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나는 두려움 속에 살았다.
재발에 대한 두려움, 회복되지 않을 것 같은 내 몸에 대한 두려움, 영원히 뛰지 못할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어둠 속에서 혼자 숨을 쉬고 있으면, 일이 많이 한 다음에는 한쪽 폐가 반으로 잘린 내 몸이 아프고 낯설어 불안했다.
그래서 책을 찾기 시작했다.
나를 안심시켜 줄 책이 필요했나 보다. 아니면 이 두려움을 함께 견뎌줄 누군가의 목소리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의사들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 쓴 책들,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이야기,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기록까지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갔다. 그렇게 죽음을 마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죽음에 대해 읽을수록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삶이 더 선명해졌다. 더 애틋해졌다. 내 삶이 더 의미 있고 소중해졌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절실함을 느끼며, 나는 하루하루가 더 소중해지는 것을 느꼈다.
특히 젊은 신경외과 의사이자 폐암 환자가 죽음을 앞두고도 삶을 사랑했던 기록을 남긴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나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주 1). 수술대 위에서 환자의 뇌를 다루던 손으로, 이제는 자신의 죽음을 기록했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했는지! 그의 문장들은 담담했지만 깊었다. 아픔과 두려움 속에서도 그는 위트를 잃지 않았다.
"죽음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삶이 무엇인지는 안다."
그는 죽음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대신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묻고, 최선을 다해 남은 생을 사랑했다. 의사로서의 정체성과 환자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그는 인간으로서 삶을 마무리하기를 선택했다. 아내와 함께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고, 딸이 태어나는 것을 보았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젊은 아내와 어린아이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에필로그를 쓴, 남겨진 아내 루시의 글은 내 가슴을 더욱 저미게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 함께 꿈꾸던 미래가 사라진다는 것. 그 슬픔 속에서도 그녀는 남편이 살았던 방식을 존중했고 추모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라고.
나는 책장을 덮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픔과 눈물 속에서 이상한 위로를 받았다. 카타르시스뿐 아니라 이상한 연대감을 느꼈다.
그렇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두려움 속에서도 삶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증명해 준 누군가가 존재했으니까.
형이 폐암으로 죽자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10년을 살아간 이야기(주 2)는 또 어떠한가? 형제간의 우애가 특별했고, 자신의 결혼식날이 형의 장례식이 되었던 남자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 세상과 자신을 고립시켰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물었을 것이다.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느냐"라고.
하지만 그는 답을 서두르지 않고, 미술관 전시실을 지키며 그저 그림들을 보았다.
수백 년 전 죽은 화가들의 작품을, 죽음을 담은 그림들, 삶을 담은 그림들을.
"슬픔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슬픔 속에 머무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그는 매일 죽음을 생각하며 살았다.
미술관 벤치에 앉아, 17세기 정물화 앞에서, 이집트 석관 옆에서.
죽음을 응시하는 것이 오히려 삶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다.
10년 후 그가 미술관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슬픔을 이겨서가 아니었다. 슬픔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자신의 일부가 되도록 허락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변화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 우리 안에 남는다."
이 책들이 나를 치유해 주었을까?
수술 자국은 여전히 아프고, 숨은 여전히 가쁘다. 재발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문장들은 내게 다른 것을 주었다.
두려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삶을 사랑하는 법.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칼라니티는 죽음 앞에서 삶을 선택했다. 브링리는 슬픔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았다. 그들의 문장은 내게 말해주었다. 너도 할 수 있다고. 두려워해도 괜찮다고. 그 두려움을 안고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나는 다시 책을 펼친다. 밤에도, 이른 새벽에도. 이 문장들이 내 곁에 있는 한,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었고, 그 속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 감동적인 문장들이 나의 오늘도 힘차게 만들어 준다.
우리는 모두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삶을 계속할 것인가.
책장을 넘기며, 그리고 나의 글을 쓰면서 나는 조금씩 답을 찾아간다. 조금씩 나를 회복해 간다.
책 읽기와 글쓰기가 최고의 치유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여러분도 이 기쁨에 동참하면 좋겠다.
(주 1) 폴 칼라니티,『숨결이 바람 될 때』
(주 2) 패트릭 브링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이미지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