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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문 Sep 27. 2023

반대로 걷던 꿈

있지, 나는 아주 오래된 꿈을 꿔. 그 꿈속의 계절도 여름인지라, 꿈을 꾸고 나면 꼭 꿈이 현실 같고, 현실이 꿈같아서 뜬 눈으로 천장을 멀뚱히 바라봐. 꿈의 잔상이 천장 위로 그려지면 다시 눈을 감고 싶어 져. 돌아가고 싶어서일까. 두 눈을 감으면 뜨거운 공기가 온몸에 내려앉아 더는 깊은 잠에 들 수 없게 해. 밤 사이 뒤척이느라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목덜미에 들러붙어 있었고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 바람은 그저 뜨겁기만 해. 이 지독하고, 질긴 여름의 끝은 어디일까. 어쩌면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서 이렇게 더운 건지도 모르겠어. 뜨겁게 달궈진 손을 두 눈 위로 올려놓고서 간절히 어둠을 찾아. 손 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은 너무 밝아서 꿈속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몸을 뒤척이곤 해. 어떤 온도도 느끼고 싶지 않아, 꿈속이라면 그런 게 가능해지거든.


눈을 감으면 어둠이었다가, 그 어둠 위로 빛이 서서히 번지면 다시 꿈 속이야. 초록과 초록이 뒤엉킨 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려. 그들의 죽음을 안 뒤론 그 울음이 너무 처절해서 시끄럽다거나 그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다거나 그러진 않아. 매미의 울음이 끝나면 여름도 끝이 나고, 어느 날엔 드문드문 매미의 사체를 발견하겠지. 울다 지쳐 죽어버렸을까. 어쩌면 사람도 울다가 지쳐 죽을 수 있지 않을까. 슬픔이 온몸에 가득 차 계속해서 울다가, 목놓아 엉엉 울다가 결국 울음이 목에 걸려 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짓고서 죽음을 맞이했을까. 그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가만히 닦아주고 싶어.


아주 오래된 꿈 속에서 때론 밤바다를 걸었어. 누군가와 함께이기도 했고 혼자이기도 했다가, 함께 걷던 누군가가 저만치 멀어져 결국 혼자 남겨지기도 했지. 밤바다는 수면과 하늘의 경계선이 사라져 그래서 꼭 하늘이 바다 같고, 바다가 하늘 같아. 아니 어쩌면 내가 반대로 걷고 있는지도 모르지. 이건 꿈이니까. 발 사이사이로 감겨 들어오는 건 바닷물일까 모래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구름일까.


혼자이지 않았던 그날을 떠올려.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였는데 누군지는 모르겠어. 처음 본 얼굴은 꿈속에선 유난히 익숙했는데 이름은 알지 못했지. 꿈속에서 이름을 부르는 건 아주 위험했으니까. 나는 바다 같은 하늘을 걷고, 너는 하늘 같은 바다를 걸었을까. 그래서 자꾸만 우리가 반대로 걷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멀어진 너를 떠올리며 여전히 반대로 걸어. 어둡고 눅눅한 공기를 온몸에 두르고서 이곳이 바다의 끝인지, 하늘의 끝인지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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