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잡지 못한 기억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기억은 조부모님과 함께 산 날 이후지만, 정작 내가 언제 어떻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받아들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조부모님과 함께 살기 전의 시기도 적지 않게 기억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내 일상에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난 존재들이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명절 같이 특별한 일이 있을 때나 가끔 보았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의 매일에 함께 하게 된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들의 등장은 초등학생의 일상을 사소하게 바꾸었다. 주말 아침에 일어나면 꼭 안방 문을 열고 두 분께 인사를 드렸고(문안인사..!), 할아버지가 드실 식후 커피를 원두 2, 설탕 3, 프림 3으로 탔고, 저녁을 먹으며 8시 20분 KBS 일일연속극을 함께 보았다. 나는 특히 후자의 두 개가 좋았다. 지금은 커피를 잘 마시지 않지만 어릴 때는 몰래 맛본 커피가 너무 맛있어 엄마가 커피를 마실 때면 주변을 얼쩡거리며 혹시나 커피 한 모금 얻어먹을 빈틈을 노렸다. 하지만 엄격했던 엄마는 절대 어린아이에게 허락하지 않았고 원통했던 내가 눈물을 흘리며 엄마에게 잔뜩 삐쳤던 적도 있다.
그렇게 먹기 힘들었던 커피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바로 할아버지의 커피 타기였다. 나에게 커피 타기는 일종의 놀이이자 자랑이었다. 작은 티스푼으로 계량하며 원두와 설탕을 컵에 담으면 과학 실험을 하는 것 같았다. 뜨거운 주전자의 물을 안전하게 따르면 어려운 일을 척척해내는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맛보기를 핑계로 눈치 보지 않고 당당히 커피를 먹을 수 있었다! '마셨다'라고 표현하기에는 민망한 티스푼 2개 양의 커피물이 얼마나 달콤하게 느껴지던지. 입안에 남은 커피 향을 음미하며 커피잔을 쟁반에 받쳐 가져다 드리면 할아버지는 물의 양 조절을 잘했다며 칭찬해 주셨다.
어린 나이에도 어렴풋이 무서운 엄마가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는 무서워질 수 없음을 알아챘던 것 같다. KBS1 일일드라마를 보며 저녁을 먹고 나면 슬쩍 할머니방에 들어가 할머니의 옆에 누웠다. 일일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바로 9시 뉴스가 시작하는데 이 시간만 조금 참고 나면 리모컨은 내 차지가 되었다. 늦게까지 티브이를 보지 못하게 하는 엄마의 통제하에 있는 거실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자유가 할머니 옆에 있다는 걸 인생을 10년도 살지 않았던 꼬맹이가 눈치챈 것이다.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할머니의 옆에 누워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엄마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너 늦게까지 티브이 보려고 일부러 할머니 옆에 누워 있는 거지!"
엄마가 약이 올라 소리치면 난 꼼지락거리며 할머니 곁에 더 붙었다.
"보게 놔둬라."
할머니라는 든든한 방어막 뒤에서 히히 웃으며 리모컨을 돌리던 나. 어린애가 꽤나 약았었군.
돌이켜보면 나만의 생각을 정립해 나가는 사고력이나 집안의 보이지 않는 권력관계와 흐름을 파악하는 통찰력이 생기기 전, 그러니까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기 전인 유아기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무엇보다 그 시기에 필요한 무한한 애정과 사랑을 조부모님께, 특히 할아버지께 받으면서 나의 정서적 안정감 형성에 큰 도움을 받았다.
할머니는 개를 포함한 모든 동물을 싫어하셨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사족을 못쓰는 강아지 러버였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모든 가족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노력 끝에 엄마의 허락까지 받았지만 가장 큰 산이 남았다. 할머니는 정말 완강히 강아지를 반대했다. 나를 앞에 두고 고모에게 강아지를 집에서 키우는 게 얼마나 말이 안 되고 건강에 좋지 않은지 무서운 기세로 열변을 토하기도 하셨는데, 그때 잔뜩 기가 죽은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할머니처럼 똑같이 개를 싫어하는 고모조차도 내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할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강아지를 키우게 허락해 주시면 성취도 평가 평균 몇 점을 넘겠다는 약속이었다. 얼마나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지 절절하게 쓴 편지를 할머니의 가방 속에 몰래 넣기 위해 일부러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할머니가 씻으시는 사이 가방에 넣어놓고 침대에 뛰어들어 자는 척을 했다. 그날 하루 종일 얼마나 떨리던지. 학교에서도 할머니가 지금쯤 할머니가 그 편지를 읽으셨을지, 마음을 돌리셨을지에 온통 신경이 쏠려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할머니는 다른 말 없이 나에게 답장을 건네셨다. 짧은 쪽지에는 허락이 담겨있었다. 그 쪽지를 읽자마자 뛸 듯이 기뻤던 것과 동시에 이걸 할머니께서 혹시나 말을 바꾸지 못할 증거로써 보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가장 윗서랍에 소중히 넣어두었다. 시간이 흘러 생각해 보니 할머니의 쪽지는 번복을 막는 증거가 아니라 나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의 증거였다. 용납할 수 없는 것을 용납하게 한 손녀에 대한 사랑이 답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사실 조부모님의 사랑을 떠올린다면 할머니보다는 할아버지가 먼저 떠오른다. 할아버지는 유독 손자손녀들 중 나를 예뻐하셨다. 내 기억 속 나에게 활짝 웃어주는 최초의 사람은 할아버지이다. 휴게소를 했던 큰아빠의 집은 작은 놀이공원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작은 몸집과 보폭으로 누비는 휴게소는 그 당시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공간이자 세계였다.
그날도 큰댁에서 잠을 자고 깨면 으레 그랬듯 휴게소 곳곳에서 하루를 준비하는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아침인사를 드렸다. 휴게소 뒤편에서 장화에 바지 밑단을 욱여넣고 노란색 외발수레에 흙을 퍼담고 있던 할아버지를 발견하자 반가움에 바락 소리를 질렀다.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어요!"
밀짚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허리를 쭉 피며 허허 활짝 웃으셨다. 눈이 사라지고 입이 알파벳 'D'를 오른쪽으로 90도로 돌린 것처럼 웃던 할아버지 옆을 졸졸 따라다니며 수레를 몰아보겠다고 종알거리던 것이 생각난다. 다 커서 생각해 보면 다섯, 여섯 살밖에 안된 어린 손녀가 아침부터 찾아와 인사를 하고 종알댄다면 귀엽긴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유독 할아버지의 웃음이 기억나는 건 여전히 할아버지가 그때처럼 나를 보면 웃기 때문이다. 똑같은 웃음소리. 똑같은 입모양. 내가 기억하는 그때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나 이제 다 큰 어른이 되어버린 손녀에게, 이제는 더 이상 할아버지를 부르는 목소리에 반가움이 없는 손녀에게 할아버지는 똑같이 활짝 웃으신다. 나는 너무 변했고 할아버지는 너무 변하지 않았다.
같이 살게 된 지 얼마 안 된 아홉 살, 할아버지와 함께 청계천을 구경하러 간 적이 있다. 한창 청계천 복원 작업을 하던 때였다. 아마 삭막한 복원 공사 현장만 보고 왔을 것이다. 다만 내가 그날을 기억하는 건 청계천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가 사주셨던 짜장면 때문이다. 내 기억 속의 최초의 짜장면은 할아버지가 사주신 그날의 짜장면이다. 너무 맛있어 정신없이 짜장면을 먹는 나를 보며 할아버지는 역시나 흐뭇하게 웃었고 우리에게 다가온 짜장면집주인분에게 나를 손녀딸이라며 소개했다. 나는 분명히 입가에 소스를 덕지덕지 묻힌 채로 주인아저씨에게 인사를 했을 것이다.
그날 이후 짜장면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짜장면은 항상 맛있었다. 세상 최고의 난제 중 하나라는 '짜장이냐, 짬뽕이냐'의 선택에서 난 언제나 망설임이 없었다. 그게 왜 고민되지? 당연히 짜장면이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도 짜장과 짬뽕 사이에서 고민하는 날이 생겼다. 짬뽕을 시키는 날도 가끔 있다.(오늘도 이 글을 쓰기 전에 저녁으로 혼자 짬뽕을 사 먹고 왔다.) 입맛이 바뀐 걸까. 아니면 내가 변한 걸까.
이제 나는 예전처럼 할아버지를 마냥 좋아하는 손녀가 아니다. 할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나를 보며 활짝 웃으시지만, 나는 옛날처럼 항상 그 웃음에 진심으로 함께 웃지는 못한다. 어느 날부터 주말 아침 인사도, 식후 커피도 귀찮아지고 할머니 옆에 눕는 것이 불편해졌다. 그리고 천천히 그 역할에서 멀어졌다. 오랜만에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니 새삼 알게 된다.
나 참 많이 변했구나.
그들은 내가 잊고 있었던 시간들 속에서 나를 사랑하고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