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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Sep 09. 2021

김종욱 찾기보다 어려운 책 찾기


대의 교육 담론에선 책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다. 수 천년 전부터 지식을 전승하는 원초적 방법이자 공부의 기본 학습 도구인 책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위상이 하락했다. 이젠 학생들의 사교육 광고도 스마트 기기를 함께 대여해주는 상품으로 바뀌었다. 스마트 기기 학습의 가장 큰 장점은 개별화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여러 문제를 풀고, 어떤 문제를 틀렸다면 그 문제에 해당되는 개념 풀이를 바로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그 수준의 학습을 하다가 다시 돌아갔다가 오는 것도 가능하다. 5학년의 책에는 5학년만을 위한 콘텐츠가 있지 3학년, 4학년 과정을 다 숙지하지 못한 학생을 위해 이전 부분을 상세히 설명하는데 공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전의 학습이 잘 되지 않은 학습자들은 새로운 내용을 배울수록 처질 수 밖에 없다. 자신의 단계에 딱 알맞는 비계를 제시해 개별화된 맞춤식 교육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칸이라는 사람이 비영리 목적으로 만든 '칸 아카데미'는 온라인 공간을 이용한 개별화 학습의 성공적인 사례다.

 


스마트 기기 안에 선생님도 있고 책도 있고 백과사전도 다 있으니 어찌보면 책을 통한 공부는 경쟁력이 없어보이기도 한다. 지금 자라나는 세대에게 책이라는 매체는 전혀 매력적이지 못하다. 내가 굳이 읽고 이해하려고 용을 쓸 필요 없이 쉬운 영상 강의가 도처에 존재하고, 시각화된 요점 정리 자료도 찾아보면 널렸다. 그에 비해 책을 통한 공부란 얼마나 지지부진 하던가. 대부분의 내용이 텍스트로 전달되어 있는 책은 문제에 대한 답을 직접 찾아 써내려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어디 그 뿐인가? 선생님은 좋은 공부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며 백짓장같은 노트에 오늘 배운 것을 정리하라고 하신다. 이미 보기 좋게 다 정리된 좋은 자료가 찾아보면 널렸는데 굳이 시간 들이고 손 아프게 모든 것을 다 쓰라니. 기술의 진보로 책은 이대로 사라질까. 그 해답은 책 없는 배움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달려있다.






아무도 환영해주는 이 없는 교장실에서 나선 것은 두 시간 만이었는데, 그것은 학교 어딘가에 있을 교과서를 찾아 나서기 위함이었다. 한국에서는 발에 채이다 못해 학생들이 전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책이 이 곳에선 구경도 하기 힘든 귀한 존재임을 6학년 선생님들을 통해 깨달았다. 그들은 모두 호기심 섞인 눈동자로 나에게 두멜랑, 하고 인사를 건네더니 책의 행방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6A반에 가보세요. 디포네가 6학년 수학, 과학 담당이에요.”


"6B반으로 가보세요. 그 쪽이 부장 반이거든요."


"6C반으로 가봐요. 교과서 몇 권이 거기 있었던 것 같은데."



수학책은 어디서 볼 수 있느냐는 질문 하나로 결국 6학년 전체 반을 다 돌았지만 예상대로 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6학년 내에서도 수학을 특별히 담당하고 있다는 6A의 디포네는 한 술 더 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혹시 두 권 구하면 나도 좀 줘요.”



수학 선생님이 수학책이 없는 것도 모자라 처음 본 외국인에게 자기 것도 하나 구해달라니. 이게 상식적인 상황인가 싶어 고개를 연신 갸웃거릴 수 밖에 없다. 선생님도 필수 과목인 수학책이 없다면 학생들에게 책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뭘 참고하여 그 방대한 내용을 가르치며, 애들은 무엇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지 의아해졌다.


이리저리 물으러 다닌 덕인지 6C반의 담임인 무씨메가 얼마 후 수학책을 찾았다며 내게 그것을 건네주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후, 그 귀하디 귀한 수학 교과서를 경이로운 눈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찢어져 이리저리 분해되기 일보직전인 수학 교과서는 이 교과서를 언젠가는 사용했을 선생님의 이름표와 함께 테이프로 간신히 칭칭 감아져 있었다. 이마저도 아주 먼 옛날의 영국의 교과서였다. 영국에선 그 이후로 수십 번 개정되고도 남았을 아주 옛날 교과서처럼 보였다.


참고용으로 몇 권만 있고 정리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실제로 교과서를 가진 사람이 몇 없다.


한국이라면 책의 부재가 기술 진보를 발판으로 한 책으로부터의 초월을 의미하겠지만, 지구 반대편의 어떤 다른 나라에선 책의 부재가 곧이 곧대로 결핍을 의미한다. 이 나라에서는 교과서가 보급되어 있지 않아 선생님들조차도 교과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반면 한국은 모든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로도 부족해 교육과정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틈만 나면 개정한다. 교과서엔 문제와 지문, 개념 설명은 물론 초등학교 교과서의 경우 구체물로 조작 활동을 하며 실체로써 이해를 돕도록 만들기 부록도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


교과서는 반드시 학습해야하는 필수 학습 요소를 정석으로 실어놓은 책이다. 공부를 찬양하는 대한민국에서 길이 회자되는 레전드 명언인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어요'라는 말은 사실 과장이 아니다. 교과서가 모든 학습 성취의 내용이자 곧 평가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백 퍼센트 이해했다면 평가에서 모르는 것은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과서는 '자기주도적 학습'을 표방하기 때문에 선생님의 설명 없이 학생이 홀로 공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런 일은 없어야 겠지만 만약 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수 없는 경우, 교과서만 있어도 학생 스스로 공부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놓았다는 뜻이다. 교과서는 학습 내용임과 동시에 평가의 기준이 되고, 또 학습의 길잡이가 된다.


교과서가 없는 이 곳의 수업은 철저히 선생님의 판서에 의존한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판서를 공책에 베끼며 선생님의 설명만으로 개념을 이해하고 시험 대비를 위해 선생님이 내주신 연습 문제를 풀어본다. 그 말인 즉슨 오직 선생님 한 명이 전 과목 모든 내용을 계획하고 조직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만들어내는 교육과정과, 그 교육과정에 의거해 다른 전문가들이 고심해 만들어내는 교과서를 교사 한 명이 개별적으로 잘 만들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빠지는 내용 투성이에 학습 내용의 위계, 학습자의 이해도나 흥미도 전혀 고려되지 못하니 교육의 질이 어떤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이 곳에서의 생활이 끝나갈 때 즈음 교육부 직원들과의 간담회가 있었다. 각 선생님들은 현장에서 느낀 개선점을 몇 가지 생각하고 그 자리에 참석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선생님은 만장일치로 모든 학생과 선생님이 '책'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런데 전혀 뜻밖에도 교육부는 교과서에 관한 이야기엔 시큰둥했고 다른 화두를 던졌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한국처럼 전자 기기에 능한 인재를 키울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나를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은 또 대동단결하여 이런 의사를 전했다. 선생님, '책'부터 갖추셔야 합니다.


소위 말하는 IT 역량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보츠와나 정부도 고심을 하고 있음엔 틀림없었다. 그리하여 컴퓨터 경진대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전 학교에 데스크탑은 안되더라도 태블릿을 제공한 것이다. 교육부는 IT 역량을 키우기 위해 스마트 도구를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책도 가지지 못한 학교에다 냅다 태블릿을 준 것 같은데, 당연히 이 태블릿들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봄직한 질문은 모든 것이 전자화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왜 일선의 선생님들은 책을 가장 중요한 학습 도구로 여기는 지에 대한 이유이다.


모든 것이 전자화되다 못해 이제 대한민국은 온라인의 순기능보다 부작용으로 더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매년 학교에선 사이버 폭력 예방 행사를 실시하고, 스마트 기기 중독 진단 검사를 실시해 위험군 학생들을 치료 기관과 연계하기도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점은 학생들의 문해력과 집중력이다. 요즘 어린이들의 문해력과 글쓰는 능력은 처참할 정도로 떨어졌다. 그 이유는 단연 이 세대가 글보다는 영상을 훨씬 더 많이 접하고 자라기 때문이다. 책은 한 때 식자층만의 것이었다가 국민들이 글을 깨우치고 책이 널리 보급된 이후에는 큰 유희 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TV 등의 영상 매체가 등장하면서 유희로서의 책의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영상은 시각적 자극과 청각적 자극이 섞여 있는데 간단히 말해 미술과 음악이라는 영역은 내가 힘을 들이지 않아도 쉽게 자극이 온다. 오감짜릿한 영상 매체는 중독성이 강하고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영상을 본다고 해서 생각을 안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독서와 영상 시청이라는 두 감상 행위를 비교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글은 시각이 있거나, 청각이 있다는 것만으로 지각되는 대상이 아니다. 의식적으로 배우지 않으면 그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는 매체이며 집중력 없이 읽을 경우 까만 것은 글씨고 하얀 것은 종이일 뿐이다. 텍스트로 전달된 의미를 스스로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어야 정보를 습득하고 재미도 느낀다.


그 옛날 TV에게 붙였던 '바보상자'라는 별명은 여전히 위력적이고 많은 현대인의 삶이 바보상자에 길들여진 노예나 다름없다. 하루에 스마트 기기를 전혀 보지 않는 사람은 대한민국의 몇 퍼센트나 될까. 그리고 우리가 하루동안 스마트 기기에 사용하는 총 시간은? 5분, 10분에서 시작한 숏폼 영상들이 대세라고 해도 짧은 콘텐츠를 보는 시청자들이 그 하나만 보고 화면을 끄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연관 동영상을 그대로 시청해 1시간-2시간을 그냥 보낸다. 바보상자의 시대보다 지금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 사실 바보상자의 위상을 스마트폰이 가져간 지는 오래되었다. 2위의 자리를 두고 태블릿, 노트북 등이 피터지는 경쟁을 하고 있다.


요즘 한국의 학생들은 타자에 더 익숙해져 글씨 쓰는 것을 몹시 귀찮아하고 잘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아주 간단한 글쓰기에서도 기본적인 문장 구성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문장이 지나치게 짧고 맞춤법에 맞지 않아도 용인되는 온라인 언어 문법에 익숙해져 정교한 언어를 갈수록 낯설게 느끼는 것이다. 기본적인 문장도 만들지 못하는 학생은 문장을 넘어 문단 글쓰기, 문단을 넘어 전체 글의 구조와 목적을 생각하며 쓰는 글쓰기는 당연히 안된다.


그런데 정교한 언어의 구사 능력은 곧 사고 수준과 직결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고도의 논리와 사고 능력을 보여주는 글 중에서 기본적인 맞춤법과 문장 구성이 안되는 글은 없다. 자신만의 논리를 표현해내는 학생들의 글을 보면 어휘력이 풍부한데 이는 책으로만 습득가능한 것이다. 주변 환경 중 오직 책만이 고도로 다듬어진 언어를 보여줄 수 있으니 그 텍스트에 오래 노출되어야 그런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자기의 생각을 스스로 정리해 표현하는 능력은 학습의 가장 중대한 요소인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과 직결된다. 공부를 할 때 그것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단지 강의나 자료를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남이 정리해놓은 번듯한 자료를 수동적으로 보는 것보다 자신이 내용을 조직하고 계획해 스스로 만들 줄 알아야 비로소 공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선생님들이 학교 현장에서 스스로 배운 내용을 노트에 쓰면서 정리하도록 한다. 분명 같은 자료를 봤지만 글로 써내는 결과물은 다르다. 얼마 안 있어 '선생님, 뭐라고 써야할 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아주 고전적이고 하나도 혁신적일 것 없는 교육 방식이나 중요한 건 이것조차도 제대로 해내는 학생이 각 반에서 몇 없다. 결국 스마트 기기를 통한 배움도 어찌 보면 가장 원초적인 능력, 글을 읽고 쓰고 사고하는 능력이 뒷받침 되어야 유용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인류가 수 천년 동안 책으로부터 배운데는 다 이유가 있다. 책은 책 자체를 넘어 고도의 사고 능력을 길러준다.


내가 이 곳에서 책없는 수업을 하며 느낀 점은 사람이 너무 편하게 살면 오히려 어떤 능력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영상 매체에 있어선 진보를 이루었다고 치자. 하지만 가장 원초적인 능력이라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퇴화했다면 이것을 진보라고 칠 수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책이란 스마트 기기가 날로 진보를 하든 말든 상관없이 사라지지 않을, 사라져서도 안되는 도구임을 이 땅에서 확신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 저마다 다른 이유로 책을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을 비교해보면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다. 한 쪽은 책을 자발적으로 치워버리고 있으며 다른 한 쪽은 그것을 아예 가져본 적도 없다. 하지만 책이란 진보의 역사에서 단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적이 없다. 그 중요성과 활용도야 시대마다 오르락 내리락하며 차이가 있겠지만 늘 있어왔던 이 유산이 사라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책장을 넘기고 종이 위에 사각사각 글을 써내려 가며 지성을 갈고 닦았던 인류의 DNA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고, 이것은 잠시 잊혀졌을 뿐 사라질 수가 없는 우리 배움의 정체성과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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