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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Sep 21. 2021

미혼의 신개념


해외에 거주한 사람들이 '문화 차이'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을 여러번 보기는 했다. 이전까지 해외에서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 문화 차이라는 것을 아주 막연하게만 생각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인간으로서 뭐 그렇게 서로 이해 못할 것이 있나 싶겠냐는 천하태평한 사고 방식 덕분에 그 문화 차이들이 연이어 닥쳐오기 전까지 마음 편하게 산 것은 사실이다. 지금 돌이켜 봐도 그 문화 차이란 것을 미리 알았다고 한들 뭐가 달랐을까 싶어서 모르는 게 약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문화 차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내가 현지 여자들에게서 연달아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였다.



 "그 나이까지 애도 안 낳고 뭐 했어?"


"너 지금 나이 많아. 애 가지기에 적은 나이 아닌데"


"아기 몇 명 낳을거야?"



토박이로 태어나 한국에서 사는 동안 이런 질문을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 나이를 감안한다면 결혼을 언제 할 것이냐는 질문도 과한 판국에 결혼은 건너뛰고 갑자기 자녀 유무를 냅다 물어보다니. 중간 과정을 모조리 건너뛴 비약적 질문 공세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저런 말들은 대한민국에서도 꼭 눈치 없는 누군가가 한번씩 던져 진상 사연으로 소개되거나 사람들이 모여서 욕을 하는 소재가 된다. 사회의 인습을 철저히 고수하는 사람들이 그런 삶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그 발언들을 먼 이국의 땅에서도 듣게될 줄이야.


간과해선 안되는 한 가지 차이점은 '결혼 여부'인데, '왜 그 나이까지 자식이 없냐'라는 말은 보통 한국 사회에선 결혼을 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고정관념성 멘트다. 결혼을 했으니 당연히 자식을 낳아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에 의거해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인 것이다. 그런데 이 곳 사람들은 내 자식 유무만 물어볼 뿐, 내게 결혼을 했냐는 질문은 거의 하지 않았다. 초반에 나는 왜 사람들이 결혼을 했는지를 먼저 물어보지 않는지 의아해했는데 나중에 그들과 대화를 나누어 본 후에야 알았다. 자녀가 있는 그들도 결혼은 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자녀의 유무는 그들에게 결혼 여부와 별개의 문제였다.


내게 자녀 유무를 의욕적으로 물은 이들은 대부분 자식이 3-4명 있고 나이는 40대 이상으로, 그들이 내게 건넨 말은 한국의 그 연령대 어른들도 할 법한 것이라 기분 나빠할 것도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내 궁금증은 젊은 세대의 결혼관과 자녀관이 이전 세대와 얼마나 차이가 있느냐하는 데 있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나보다도 한참 어린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얻을 수 있었다. 얼마 안 있어 중년의 현지인들 말고도 어린 학생들도 내게 자식이 있는지를 끈질기게 묻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도 철저히 한국식 결혼-자녀관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자식이 있느냐는 애들의 질문에 '난 결혼도 안 했는데?'라는 답으로 응수했는데, 내 대답이 동문서답처럼 여겨졌는지 애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도 결혼 안 했어요.”



잔소리아닌 잔소리처럼 풍채좋은 마담들에게 둘러싸여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일장연설을 들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이 곳에선 아이들조차 자신의 엄마 혹은 아빠가 결혼하지 않은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한국도 가족 형태에 대해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중이지만 아버지, 어머니, 자식 2명의 핵가족이 여전히 '정상'의 기준으로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회가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상적으로 이러하면 좋다는 것이지 이런 가족 형태가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준다는 근거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현재의 한국의 젊은이들 중에서도 자신의 이상적인 가정 형태를 전통적인 핵가족의 형태 4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전에 비해 그리 많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지금 한국은 역대 그 어떤 시대보다 가족 형태에 있어서 극렬한 사회적 갈등을 맞고 있다. 이혼이 갖는 여러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이혼을 선택하는 비율은 높아지고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회의를 느낀 비혼이 거대한 물결이 되자 이제 사회에선 너도 나도 비혼하면 애는 누가 낳냐고 외친다. 그런데 그렇게 출산율이 문제라면서도 사유리와 같은 미혼 출산에 대해서는 그건 정상이 아니라며 거부 반응을 보인다. 가족 형태에 관해서 우리 사회가 겪는 어마무시한 사회적 갈등은 이제 개인들이 전통적으로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던 4인 핵가족 형태를 더이상 선택하지 않아서 생겨나는 문제이다. 왜 선택하지 않느냐고? 이제 4인 핵가족은 옛날만큼 개인의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는 양상이 다르지만 나는 이 곳 사람들의 다양한 사례를 접하며 한국의 근미래를 점쳐보는 것 같은 일종의 스릴을 느꼈다. 이 곳처럼 다양한 가정이 보편화되어서 '자식은 있지만 결혼은 안했습니다'와 같은 가정이 아주 흔해진다면 어떨까. 특히, 그런 시대가 왔을 때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결혼과 가정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가르침을 남길 것인가? 아마 우리 모두는 임신, 출산, 육아는 엄청난 책임을 동반하므로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준비란 보통 경제적, 심리적으로 자녀를 키울 만큼의 여력이 되는 가정을 뜻하는데, 보통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여 부부가 되는 과정을 전제로 깔고 간다.


현재 한국의 교과서에는 편부모 가정이든, 조부모 가정이든, 1 가구든 편견없이  같은 가족으로 인정하자는 강력한 입김이 들어가 있다. 물론 4 가족을 정상처럼 규정해놓았던 기존의 교과서보다는 훨씬 나은 시도이긴 하지만 나는 교과서의 그런 제시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받아들이자는 취지에서 그런 콘텐츠를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읽어보면 편견을 가지기  쉽게 만들어 놓았다. 예를 들어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함께 살지만 씩씩하게 살아가는 철수' 같은 제시문을 만들어  가정이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어쨌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어필하려고 한다.


이런 접근 방식 자체가 굉장히 편견에 찌들어 있고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자고 하는 취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으로 보인다. 단편적으로 이런 가족이 있다는 소개해주는  그치고 오히려 그것을 4 가족의 정상성에서 시혜적으로 인정해주고 바라봐주는 시선이 깔려있는 느낌이다. 그마저도 현대 사회의 다양한 가족을 진짜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   사람들처럼, 그리고 한국에선 사유리를 필두로 그와 비슷한 선택을  어떤 이들은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지만 자녀를 가질 수도 있지 않나. 그럼 그런 가정은  뭐라고 서술해서 우리가  봐주자고 할건가?


이런 호기심을 품고 있던 나는 우연히 집에 가는 길에 나를 잘 따르는 학생들과 함께 걷다가 이들에게 물었다.


 

"여기선 결혼하지 않아도, 모두 자식이 있잖아. 학교에선 어떻게 배우니?"


"결혼을 하고 나서 자식을 낳아야 한다고 배워요."



모범생 친구가 직접 꺼내서 보여주기까지한 도덕 공책에 따르면 결혼과 출산은 아예 도덕 시간의 한 주제로 편성되어 있었다. 내용은 우리가 알고 교육받은 그대로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지 않은 채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여러 문제점을 수반하기 때문에 책임없는 섹스를 해선 안된다, 고로 피임을 꼭 하라는 명쾌한 결론까지 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의 교과서처럼 여러가지 가족의 형태에 대해서는 굳이 배우지 않는 것 같았다. 현실 속에서 그 어느 곳 보다도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는 이 곳도 결혼과 출산에 대해 가르치는 내용은 한국이랑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어떤 깨달음이 왔다. 이제 미래 세대에게 남겨야 할 가르침은 생명을 낳아 기르는 것에 대한 '책임감' 그 하나여야만 하지 가족의 형태에 대해서 어떠한 설명이나 이해를 구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미혼 유자녀 가정은 이런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들을 것이 뻔하다.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로 자녀를 낳지 말았어야 했다, 부부가 법적 결혼을 해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한 후에 자녀를 낳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작금의 미혼자와 비혼자가 바로 이런 이유에서, 그들 스스로가 가정을 이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느끼거나 혹은 본인이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미혼과 비혼으로 살고 있다. 그러면 오히려 칭찬해줘야 하지 않나? 생명을 잉태할지도 모르는 결혼 상태를 유보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타인과 함께하는 삶과 생명을 낳고 기르는 데에 따르는 막중한 책임감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사회는 이들에 대해선 또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탓하기 바쁘다. 그렇다면 결혼한 사람들은 무사태평한가? 자녀가 없는 부부는 왜 자식을 갖지 않느냐는 눈초리에 시달린다. 그러니 나는 결혼과 출산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 모든 이가 너무 과한 사회적 인습에 얽매여 검열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부터 돌아봐야 한다고 느꼈다. 사회적 편견이 난무한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떠받드는 현재의 젊은 세대를 맞이한 바람에 지금 성장통을 겪고 있다.


4명의 성씨 다른 아이를 홀로 키우는 세나틀라, 다른 여자가 낳은 2명의 자식과, 또 다른 여자가 낳은 1명, 그리고 현재 부인이 낳은 2명의 자식과 함께 살아가는 부장 발리끼, 어린 딸 하나를 키우는 나보다 한 살 어린 타마포 외 많은 이들은 25세 미혼의 미스킴에게 때때로 자식의 기쁨을 설파하며 잘만 살았다. 그 누구도 가족의 형태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하지 않았고 이 세상에선 오직 이 나이 되도록 자식 하나 없는 나만이 간간이 구설수에 올랐다. '어떻게 결혼을 안 했는데 자식이 있을 수가 있지?'라고 생각하거나 자식이 몇 명이냐는 질문에 전 결혼도 안했는데요, 라고 대답하던 나는 그들 틈에서 서서히 바뀌어 갔다. 나는 이제 미혼이어도 그 혹은 그녀가 자녀가 있을 수도 있다고도 생각하고, 미래에 자녀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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