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어떻게 출근했는지를 곱씹어 보니 내가 한 일이라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따라가기만 한 것 뿐이었다. 길이 어렵거나 먼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모든 집이 똑같이 생긴데다 똑같은 간격으로 구획되어 있는지라 귀갓길에 길을 잃고 말았다.
그런 나를 구해준 것은 학생들로, 나는 그들의 이름은 커녕 얼굴도 헷갈리고 있는 형국인데 그들은 내 집이 어디에 있는지까지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실제로 첫 퇴근길에 내가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길을 잘못 든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 준 덕분이었다.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이 땡볕 아래 어린 친구들은 자기 집도 제대로 못 찾아가는 덜 떨어진 이방인을 위해 땀을 흘려가며 달려와주었다.
나중엔 내가 볼 일이 있어 다른 길로 걷고 있는데, 숨이 넘어갈 만큼 달려와 내 집이 그 쪽이 아니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내가 사는 동네는 계획적으로 지어져 집 모양과 간격이 서로 비슷해 초행자는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한 학기가 끝나가도록 내가 길을 잃어버릴까봐 내가 집에 잘 가는지 봐주는 그들의 호의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핑 돌 지경이다.
우리집은 교육청이 소유하고 있는 관사였는데, 겉보기엔 평화로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집의 보안이 상당히 허술하다. 내부에 숨겨진 더 치명적 결점은 이 숨막히는 날씨에도 당연히 에어컨이 없다는 것이다. 집으로써 이보다 더한 치명타가 있을 수 있냐 싶지만, 내가 훗날 ‘비대면 하우스’라고 칭한 이 문제적 집에서 이 두 가지란 사소한 귀찮음에 불과했다. 무릇 좋은 집이란 건물 그 자체로 결정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환경이 중요하지 않던가. 이게 과연 내 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아리송한 비대면 하우스엔 나도 모르는 반려동물과 늘상 보지만 단 한번도 대화를 나누어본 적 없는 이웃이 있었다.
첫째로, 나는 단 한번도 반려동물을 구해볼 생각도 없었고 공식적으로 구한 적도 없다. 하지만 우리집엔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 몰래 살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내가 은밀한 반려동물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은 아침마다 미친듯이 들려오는 이웃의 반려동물 소리 덕분이었다. 아침 4시 50분쯤이 되면 성질 급한 닭 한마리가 외마디 울음소리를 한번 낸다. 그러면 다른 닭들도 함께 합세해서 가열차게 울어대는데 그 때 핸드폰을 확인하면 바로 5시였다. 여러 마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통곡하는 닭 소리를 듣고 처음엔 근처에 양계장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닭의 울음소리는 내가 미디어에서 들어왔던 소리에 비해 너무 처연하게 울려퍼졌기에 주인이 닭을 대거 처분하는 살육의 날인가를 의심하게 할 정도였다. 며칠동안 몸소 경험하고 학교 동료에게 물어본 바로는 그 곳엔 양계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닭들의 아침 코러스에는 특별한 연유가 있지도 않았다. 닭들은 집집마다 반려동물 겸 식량원으로서 존재했고 이들은 원래 그 시각만 되면 일상적으로 그렇게 울었다.
이웃집 닭들이 그 지경을 만드는 것이 아침 5시 쯤인데 이 집에 살기 시작한 초반 몇 주간은 심지어 5시보다 더 빨리 일어났다. 집집마다 얼마나 있는지 모를 닭들이 정확한 타이밍에 선보이는 콜라보레이션도 기가 막힌데, 그보다도 전에 방에서 나는 의문의 소리에 새벽 4시 30분이면 깨어버리는 것이다. 그 소리는 집 천장에서 들렸고 그런 괴상한 소리는 난생 처음 들어봤다.
듣자마자 몸을 확 일으킨 나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 소리는 희미할 때는 귀뚜라미 소리 같다가, 데시벨이 커지면 여름밤의 우렁찬 매미 울음 같아진다. 그리고 매미 울음 사이로 들어본 적은 없지만 쥐소리라고 하면 상상할 수 있을 법한 찍찍거림을 섞어놓은 울음이었다.
벌레 소리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소리가 커서 더 귀를 기울이는데 갑자기 그 소리가 멎었다.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고, 나는 보이지도 않는 그 의문의 벌레가 내 존재를 알아차려 울음을 멈춘 것 같아 긴장이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두두두두두두, 하고 무언가 뛰는 소리가 천장에서 들려오는 것이다! 온 몸에 쫙 돋는 소름에 나는 다시 침대에 누울 수 없었고 침대에서 내려와 일어서기까지 했다. 이 정체모를 찍찍거림과 두두두두 뛰어가는 발소리. 옛날의 한국 국민들이 대대적으로 펼쳤다는 소탕작전이 떠오르며 눈이 질끈 내리 감겼다. 이 존재의 정체란 딱 하나. 아, 그것 뿐이다.
도대체 이 쥐는 무슨 쥐이길래 새벽 4시 30분만 되면 약속이나 한 듯이 우는 것일까. 온 동네 닭들이 5시가 되면 다같이 울어제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에 철저히 현지화된 사막쥐인 것일까. 아프리카 대륙의 상상초월 야생동물들이 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대면할 일은 없지만 원하지도 않는 반려동물 때문에 매일 4시 30분에 깰 순 없으니 나는 적응의 한 방법으로 마음에도 없는 살생을 택했다. 마트에 가서 쥐 박멸 파우더를 집어드니 쥐가 괴로워하면서 배를 내밀고 죽어있는 그림이 보였다. 그것을 카트에 넣으며 내가 정녕 집에서 이런 짓까지 해야만 하는지 진정한 현실 자각 타임이 몰려왔다. 밖에서도 제대로 구경해본 적 없는 쥐를 집 안에서 잡아내야 하다니. 쥐 박멸 파우더를 사야할 것 같아서 사긴 사지만 대체 이걸 어디다 어떻게 뿌려놓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였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면 늘 노을이 졌고, 그 때는 내가 외국에 와 있다는 사실을 좋은 의미로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낯선 땅으로 도피해 비록 지금 난생 처음 쥐를 살생해야하는 입장에 처해 있지만 대자연의 진면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잠시 동안 그런 것쯤은 떨칠 수 있었다. 해가 하루의 막을 내리려고 하는 순간엔 여러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가로등이 저절로 켜지고 저녁을 맞이한 석양의 낮은 하늘은 제 어깨에 푸른 담요를 감싼다. 인공빛의 등장에 낮 동안엔 잘 보이지 않았던 새들의 비행이 그 위로 더욱 적나라하고 둔탁해 보인다.
원치 않는 반려동물도 모자라 이 집이 비대면 하우스가 된 두번째 이유는 절대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웃이 온 사방에 깔려있기 때문이었다. 이 곳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당황스러웠던 점은 내 집 앞에 떡하니 있는 '교도소'의 존재였다. 교도소 주변을 지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교도소 건물 앞을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 건물들은 누가 교도소라고 알려주지 않는다면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담이 높고 내부를 볼 수 없는 평범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 곳의 교도소는 그와는 정반대의 파격적 개방성을 보여준다. 이런 혐오 시설이 일반 민가에 있다는 것도 놀라운 데 교도소 내부를 누구나 볼 수 있다. 죄수들과 일반 시민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높다랗게 엮인 철조망 하나 뿐이다. 그 말인 즉슨 죄수들도 지나다니는 시민 모두를 구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무도 구경하고 싶지 않은 시설을 굳이 왜 이렇게 다 보이게 만들어놨을까 싶어 불쾌하기 짝이 없고, 철조망은 왠지 마음만 먹으면 금방 기어오를 수 있을 것 같이 생겼다. 범죄자들에게도 바깥 세상을 구경할 권리가 있다는 취지인가? 교도소 앞을 오가다 보니 주황색 죄수복을 입은 저들이 일반 시민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저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 같았다.
예상하다시피 나를 처음 본 죄수들은 휘파람을 불거나 불쾌한 말로 목청을 높였다. 비록 철조망 너머에 있었지만 처음엔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일이었다. 철조망 바로 앞에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죄수들과 말을 하지 마시오’. 마당에 빨래를 널러 나오거나 캠핑 의자에 앉아 쉬고 있으면 열심히 밭을 갈던 죄수들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서 있거나 소리를 질러 무언가 말을 걸었다. 덕분에 처음 한 달간은 미칠 듯한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가운데서도 악몽을 꾸었다. 죄수들이 철조망을 넘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집의 허술한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꿈.
죄수들은 특정 시간대면 열심히 밭을 갈았다. 그들이 죄수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이 마을에서 그들만큼 근면성실해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주변 사람들은 저들이 소를 훔치거나 차를 훔친 도둑들이라고 내게 말해 주었다. 아침이 되면 그 누구보다도 빨리 일어나 밭을 갈거나 돌을 캐내는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뇌리에 강렬히 박혔는지 어느날은 죄수들을 길거리에서 만났을 때에도 무엇이 이상한지 즉각 알아차리지 못했다.
'두멜랑 마!'하고 누군가가 쾌활하게 인사를 건넸고 무심결에 인사를 받다가 뭔가 이상해서 인사한 사람을 다시 돌아봤다. 곡괭이로 돌을 캐던 그 사람은 주황색 죄수복을 입은 채로 나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죄수들이 아무런 장치없이 교도소 밖에 나와있다고? 일하는 죄수 두 명 옆에 교도관 한명이 있긴 했다. 아무리 경범죄자에다 모범수여도 그렇지 교도소 밖에서까지 아무런 안전 장치도 없이 일을 시킨다는 것이 나의 상식으로는 너무 느슨해 보였다. 그 이후로도 길을 가다 누군가가 괴성을 질러 돌아보면 죄수들이 트럭 위에 실려가면서 ‘두멜랑 마!’를 외치며 힘차게 손을 흔들던 날도 있었다. 트럭에 철창도 없거니와 손에도 수갑같은 기본적인 안전 장치도 없는 채로, 뛰어내리자면 그냥 뛰어내릴 수 있는 여건이었다. 쟤네들은 이렇게 감시가 소홀한데 도망 안 가나 싶기도 하고 얼마나 교도소가 적적했으면 저렇게 반갑게 인사를 할까 싶기도 했다. 그러길래 물건을 왜 훔쳐서 그 고생을 하는 거니?
시간이 더 지나니 이젠 죄수들을 길거리에서 한두명 만나는 걸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게 됐다. 어느 아침 출근길에는 죄수들이 한둘이 아니라 전부가 우르르 몰려나와서 교도소 밖 길거리의 잔돌을 정리해가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바로 그 옆을 지나가면서도 놀라긴 커녕 ‘도둑들이 아침부터 바쁘네’라고만 생각하고 그 곳을 지나쳤다. 죄수보다 지각이 더 두려울 만큼 직장생활이 이렇게나 무섭다.
노을 무렵의 풍경을 계속 보다보니 이 나라에만 있는 것 같은 특이한 새가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둥그렇게 뭉쳐져 있는 모양에 그것이 새가 맞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어두워져가는 땅거미 속에서 매우 맹렬하게 날아가는 것이 꼭 나에게로 돌진해올 것만 같아 보기만 해도 움찔하고 나 혼자서 놀라게 하는 새였다. 형체를 똑바로 알 수 없는 그 새는 꼭 다른 곳이 아니라 가로등이나 집 주변의 불빛을 맴돌았다. 그런데 그 미확인 비행 물체는 눈으로 좇다보면 꼭 집 근처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그런 광경을 여러번 목격한 끝에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내가 도대체 저 새가 무엇이냐고 현지인들에게 물으면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보고 현지인들이 내게 뭘 말하는 것이냐며 되묻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쥐 박멸 파우더는 구매한 이후 한동안 개봉되지 못했다. 막상 쥐를 직접 박멸하려니 쥐가 죽어도 그것을 처리할 엄두가 안나 차마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 시간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그런 일에 선뜻 마음 준비가 될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끝내자는 생각에 나는 기존 파견자 선생님께 쥐를 잡는 방법을 물었고, 그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 그 집에 쥐가 있다고요? 전 한번도 본 적 없는데.
이 쥐의 특징을 열심히 설명하다가 그러고 보니 내가 이 쥐를 직접 본 적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와 동시에 그 선생님은 웃기 시작했다.
- 그거 박쥐예요.
여태 박쥐는 동굴에서만 사는 줄 알았던 나에게 고정관념의 붕괴가 일어났고, 그 여파는 노을 무렵에 날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미확인 비행물체를 불현듯 연상시켰다. 나는 그 박쥐가 저녁 무렵이면 집 주변을 날아다니기도 하느냐고 물었고 우리집 미지의 쥐와 저녁 무렵의 미확인 비행 물체가 동일한 생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미스터리한 새는 내가 잘 못 본 것이 아니라 집 근처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정말 맞았다. 정확히는 집 주변에 난 환풍구용 구멍으로 쏙 들어가는 것이었다. 날개가 있으면서 찍찍거리는 쥐, 박쥐는 알고보니 이 동네의 모든 집에 무단 점거하며 비밀스러운 반려동물 행세를 하는 동물이었다.
이 동물은 타인의 집에 얹혀 살다보니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발달한 게 틀림없었다. 박쥐는 내가 쥐 박멸 파우더를 개봉하려고 한 바로 다음날부터 더이상 울지 않았다. 자신의 정체가 탄로나자 도망이라도 간 듯 조용한 아침에 이르게 깨는 일은 더이상 없어졌다. 일찍 일어난 어느 주말, 아침에 창고로 쓰는 옆 방에 들어갔다가 오랜만에 천장에서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때마침 시각은 옛날처럼 5시 이전이었다. 층간 소음으로 사태가 더 살벌해지기 전에 녀석이 재빨리 옆 방으로 이사를 갔던 모양이다. 나와 반려동물은 유혈사태 없이 일년 동안 비대면으로 공존했다.
석양 무렵 나는 새의 미스터리를 해결한 이후, 선선한 시각에 산책으로 교도소 주변을 걷게 되었다. 혐오시설을 산책로로 선택한데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는데, 저녁에 이 곳은 불빛이 거의 없어 가로등이 그나마 있는 곳이 교도소이고 그 시각에 죄수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 보였으나 알고보니 그 시각에 야간 순찰을 도는 교도관 한 명은 보초 건물에 상주하고 있었다. 산책의 저녁에 나는 순찰을 돌던 교도관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교도소 내부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교도소 철창에 난 구멍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문제의 교도소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가 옮겨 갔다.
"여기가 치안이 좋은 편이라고 들었는데, 진짜 그래요?"
교도관은 전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다시 물었다.
"누가 그래요?"
"여기 사람들이 그러던데요."
"여긴 강력범죄 많아요. 그냥 미스킴네 집이 바로 교도소 인근이니까 그런 위험이 덜한거죠."
강력 범죄라고? 마을 사람들이 여긴 평화로운 곳이라고 말한 이 곳이?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물었다.
"여기 죄수들 차 훔치거나 소 훔친 사람들 아닌가요?"
"뭐요? 쟤네 다 살인범이나 강간범이에요."
나를 보면서 수줍게 인사를 건네던 그들을 향해 나도 해맑게 인사를 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그러길래 왜 물건을 훔쳐서 그 고생을 하느냐고 생각하다가도 저들 중 어떤 이는 장발장처럼 너무 가난한 나머지 별다른 수가 없어 물건을 훔쳤던 건 아닐까 연민에 빠졌던 날들, 일정한 시각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는 그들의 규칙적이고 열성적인 노동에 왜 진작 저렇게 살지 않았냐며 사회에서 만나는 여느 인간들처럼 그들을 생각했던 날들…! 내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이 곳 마을 사람들은 증언은 가만히 따지고보니 믿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 마을 사람들이란 어린 애들이거나, 이 곳에 살게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이었다. 아, 무식하니까 용감하고 무지해서 행복할 수 있었다.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안 이후 생각해보니 실제로 그 쥐를 본 적도 없었으면서 소리만 듣고 쥐라고 유추했다. 죄수들이 도둑이라는 것도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된 것일 뿐 실제로 그것이 사실인지는 직접 확인할 기회는 없었다. 멀리서 어떤 대상을 바라보고 그것에 대한 몇 가지 단면을 안다는 사실만으로 진실을 안다고 착각한 것이다. 나는 늘상 그들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결코 그 거리란 가까워질 수 없었고, 그래서 진실은 늘 그 너머에 있었다. 박쥐와의 동거는 우리가 서로 피해를 준 일이 없었으니 귀한 경험으로 간직할 수 있겠지만 평생 씻지 못할 죄를 지은 저들에게 너무도 과분한 내 아름다운 착각은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그 후 나를 고민하게 하는 대상에 대해선 내가 '진짜'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말고, 내가 직접 겪어보아서 알 수 있었던 진실. 적당히 안다고 생각하는 그 거리를 좁혔을 때 진실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음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