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know what to do
얼마 전 다리를 다쳤다. 계단을 내려가다 잘못 디뎌 그대로 왼쪽 발목이 꺾이는 순간 뚜둑-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고통이 순식간에 찾아왔지만 아픔보다 창피함이 더 커 벌떡 일어나 절뚝이며 자리를 피했다. 인적이 드문 지하철 구석에 기대어 서서 생각할 틈도 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배가 허전하고 음식이 먹고 싶은 상태에서 바로 배고픔의 감각을 느끼듯이 아프고 연약해진 상황에서 마치 그것이 본능인양 사고의 회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엄마를 찾게 되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엄마는 동생까지 대동하여 급하게 나를 찾아왔다. 재밌는 건 택시를 부르고 병원에 전화하면서 엄마와 동생을 이끈 건 다친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보호받는 느낌이었다. 믿고 편안한 상대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는 걸 아플 때면 언제나 느낀다.
퇴근 시간 이후에 사고가 나서 급하게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엑스레이, CT... 길어지는 검사 시간 중 아빠가 병원에 왔다. 엄마, 아빠, 동생. 온 가족 출동이라니. 바글바글한 내 주변이 조금 민망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어딘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아빠가 병원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잔뜩 찡그리고 있을 얼굴의 주름들이 상상이 갔다. 주름 사이에 껴있을 걱정들까지도 눈에 보였다.
깁스를 두르고 목발을 짚으며 집에 들어서자 할머니, 할아버지가 탄식을 내뱉었다. 팔은 몇 번 다쳐 깁스를 한 적이 있었지만 다리는 처음이었다. 두 분은 목발에 익숙하지 않아 절뚝이며 아슬아슬하게 들어서는 손녀의 모습에 많이 놀란 듯했다. 내가 생각해도 중심을 잘 잡지 못하고 휘청이는 모습이 많이 불안해 보일 것 같았다. 두 분은 잔뜩 표정을 찌푸리고 격앙된 경상도 사투리로 나에게 몇 마디를 했다. 걱정 어린 잔소리였다. 나에 대한 애정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피곤한 탓인지 유독 강세가 센 억양의 사투리가 공격적으로 들렸다.
깁스를 한 상태로 도저히 평소의 출근길을 감당할 수 없었고 첫 일주일은 다리에 최대한 무리를 주지 말자고 판단하여 일주일 병가를 썼다. 다친 지 며칠이 지났을 때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돈을 건네며 닭을 사 오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제대로 잘 먹지 못해 몸에 힘이 없어서 다쳤다는 진단과 백숙이라는 처방을 내리셨다. 실제 내 부상과는 전혀 개연이 없는 할아버지의 진단과 처방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할아버지, 저는 핸드폰 보다가 계단이 있는지 모르고 발을 잘못 디딘 거예요! 아무리 내가 말해도 할아버지가 들을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할아버지의 말을 계속 듣기만 했다. 내가 잘 안 먹어서 얼굴에 살이 쪽 빠졌다는 할아버지의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나의 몸무게는 그대로였고 너무나 쉽게 접힌 턱살을 만들 수 있었다. 얼굴을 찡그리며 속상함을 토해내는 할아버지의 말은 사실이나 인과관계가 맞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할아버지가 나를 많이 아끼고 있음이 느껴져 조금은 뭉클해졌다. 할머니도 과일을 깎아 방에 넣어주거나 내가 뭐가 필요한지 확인을 하는 등 계속 내게 뭔가를 해주기 위해 안달이셨다.
발목 인대를 다쳤는데 발 전체가 퉁퉁 부어올랐다. 심하게 불어올라 내 발이 아닌 것 같은 발을 보니 할아버지의 발이 생각났다. 할아버지의 발은 언제나 아픈 내 발만큼 부어서 탱탱했다. 할아버지는 다리가 너무 아파서 밤에 잠을 잘 수 없다고 할 때가 가끔 있었다. 할머니도 때때로 기운이 없이 허리가 아파서 밤새 뒤척였다고 하신다. 누가 봐도 몸 상태가 좋지 않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당신들의 상태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저 무심하게 아프시구나, 하고 넘겼다. 무엇보다 나는 두 분이 아프실 때 속상하지 않았다. 다친 나를 보자마자 속상함에 잔소리를 쏟아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며 어떻게 몇 년간 함께한 추억이나 공유했던 시간이 거의 없는 관계임에도 이렇게 좋아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그저 손녀라는 이유로 어떻게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건가.
할아버지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웃으신다. 웃음 버튼이 눌린 로봇처럼 허허- 하며 웃으신다. 뭐가 그렇게 좋으실까. 그 웃음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뭐가 그렇게 좋으실까.
우리 집 앞에는 작은 언덕이 있다. 버스 정류장이 언덕 너머에 있어 출퇴근을 할 때는 꼭 그 언덕을 지나야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언덕의 비탈길을 걷다 보면 우리 집이 보이는데 어느 날 옥상에 서있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익숙한 형체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고정하고 걸었는데 곧 할아버지가 날 발견했다. 내가 살짝 손을 흔들자 할아버지가 활짝 웃으며 같이 손을 흔들었다. 말 그대로 정말 '활짝'이었다. 얼굴의 모든 기관이 웃는 것 같았다. 노인 특유의 어색한 박자의 손짓을 열심히 하며 웃는 할아버지가 행복해 보였다. 이상하게 나는 그게 싫었다. 내 손짓 하나에, 내 아는 체 한 번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활짝 웃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싫었다. 나를 너무 사랑하는 그 모습이 싫었다. 그 후로 종종 할아버지는 퇴근시간에 내가 내려오는 언덕을 지켜보았다. 매번 할아버지를 못 본 척하고 지나치고 싶었다. 나만 바라보는 할아버지를 모른 척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인사 하나에, 내 웃음 하나에 행복해질 할아버지의 세계를 저버릴 수 없어 결국 항상 고개를 들고 할아버지에게 손을 흔들었다. 언제나 할아버지는 내가 손을 흔들자마자 활짝 웃으며 같이 손을 흔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내리사랑을 느낄 때면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여전히 나는 그들을 미워하고 앞으로도 계속 미워할 일이 생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들의 깊은 사랑을 나는 도저히 다시 돌려줄 수 없음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까. 언젠가 그들의 내리사랑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했던 순간들을 후회하게 될까. 나를 보며 웃는 주름진 얼굴들을 마주할 때면 슬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