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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관찰자로 살아가는 법

by 끌레린

소중한 글쓰기 모임을 결석하면서까지 참석한 이은경 작가의 강연회. 자녀교육 분야의 다작 작가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그녀에 대한 관심이 컸던 터라, 강연 공지를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신청 버튼을 눌렀다. 우리 동네에 정말 드물게 찾아오는 강연이었기에 기대는 더욱 컸다.


책 한 권 읽지 않고 참석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녀의 최신작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를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책을 읽어가며 작가에 대한 내 생각은 점차 변화했다. 처음에는 '욕망의 화신' 같았던 그녀가 '삶이 참 괴로웠겠구나'라는 연민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중반부에는 시니컬하면서도 톡톡 튀는 문장들은 흥미로웠고,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진정한 '다정한 관찰자'가 작가 본인이 아니라 그녀의 자녀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이 울컥했다.


강연을 들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다정한 관찰자가 되어주었을까?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큰아이에게는 그렇게 해주지 못했다. 아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었지만, 독려보다는 추궁을 일삼았다. 그래서 큰아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진심으로 사과했고, 서로를 이해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이제는 대학생이 된 아이에게 "책을 읽어라, 방을 치워라, 먹은 뒷정리 좀 해라"는 잔소리 3종 세트 이외에는 한 발자국 물러서서 조언자 역할에 머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사춘기 한복판에서 매일 엄마에게 독설을 날리는 둘째를 받아주어야 하는 현실은 솔직히 힘들고 지치며 허무하다. 그렇다. 아이 둘을 키운다는 것은 이은경 작가가 언급했듯이, 엄마의 마음이 너덜너덜해진다는 의미와 다름없다. 가끔 엄마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오롯이 내 이름으로만 살고 싶은 충동이 들곤 한다.

밖에서는 잘하면서 왜 집에 오면 안 되는, '가족 간의 예의'라는 주제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힘겹게 헤쳐 나가는 삶의 여정을 다정하게 지켜보면서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를 건네는 삶.

가족이 실수나 실패를 해도 꾸짖거나 혼내거나 무시하지 않고, 힘들었을 마음을 헤아려 먼저 위로해 주는 삶.

갈등을 불러일으킬 만큼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고, 외롭다고 느낄 만큼 지나치게 멀지 않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의 취미와 성향을 존중해 주는 삶.

서로를 응원해 주고, 기꺼이 도움을 요청하며, 바로 도움을 건네주는 삶.

어느 한쪽, 특히 엄마의 일방적인 희생이나 가부장적인 순종과 순응을 강요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삶.

그래서, 내 뒤에는 든든한 내 편이 버티고 있다는 마음에 안심할 수 있는 삶.

이 얼마나 이상적인, 다정한 가족의 모습인가.


나도 몸이 아프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내 몸 보전과 내 시간 확보를 위해 가족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덕분에 가족 사이에 좋아진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오늘부터는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나만의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무심함 대신 살가운 대화를 시도해 본다. 이은경 작가의 책이 일깨워준 '다정한 관찰자'의 자세로,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가정을 만들어가고 싶다. 아직 늦지 않았다.


오늘 이은경 작가에게 받은 사인. 책을 사지 않고 밀리의 서재로 보았기에 노트에 받았다. 나한테 건강하라고 얘기해 준 그녀에게 감사드린다.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한 관찰자가 되어주는 삶.
각자의 삶의 여정을 따뜻한 눈빛으로 격려하는 삶.
실수와 실패에도 섣불리 개입하거나 꾸짖지 않는 삶.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 도움을 청하고 건네는 삶.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나 복종을 강요하거나 기대하지 않는 삶.

– 이은경, <나는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

* 대문 이미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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