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K손녀일기 01화

한지붕 밑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

손 닿을 수 없는 저기 어딘가

by 일상세팅러



대학생 시절, 친구와 함께 두 달 동안 유럽여행을 다녀온 적 있다. 통장을 탈탈 털어 떠나는 돈 없는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두 달이라는 길다면 긴 기간의 여행 비용을 아끼기 위해 숙소를 에어비앤비로 잡았다. 그중 물가가 비쌌던 독일과 영국은 아예 호스트가 살고 있는 집의 방 한 칸만 빌렸는데 그 덕에 예상치 못했던 값진 경험을 얻게 됐다. 현지인들의 생활을 바로 옆에서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 마인츠에서 머물었던 집의 호스트는 네 남매의 어머니로 고등학교 교사였다. 첫째 딸은 다른 지역의 대학에 진학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고(그 딸의 방에 우리가 머물렀다.) 집에는 아들과 어린 딸 둘, 하숙을 하는 프랑스 남자가 있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3박 4일 동안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에어비앤비 게스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걸 즐기는 것 같았다. 아침을 먹고 있는 우리의 식탁에 같이 앉은 그는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우리는 짧은 단어들을 내뱉으며 손짓발짓을 활용해 간신히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그는 자신의 친구에 대해 말했다.


"블라블라~ her girlfriend 블라블라~"


마치 우리나라에서 "내 친구 남편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말하듯이 말이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얘기는 낯설지 않았지만 솔직히 동성파트너에 대한 거리낌 없는 사회적 인식이 낯설었다. 하지만 놀란 티를 내고 싶지 않아 최대한 태연하게 되물었다.


"Oh, she has girlfriend?"

"Yes, she is a lesbian."


단호하게 대답하는 그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나를 응시했다. 내가 혐오발언이라도 할까 봐 감시하는 듯한 태도였다. 괜히 억울하기도 하고 혹시나 모자란 영어 때문에 나를 호모포비아로 오해할까 봐 괜히 더 손을 크게 휘두르며 엄지를 척 세웠다. 쿨!!


다음날 아침 시내 구경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호스트가 오토바이에 앉아 헬멧을 쓰고 있었다. 어디 가냐고 묻자 학교로 출근한다는 것이었다. 가죽 재킷 입고 오토바이 타고 학교로 출근하는 선생님이라니! 멀어져 가는 오토바이를 보며 친구와 멋있다고 호들갑을 떨다가 갑자기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담임선생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아마 학교의 유명인사가 되셨겠지. 좋지 않은 쪽으로.

영국 에든버러 숙소의 호스트는 굉장히 다정한 중년과 노년 사이의 여성이었다. 그는 찬찬히 집을 소개해주면서 규칙과 당부사항을 말해주었다. 그는 복층이었던 집의 위층 방을 열며 방의 주인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 방은 아들 방이에요. 아들의 여자친구도 같이 사는데 지금 둘은 여행 중이에요."


독일 호스트의 "her girlfriend"처럼 물 흐르듯 스르륵 흘러가는 문장을 가만히 듣다가 멈칫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분은... 결혼 안 한 아들의 여자친구랑 같이 산다는 건가? 내가 잘못 알아들은 건가 싶어 친구를 바라보니 친구도 나를 보고 있었다. 놀라지 않은 척 평온한 입가와는 달리 커지는 눈에 힘을 주고 있는 게 보였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호스트에게 놀란 티를 내며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친구도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기는 호스트의 뒤를 따랐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님께 내 남자친구와 함께 살자고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아찔해..!


유럽을 돌아다니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콜로세움이나 에펠탑 같은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탑승 티켓을 기사가 찢어주는 크레타의 대중교통 버스, 특정시간이 되면 종소리가 울리던 부라노 섬의 광장, 저녁이 되면 동화 같은 오두막집 창문에 따뜻한 주황색 전구색이 가득하던 스위스 어느 동네의 고요한 풍경... 내가 평생을 살아왔던 한국에서는 볼 수 없던 현지에서의 일상이었다.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존재하고 있는 전혀 다른 세상.

앞에서 말한 두 호스트의 삶은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하거나 특이하거나... 어쩌면 이상하다고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우리가 가능하지 않다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삶이 그곳에서는 가능했고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 삶은 존재하고 있었다. 존재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내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그리고 그 세상 속에 나도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규칙과 질서들은 절대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걸 체감하자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세상은 팽창하는 우주처럼 넓어졌다.


유럽여행에서 돌아오고 얼마 되지 않아 할아버지가 방으로 부르셨다. 어릴 적 방에 붙여 놓았다가 떼어놓은 커다란 세계지도를 침대에 펼쳐놓고 계셨다. 유럽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할아버지는 내가 방에 들어서자 내게 손짓하시더니 내가 갔던 나라들이 어디냐고 물으셨다. 이탈리아-그리스-체코-폴란드-스위스-프랑스-독일-영국. 할아버지의 고개가 내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

할아버지는 내가 여행을 다니는 동안 엄마에게 세계지도가 있는지 물어보았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한국 현대사의 풍파를 겪어온 그 시대의 아주 평범한 한국인이다. 돈도, 배움도 많지 않아 유럽에 가보 적 없고, 유럽의 지리나 문화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시피 한 노인이 유럽 어딘가에 있을 손녀의 발자취를 따라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들을 찾아 세계지도를 들여다봤을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뭉클했다.


할아버지와 함께 세계지도를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 저녁을 먹다가 할아버지가 대통령은 나라의 왕이라고 말하셨다. 단순히 국가의 최고 권력자를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말 그대로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전근대시대의 왕을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복종'이라는 단어를 쓰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사고와 인식에 경악하다가 할아버지가 태어난 연도를 떠올렸다. 어쩌면 1930년대 초에 태어난 사람은 정말 민주주의라는 체제보다 절대권력에 복종하는 체제에 더 익숙할 수도 있겠구나.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할아버지가 가장 유연하고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젊은 시기에 겪은 시대는 민주주의 보다 살아남기가 우선일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그렇기에 할아버지는 오랜 세월 쌓인 자신의 인생 경험으로 형성된 자연스러운 세상 속에서 살고 있을 뿐이다.


문득 마인츠와 에든버러에서 만났던 호스트들이 생각났다. 동성을 인생의 파트너로 생각할 수 있고 결혼하지 않은 자식의 애인과 함께 사는 삶들. 내 두 눈으로 직접 본 전혀 다른 규칙과 질서로 이루어진 새로운 삶들. 실제로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목격하며 다채로운 삶을 상상할 수 있게 된 나의 세상과 복종해야 할 왕이 존재하는 전근대적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세상이 같은 식탁 앞에 충돌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지붕 아래에서 바로 옆방에서, 같은 식탁에서 서로를 마주하지만 동시에 서로 너무나도 먼 거리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하면, 그것도 20년이 넘게 같이 살고 있다고 말하면 모든 사람들이 말한다.

"어머니가 대단하시다."


정말 맞는 말이다. 엄마는 우리 집의 3세대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엄마가 없는 거실은 조용하지만 엄마가 거실에 나오면 모든 가족들이 거실로 나오기 시작한다. 할머니가 엄마와 몇 마디 나누고 할머니가 들어가면 아빠가 나와서 뭘 해 먹으며 엄마와 얘기하고 아빠가 들어가면 내가 나와 엄마와 대화를 한다. 대화가 많지 않은 집안이지만 가족 구성원 모두 엄마와의 대화는 어려워하지 않는다. 저 두 문장에 가족 구성원들에게 소모되는 엄마의 에너지를 대충 가늠할 수 있다. 엄마가 짊어지고 있는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의 무게를 생각하면 모두가 입모아 말하는 엄마의 '대단함'은 절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말하고 싶었다. 20년 넘게 조부모와 함께 사는 손녀의 삶도 그리 녹록지는 않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유년기와 청소년기, 성년기까지 성장의 전 과정을 함께 했지만 나와 그분들의 관계는 그리 가깝지도 편하지 않다. 두 칸 너머의 세상이 함께 하기에는 집이 비좁았다. 백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굳어진 할머니, 할아버지의 세상은 너무나 견고하고 딱딱해 내가 성장하며 만들어갔던 나의 세상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지 않았다. 정말 솔직해지자면 그래서 지난 몇 년간 할머니, 할아버지를 미워했고 지금도 온전히 그들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 커갈수록 그분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아가는 것과 동시에 그분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내 성장기에서 무엇을 앗아갔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의 존재가 나의 어떤 부분을 얽매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미워하면 안 되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다. 그 감정을 입 밖으로 내지 않더라도 죄책감이 들고 입 밖으로 낸다면 정말 나쁜 사람이 된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감정에서 최대한 시선을 돌렸다. 응어리진 감정들을 모른척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사회생활에나 일상에서 불현듯 노인의 입장을 생각하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건 분명 오랜 시간 그들과 함께 살아온 영향 때문일 것이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애정이 응어리진 감정의 뭉치 속에 섞여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다는 걸 조금씩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 감정의 뭉치를 풀어보려고 한다. 다른 세대와 가치관이 충돌하며 발생하는 미움과 애틋함, 노화하는 인간을 지켜보며 느끼는 안쓰러움, 내 삶에 녹아있는 그들에 대한 애정의 감정들을 한가닥 한가닥씩. 이 글은 그 감정들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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