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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winssoon Dec 10. 2018

조산기의 발견

임신 29주, 첫 입원생활이 시작되었다.

 내 체구가 작다고 느껴본 적은 별로 없다. 키는 딱 대한민국 성인 여성 평균, 몸무게는 그보다 좀 부족하지만 특별히 마른 편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쌍둥이를 임신했다고 말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그 작은 몸으로 어떻게 쌍둥이를...(품냐, 낳냐, 키우냐)."였다. 난임 클리닉을 졸업하고 일반 산부인과로 옮겨 만난 새 주치의 역시 날 처음 본 순간부터 아담한 체구를 걱정했다. 쌍둥이 임신에 적합한 체형이 따로 있는 건 아니겠지만 아기들이 각각 2.5kg까지만 자라도 몸무게만 5kg, 양수까지 합하면 상당한 무게가 될 테니 그 걱정도 납득은 된다. 이후 정기 검진 때마다 그녀는 조산 방지를 강조, 또 강조했다. 산책도 금지, 외출도 금지, 마사지도 금지, 무조건 집에서 누워 지내다 보면 시간이 흘러 흘러 출산의 날이 올 거라며 번번이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다. 그렇게 임신 중기를 보내고 후기로 진입하던 29주 차 정기 검진일, 그녀의 우려는 현실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오늘 집에 못 가겠네요.    

 

"자궁 경부 길이가 2센티 조금 넘네? 오늘 집에 못 가겠네요." 처음부터 35주를 목표로 잡았던 주치의가 29주에 내게 입원을 통보하던 순간,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불과 2주 전 대학병원 진료 때만 해도 3센티가 넘었던 자궁 경부 길이가 왜 갑자기 짧아졌는지, 심지어 끝부분이 깔때기처럼 벌어져 위태로운 모양이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눈앞의 초음파 영상은 내게 '이것이 현실'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자궁의 수축 주기와 정도를 확인하는 태동 검사 결과 그래프도 내 자궁의 요란하고도 규칙적인 수축 운동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아직 수축 운동을 할 때가 아닌데... 아니, 해서는 안 되는 때인데 말이다. 이대로 가다간 조기 진통, 조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임신 14주 때부터 잦은 배뭉침을 경험한 나는 자궁 수축에 어느 정도 익숙했고, 배가 커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만 이해했다. 실제로 누군가는 그렇기도 하지만 내 경우는 결코 자연스러운 증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침 처음으로 남편 없이 혼자 병원에 간 날이었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몇 가지 검사를 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후 분만실로 향했다. 이곳에서 수액을 맞으며 입원실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세명의 산모가 진통 중이었고, 간호사들은 분주하게 수술을 준비하는 듯했다. 리얼한 진통 소리 가득한 분만실 풍경은 너무 생경했고, 환자복을 입고 그곳에 누워 있는 나 자신은 더더욱 낯설었다. 갑자기 커튼이 열리고 간호사가 들어와 항생제 알레르기 테스트를 하겠다며 내 팔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었다. 순간 "아아!" 비명과 동시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터져 흘렀다. 일단 주사가 진심으로(!) 아팠다. 피부에 뜨거운 물을 주입하는 것 같은 통증이었는데 전에 경험하지 못한 매우 불쾌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혼자 입원 수속을 밟으며 서럽고, 걱정되고, 무서웠던 감정이 와르르 눈물에 섞여 쏟아졌다. 당황한 간호사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면서도 한동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사실 쌍둥이 임신부에게 입원은 흔한 일이다. 건강하게 주수를 다 채우고 출산하는 경우도 있지만 꽤 많은 쌍둥이 임신부들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씩 입원하기도 한다. 노산, 인공 임신, 쌍둥이까지 삼박자 다 갖춘 고위험 임신부라도 간절히 피하고 싶었던 입원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나 남은 1인실에 배정받고 항생제와 자궁 수축 억제제인 라보파를 맞기 시작했다. 라보파는 조산기로 입원한 임신부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주사제이다. 이 주사를 맞고 하루 이틀 만에 자궁 수축이 완화되어 퇴원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주사를 떼면 곧바로 자궁 수축이 재발해 출산 때까지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달고 지내는 경우도 있다. 라보파의 부작용은 매우 다양하고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볍게는 손이 떨리거나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차는 증상 등이 일어날 수 있다. 심한 경우엔 폐에 물이 차기도 하고, 심장에 큰 부담을 주기도 한다.


 부디 라보파가 내게 잘 맞길 바랄 수밖에... 하지만 난 주삿바늘을 꽂은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소문대로 무시무시한 라보파 부작용을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손은 숟가락도 들 수 없을 만큼 덜덜 떨렸고, 대화는커녕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숨이 턱까지 찼다. 당연히 밥은 한 술도 삼키기 어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작용을 견디며 이틀 동안 라보파를 맞았지만 자궁 수축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경우 투약량을 늘려야 하지만 주치의는 내가 더 이상 라보파를 맞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남은 대안은 하나뿐. 트렉토실(트렉시반, 아토시반으로 불리기도 한다)로 약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라보파보다 부작용이 덜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보험 적용이 제한적이라 3회(1회가 48시간 분량)까지만 보험이 적용되고 이후는 비보험으로 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리고 그 비용은 회당 대략 70-80만 원 선으로 상당히 비싼 편이다. 하지만 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트렉토실이 잘 들어 조기 진통을 빨리 가라앉히고 집에 갈 수 있기만 바랬다.          


좌) 입원을 결정 지은 태동 검사 그래프. 자궁 수축이 규칙적이면 더 안 좋은 징조다. 우) 입원 3일째, 라보파에서 트렉토실로 바꾸고 나서야 좀 살 것 같았다.


내일은 집에 갈 수 있나요?


 트렉토실로 바꾸고 나니 이틀간 나를 괴롭히던 모든 증상이 동시에 사라지고 자궁 수축도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몸이 편해지자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주말만 보내고 퇴원할 거라 생각해 1인실을 선택했는데 입원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트렉토실은 그보다 더 큰 부담이었다. 계산기를 대충만 두드려도 만만치 않은 자릿수의 숫자가 나왔다. 장기전이 될 것을 대비해 6인실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비용도 큰 부담이지만 남편이 없는 낮 시간 동안 말 섞을 사람이라도 한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6인실의 공기는 내 예상과 전혀 달리 싸늘하고 무겁기만 했다. 그리 넓지도 않은 공간에서 모두가 하루 종일 커튼을 꽁꽁 둘러치고 지내는데 혹여 오가다 마주쳐도 서로 눈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배정받은 자리는 침대와 침대 사이, 창문도 벽도 없이 침대 하나 빠듯하게 놓인 공간이 전부였다. 라보파를 다시 맞은 것도 아닌데 숨이 턱턱 막혔다.


 당황스러운 조기 진통, 마음의 준비도 없이 시작한 입원 생활,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 하루하루 기약 없이 미뤄지는 퇴원... 여기에 숨 막히는 6인실의 공기까지 더해져 나는 점점 더 심약해졌다. 오늘은 퇴원할 수 있을까, 내일은 갈 수 있겠지... 아침마다 진행되는 태동 검사 그래프는 이제 대충 봐도 '오늘도 못 가겠구나'라는 감이 왔다. 그러다 결국 입원 5일째 되는 날, 회진 온 주치의 앞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져버렸다. 내 생애 자주 만난 적 없는 '한 번 터지면 대책 없는' 눈물이었다. 숨소리도 다 들릴만큼 가까운 옆 침대에는 낯 모르는 사람들이 누워 있고 맞은편 침대에서도 한창 회진이 진행 중이었는데, 머리로는 너무 민망하고 창피한 상황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눈물은 도무지 수습불가였다. 말 그대로 멘탈붕괴, 정신줄이 풀린 것만 같았다. 조용히 나를 지켜보던 주치의는 하루 뒤 초음파 검사를 지시하고 돌아갔다. 초음파 검사 결과가 괜찮으면 주사를 떼고 한 나절 지켜본 후 자궁 수축이 재발하지 않으면 퇴원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엔 자궁 수축이 거의 없었고 태동 검사 결과도 좋았다. 간호사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진료실로 향하며 오늘은 집에 갈 수 있길 조용히 빌었다. 하지만 초음파 검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간호사가 "어어, 어머! 얘들아, 이러지 마."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모니터를 들여다보니 (더 아래쪽에 있는) 첫째 아기가 신나게 태동을 하면서 자궁 입구를 발로 뻥뻥 차고 있었다. 아기가 발로 찰 때마다 자궁 입구가 깔때기 모양으로 휙휙 벌어졌다. 그 광경을 본 나는 직감했다. '오늘도 퇴원은 물 건너갔구나...' 예상대로 주치의는 이 상태론 나를 내보낼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다시 휠체어에 의지해 병실로 돌아가는 동안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비록 겁 없이 자궁문을 뻥뻥 차긴 했지만 건강하게 잘 지내는 두 아기를 보고 다시 용기가 난 걸까. '그래, 며칠 더 병원에 있는다고 무슨 일이 생기겠어?', '어차피 집에 가도 계속 누워있는 건 똑같지.' 그렇게 스스로 위로하며 병실에 도착했다.        


 퇴원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은 후엔 새벽마다 나를 초조하게 한 태동 검사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았고, 하루 두 번 아기들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두 아이가 무사하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했다. 그렇게 입원 일주일째 날을 맞았다. 주치의는 또 한 번의 초음파 검사와 태동 검사 후 일단 퇴원을 허락해주었다. "안심할 상황은 아니에요. 하지만 장기전이 될 텐데 정신 건강도 중요하니까... 집에서 주말 보내고 온다고 생각하고 다녀와요." 난 다시 입원 생활을 하고 싶지 않은 바람을 꾹꾹 눌러 담아 그녀에게 인사했다. "부디 아무 일 없이 지내다가 다음 정기 검진 때 뵐게요." 그리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애써 붙잡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병원문을 나섰다. 입원 기간 중 내게 웃음과 위로를 함께 주었던 한 간호사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아이 낳는 거, 참 뜻대로 안 되죠? 아이 가지는 것도 뜻대로 안 되고요. 그런데 제가 겪어보니 말이죠. 아이 키우는 건 더 뜻대로 안 되더라고요." 그녀 말대로 (적어도 아이 낳는 일에 관해선) 내 뜻대로 되는 게 정말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좌) 다행히 입원 초기에 비해 자궁 수축이 많이 줄었다. 매일 아침 이 검사는 나를 초조하게 했다. 우) 일주일만의 퇴원 후 집에서도 침대로 직행. 무조건 누워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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