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널 미워해
할머니, 할아버지의 성함에는 둘 다 '삼'이 들어간다. '이런 운명적인 만남이!'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얼른 오해를 풀어야 할 것 같다. 매우 간단하고 구시대적인 이유로 나의 조부모님은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두 분 다 셋째 시기 때문이다. 각 집안의 셋째 아들과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했으니 두 분이 서로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자유롭게 연애하며 서로를 결혼 상대감으로 고려하면서 서로 맞춰나갈 것을 약속하고 결혼해도 어렵다는 게 결혼생활이라는데,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평생을 함께 하는 관계가 된다는 건 정말 험난한 가시밭길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두 분의 6n년의 결혼생활 중 앞 40년의 시간을 보지는 못했지만 후반 2n년을 옆에서 지켜봤을 때 대충이나마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너무 다른 사람이다. 즉, 서로 잘 맞지 않는다.
같이 살게 되었을 무렵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이상으로는 노인이긴 하셨지만 여전히 기운이 넘치셨다. 할머니는 매일 출근하셨고, 할아버지도 큰댁에 가서 오래 머물며 밭일을 하셨다. 계속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직접 따지며 에너지를 뿜어내셨다. 절대 집에서 가만히 계시지 못하는 혈기왕성함과 불 같은 성격이 두 분의 몇 없는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랄까. 문제는 잘 맞지 않는 불과 불이 만나니 종종 불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소리 지르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고함소리가 종종 우리방에 넘어왔다. 단순히 몇 번 고함소리가 들렸다가 잦아지는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고성이 오가는 말싸움이었다. 억양이 강한 경상도 사투리가 더욱 싸움을 무섭게 들리게 했던 것 같다. 초반에는 내가 두 분의 싸움소리에 놀란 기색이었는지 부모님이 두 분은 원래 저러신다고 달랠 정도였다. 안방에서 들리는 싸움소리에 익숙해졌을 때쯤 사촌동생이 놀러 온 적이 있다. 거실에서 함께 과일을 먹고 있는데 들려오는 할머니, 할아버지 고함소리에 놀라 사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와 동생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괜찮아. 두 분은 원래 저러셔. 이건 우리 집에서 일상이야." 그 말에 엄마가 깔깔 웃었다. 엄마를 웃게 했다는 것에 뿌듯해하며 나도 함께 웃었다. 그때는 어른들이 고함을 지르며 싸우는 일이 일상인 집안이 초등학교 저학년의 아이에게 폭력적인 환경이라는 걸 엄마도, 나도 알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후에 내가 갈등상황을 잘 직면하지 못한다는 걸, 조금만 말소리가 커지면 힘이 쭉 빠지고 주눅 든다는 걸 알았다. 내 의견을 피력해도 되는 상황에서도 의견충돌을 피하기 위해 입을 다물어버리는 이 성격의 형성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지겹도록 듣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고함소리에 무의식적으로 위축되었던 어린 시절이 그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사춘기를 겪고 내 자아가 생기면서 언젠가부터 두 분의 부부싸움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큰소리를 내다가 어느 순간 온 힘을 다해 빽 소리를 지르는 찢어지는 듯한 할머니의 목소리도, 당장이라도 욕을 내뱉을 거 같이 고조되어 있는 할아버지의 사투리도 싫었다. 점점 내 마음에서 두 분이 밀려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쌓여가던 중 내가 본 조부모님의 부부싸움 중 가장 큰 싸움이 발생했다. 점점 커지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함소리가 평소보다 유독 크다고 느끼긴 했지만 갑자기 두 분의 방문이 벌컥 열리는 건 예상치 못해서 잔뜩 당황하던 찰나 할머니가 울면서 그대로 현관으로 향했다. 엄마가 당황해서 할머니에게 다가가며 현관문을 열려는 할머니를 만류했지만 할머니가 주름진 얼굴 위로 계속 눈물을 쏟으며 문을 열었다. 같이 못살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나가버린 할머니를 따라나간 엄마는 결국 혼자 돌아왔다. 그날로 할머니는 집에서 가까운 오피스텔에 전세 계약을 해서 집을 나가셨다. 말 그대로 '할머니가 뿔났다'였다.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가출에 온 가족이 어안이 벙벙했지만 할머니와 같이 살지 않으면 엄마가 조금이나마 편하겠다 싶어 나는 내심 기뻤다. 그때는 대학생이던 때라 이미 할머니와의 교류가 거의 없어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다고 해서 일상이 달라지거나 그의 빈자리를 느낄 것도 없었다. 할머니가 집을 나간 지 일주일 지났을 때까지 나는 할머니의 오피스텔을 가보지 않았다. 그 사이에 거의 매일 할머니를 찾아간 엄마가 그래도 가보는 게 맞다고 나를 다그쳤고 사실 나도 가는 게 맞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주일이 지나서야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는 문을 열자마자 나를 끌어안고 울면서 내 볼에 뽀뽀를 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잊을 수 없다. 불쾌함. 갑작스레 나를 자신의 품으로 이끌던 힘과 볼에 닿았던 입술이 감촉이 불쾌해 집에 들어서서 몰래 볼을 닦았다.
매일 할머니 집에 들렀던 고모가 이미 할머니의 집에 계셨다. 오피스텔은 집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작았다. 현관의 신발장 옆에 싱크대와 드럼세탁기가 바로 붙어있었고 직사각형 모양의 방안은 침대와 책상, 의자가 놓여있으니 꽉 찼다. 할머니와 고모, 아빠, 엄마, 나, 동생 여섯 명의 사람이 빽빽하게 앉아있는 좁은 공간에서 할머니는 다시 한번 통한의 눈물을 흘리셨다. 집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작은 방에 혼자 살고 있는 본인을 안쓰러워하고 계셨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 좁은 방은 당신의 신세를 더욱 초라하게 느끼게끔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뽀뽀를 불쾌해하고 할머니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나에게 스스로 충격받았다. 내가 그 정도로 할머니를 싫어하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인식했다. 그리고 그런 나는 내가 생각해도 그 누구에도 차마 말할 수 없을 만큼 냉정하고 못된 손녀였다.
결국 할머니는 약 한 달 만에 가출을 끝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는 오피스텔이 어디 있는지 절대 알려주지 말라고 가족들에게 신신당부를 하셔서 할머니의 행방을 알지 못했던 할아버지는 a4용지 한 장이 가득 차게 사과의 편지를 쓰셨다. 그 편지만으로 할머니가 돌아오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할머니도 1인 가구 생활이 불편하셨을 것이다. 할머니는 가출 생활 중 할아버지가 집에 안 계실 때 빨래를 한 아름 들고 오셨다. 빨래는 엄마의 몫이었던 것이다. 엄마와 아빠, 고모가 자주 식사거리와 과일을 들고 찾아갔지만 아무래도 집에서 엄마가 식사를 챙겨드렸던 것만큼은 안될 테니 끼니를 챙기는 것도 제법 어려우셨을 것이다. 엄마도 계속 할머니에게 돌아오라고 설득했다. 나는 할머니와 따로 살면 엄마가 좀 더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엄마가 두 집 살림을 해야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할머니의 가출은 한 달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난 내가 나의 조부모님을 얼마나 싫어하고 있었는지 스스로 처음 자각하게 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불편해하는 것과 내가 조부모님을 불편해하다 못해 싫어하고 있음을 인지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절대 싫어하면 안 되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내가 아주 나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변명거리를 찾았다. 왜 내가 그들을 미워하게 되었는지 이유가 필요했다.
할머니는 함께 살게 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일을 다니셨다. 이십 년 넘게 보험회사를 다니셨던 할머니는 한창 전성기일 때 수입이 많은 설계사로 신문에 실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일을 좋아하고 성실했던 할머니는 늘 아침 일찍 나가 저녁에야 집에 들어오셨다. 주말에도 사람들을 만나기 바빠 집에 계시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손주들에게 푸짐한 음식을 챙겨 먹이는 보통의 ' 정이 많은 할머니'의 이미지는 나의 할머니가 아니었다. 나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든 음식을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나에게 할머니는 출퇴근하고 돌아와 엄마가 챙겨주는 저녁을 드시고 드라마를 보는 어른이었다.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적은 나는 자연히 할머니와의 유대가 깊지 않았다. 가끔 용돈을 주시며 할머니가 표현을 잘하지 못해서 그렇지 나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어린 나에게 그 말은 크게 남지 않았다.
할머니가 나이 들어 점점 집에 계시는 시간이 많아질 때쯤 이미 나는 십 대 중반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점차 나와 동생에게 조부모-손녀의 유대감을 바라셨다. 주말 아침, 일반인 가족들이 출연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속 화목한 조부모와 손주들의 모습을 보며 할머니는 우리 손주들을 너무 조용하고 끼가 없다고 종종 말씀하실 때 나는 억울했다. 내 눈에는 서로 친근해 보이는 티브이 속 조부모와 손주가 함께 쌓아왔을 시간이 보였다. 나는 할머니의 돌봄을 받아본 기억이 없었다. 서로 사이의 공백이 쌓인 세월을 모른 채 손녀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애정을 요구하는 할머니의 태도에 거부감을 느꼈다.
할아버지도 불편하고 미울 때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사회질서나 예절에 대한 인식이 1960~70년대에 머물러 있다. 할아버지는 강박으로 의심될 만큼 이따금씩 대대적으로 방구조를 바꾸시곤 했는데 이때 가족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도와야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셨다. 난리가 나는 방에 할머니는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르시고 가구를 옮기느라 끝도 없이 자신의 시간을 뺏기던 아빠는 어느 날 폭발하여 할아버지와 싸우고 집을 나갔다. 이 정도로 집안 분위기가 안 좋아졌으니 이제 그만하시겠지 했던 나는 얼마나 순진했던지. 할아버지는 동원할 아빠가 없자 위층에 사는 아저씨에게 짐 옮기는 걸 도와달라고 해야겠다면서 나를 경악하게 했다. 결국 엄마가 할아버지를 극구 말리며 할아버지와 함께 가구를 옮겼다. 여전히 이웃과의 교류가 당연하고 남성 어른이 집안의 최고 상위자인 과거에서 살아가는 할아버지가 어느 시기부터 창피하고 싫었다. 할아버지에게 질리기도 한 것 같다. 어린 시절 마냥 따뜻하게만 느껴지던 할아버지가 어느 순간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나는 차츰 조부모님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미워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와 상황을 열심히 찾고 설명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이 타당해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아무리 이유를 나열해도 마음은 편해지지 않는다. 답답함을 토로할수록 결국 남는 건 죄책감이다.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살아왔을 사람들을 손녀인 내가 미워한다는 사실.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온전히 그들을 사랑만 한다고 말할 순 없다. 나의 감정을 모른척하는 거짓말이니까. 언제나처럼 결국 나는 죄송해진다. 죄송해요. 할머니, 할아버지. 이렇게 못된 손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