판 삼아 나는 고등교육을 받고 나름의 지식인처럼 살고 있다. 문화생활을 즐기고 책을 읽고 토론한다.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똑같은 나이를 지나왔지만 너무 다른 인생이다. 조부모와 그 세대가 일궈놓은 사회 속에서 나는 그들에 비하면 너무나 물질적으로 안락한 삶을 살고 있다. 힘겹게 지나갔을 조부모님의 청춘을 생각하면 두 분이 안쓰럽다.


하지만... 나의 조부모님은 나에게 해방의 날에 대해 말씀하셨던 바로 그날, 과거사에 대한 언급 한 번 없었던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않으셨다. 공영방송에서 광복절에 기미가요를 틀었던 때에도 그 사실 자체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여느 때처럼 계속 그 채널을 보셨다. 나라의 기념일에 꼬박꼬박 태극기를 게양하고, 왜놈이라며, 일본 놈들이라며 그 시대를 겪으며 쌓아온 분노를 표출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정작 당신의 삶을 존중받지 못하고, 그 사실 자체도 인지 못하는 걸 보면 화가 나고 슬퍼진다.

배움이 많을 수 없었던 조부모의 인생을 발판 삼은 나는 배움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지식을 얻었다. 그런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없는 조부모의 선택과 발언에 그들이 미워지고 거리를 두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죄책감이 들고 동시에 그들이 안쓰럽다.


조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건 한 시대를 건너온 삶을 곁에 두고 배우는 일이다. 그들의 삶은 교과서 속 글자를 넘어선 생생한 기록이지만 그것을 읽는 건 단순히 역사 교과서를 읽고 외우기보다 훨씬 어렵다. 때때로 그건 과거와 현재 사이의 거리를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가깝지만 먼 그 거리 사이에는 존경과 미움, 죄책감과 애틋함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 놓여있다. 나는 종종 그 속에서 갈팡질팡하게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