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예술을 좋아한다. 현대인 중에서 음악 감상, 영화 감상, 독서, 전시회 방문 등의 경험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우리가 '문화생활'이라고 부르는 것은 보통 예술과 관련되어 있고, 정확히는 예술을 '감상'하는 행위인 경우가 많다. 감상이 능동적 행위인지 수동적 행위인지는 개인마다 의견 차이가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비교했을 때 인간에겐 감상보다 더 높은 정도의 능동성을 발휘하는 행위가 있다. 감상과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영혼의 단짝, '창작'이 바로 그것이다.
음악을 매일 빠지지 않고 듣는 우리에게 음악을 듣지만 말고 만들어보시오, 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당신은 무엇이라고 답하겠는가? 몇 년 전에 이 질문을 받았다면 아마 내가 떠올릴 단어는 다음 세가지일 것이다. '내가?' '어떻게?' '왜?' 예술을 아무리 사랑해도 창작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자신이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예술 감상에 서슴지 않고 지갑을 열면서도 왜 자신이 예술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예술은 재능을 타고난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라거나 예술에만 전념할 수 있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 해야 좋다는 말이 근거로 제시될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직업인으로서의 예술가가 상업적 성공을 이루기 위한 조건이지 우리가 예술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진 않는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먹을 것이 생기거나 어떤 이득이 생기는 것이 아니었던 태초의 시절에도 예술은 존재했다. 고도화된 문명과 축적된 부가 없었을 때도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으며 있었던 일과 소망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예술로써 이득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님에도 그 행위가 이루어졌다면 답은 하나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노동이 아니라 봉사였던 것이다. 자기가 좋아서 스스로 한 자신만의 행위이고 그렇기에 예술은 본질적으로 자기 표현이다. 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동성과 주체성의 발현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예술은 거대한 비즈니스가 되었기 때문에 철저히 상업적으로 변했고 그 누구보다도 이해 관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관점 때문에 예술 행위에 정당한 값을 매기지 않는 열정페이 현상이 아직도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이는 논외로 한다.)
하지만 창작은 감상보다도 훨씬 더 높은 차원의 능동성을 요구하며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관찰과 발상을 동반해야 한다. 이 맥락에서 예술 교육이 필요하다. 예술 교육에서 어떤 기능을 익히고 숙달하는 것은 부차적인 목표일 뿐이고 진짜 목적은 자기 표현의 시도에 있다. 남들과 같을 필요도 없고 오직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질을 스스로에게 보여주면서도 새로움에 도전하는 그 행위 자체로 용기를 기르는 것이다.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지만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견디고 노력하며 마음을 수련하는 데서 인격적으로 수양을 할 수 있는 것도 맞다.
그런데 모든 예술 행위, 그러니까 미적 표현은 어떤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일까? 한국처럼 부유한 국가에서도 일반 대중이 감상에 익숙한 만큼 창작은 그렇지 못한 실정인데, 개발도상국은 오죽할까. 이 땅은 '먹고 사느라 바빠서 예술 같은 것은 사치다'라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말이 십분 이해가 되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원래 이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라 격변하는 거대 도시에서 이 곳으로 도피해 온 사람이 아니던가? 비록 낙원이 여기에 없다 한들 내가 그리는 낙원의 구체적인 모습은 내 마음 안에 살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들과 최초의 미술시간을 가져보기로 마음 먹었다. 낙원이 없다면 낙원을 가꿀 씨앗이라도 뿌리자는 심정으로.
이 곳 학교 시스템에서 안타까운 것 중 하나인데, 애들은 예체능에 대해서 이론적으로만 배울 뿐 예체능을 실제로 실습할 기회가 없다. 음악, 미술, 체육에 대한 과목이 있긴 하나 실제로 그 예체능 활동을 수업시간에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체육 시간에 직접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기를 빨리 하는 방법에 대해서 듣기만 하는 격이다.
예체능 교육이 전무한 이 곳 환경에서도 이들의 예체능 능력은 타고났다고 밖에 표현이 안 될 정도로 우수하다. 내 기준에선 한참 부실한 음식을 먹고도 애들의 몸은 탄탄한데다 근육질이었으며 운동 능력은 말할 것도 없다. 달리기 대회를 하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걸리적거린다며 신발을 벗어버리고선 겅중겅중 뛴다.
음악 감각은 또 어떤가. 나는 운 좋게도 그들의 노래를 매주 들을 수 있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조회 시간에는 전교생이 교무실 건물 앞에서 다 모여서 선생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원래 조회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면 항상 교가가 흘러나오지 않는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땐 교가 반주가 운동장 전체에 울려퍼졌고, 요즘은 그마저도 없이 방송 조회로 한다.
이 곳도 조회가 끝나면 교가가 나와야 할 차례인데, 반주를 틀 최신 설비같은 것은 없으므로 아이들이 알아서 노래한다. 선창하는 소수의 학생을 따라 나머지 전부가 따라가며 2부 합창까지 한다. 나는 선창하는 학생을 미리 정해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그냥 당일 아침 조회 때 필 받는 학생이 아무나 리드 보컬을 담당한다고 했다.
그런데 체육과 음악이 그들 생활에 녹아 있는데 반해 그들이 미술을 접할 기회는 정말 없었다. 1월부터 7월까지 학생들이 자기만의 미술 작품을 만든다거나,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거나 하는 것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이들 인생에 전무한 '미술'을 경험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으며, 오랜 시간 품어온 내 궁금증을 풀고 싶기도 했다.
첫째로, '특히나 이렇게 교육이 전무한 상황에서'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재능은 어느 정도일까, 하는 것과 둘째로, 이렇게 다소 고립되고도 매스미디어의 영향을 덜 받은 사회에서 자란 학생들의 그림 스타일은 완전히 세계화된 우리나라와 정말 크게 다를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장 간단하지만 동시에 가장 어려우면서 가장 개성을 잘 드러내주는 '친구 얼굴 그리기'를 실시하기로 했다. 처음엔 채색 도구를 한 반 분량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학교에 있나 싶어 물어봤더니 창고를 확인해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열쇠를 얻어 창고에 들어서자마자 의외의 광경이 펼쳐졌다. 창고 안에 수많은 크레용, 학용품 세트, 수학 작도 세트 등이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교에 구비된 교육 자료의 존재를 숱하게 물어봤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모른다' 였다. 화려한 도구들은 아니었으나 정부에서 사서 보낸 재료와 도구가 학교 창고 안에서 썩고 있었다. 열악한 여건이 일차적인 문제라면 미적 표현과 체험의 필요성을 선생님들조차도 전혀 생각지 못하는 이 곳의 인식이 바뀌려면 더 많은 시간과 여유가 필요한 법이다.
미술을 접할 기회가 없는 이들에게 그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미스킴배 친구 얼굴 그리기 대회는 명작들을 대거 배출하며 성황리에 끝났다. 이 대회의 주최자이자 유일한 심사위원이었던 나는 학생들의 작품을 보며 나는 어떤 경향성을 파악했다. 미술가들도 사조에 따라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등으로 불리지 않는가? 이제부터 학생들의 작품을 내가 분류한 파에 따라 소개해보겠다.
1. 모던파
이들은 대회를 개시한 직후 학생들의 활동 과정을 내가 죽 돌아보는 동안에 이미 탁월한 드로잉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이들이다. 현란한 드로잉이나 쨍한 채색을 하지도 않았는데 여백을 살린 특유의 미적 감각으로 굉장히 세련된 작품을 만들었다.
모던파 첫번째 작가인 디쪼 Ditso는 알고보니 세나틀라의 조카였다. (둘 다 얼굴이 매우 작은데 집안 내력인 듯 하다.) 디쪼는 평소에 수업에 아주 열심히 참여하고 학습에 대한 열의가 뛰어나다. 공부에만 관심 있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해 그림에 재능이 있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특히 디쪼는 파란 자켓을 색칠할 때 크레용으로 그냥 색칠한 것이 아니라 파스텔을 사용할 때처럼, 조금 그린 후 휴지로 닦아내 색을 연하게 번지게 하는 기법을 스스로 사용했다(!). 내가 절대 알려준 적 없고 미술 수업을 받은 적도 없다. 어떻게 이런 방법을 쓰게 됐는지 물어보니, 색을 부드럽게 표현하고 싶어 크레용이 색칠된 부분을 만져보다가 좀 닦아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모던파 두번째 작가는 베리berry다. 아마 다들 이름을 보고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처음에 베리의 이름을 듣고 정말 스트로베리, 블루베리, 크랜베리의 그 베리가 맞는지 확인차 물었다. 모든 아이들은 그 질문을 듣고 깔깔 웃었다. 베리는 맞는지 아닌지 제대로 대답하지도 않고 수줍게 고개를 숙여버렸다.
베리는 전반적으로 공부에 관심이 없었기에 수학 시간은 그에게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수학 시간 동안 베리가 나에게 주로 들은 말은 잔소리나 핀잔, 혹은 이런 시덥잖은 이야기다. 베리가 내 앞에서 열심히 수학을 푸는 척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베리에게 물었다.
"베리,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뭔지 아니?"
베리는 말없이 나를 쳐다보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진 않았다. 다른 애들이 그것을 듣고 괜히 여러 과일을 말했다.
“베리, 난 스트로베리를 제일 좋아하지.”
모두가 웃는 가운데 베리는 어이 없어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항상 이런 류의 멘트를 당당히 하는 것은 나이고 부끄러움은 베리의 몫이다.)
"베리, 선생님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이름이 뭔지 아니?"
아마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는 바로 그 답을 맞추겠지만 이 곳 아이들은 배스킨 라빈스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므로 아무도 추측을 하지 못했다.
"베리, 난 베리 베리 스트로베리를 제일 좋아하지."
애들은 또 깔깔 웃었는데, 나중엔 나 혼자만 웃게 되었다. 그 이유는 모두가 그 아이스크림 이름을 내가 지어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들 세상에 그런 아이스크림이 어딨냐는 반응이었다. 평소 이렇게 나에게 말도 안되는 수모를 당하던 베리는 이렇게 훌륭한 미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베리가 밑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나는 놀라서 큰 소리를 내었다. 나는 베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베리! 미안해, 미술에 이런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네. 우리가 미술도 같이 공부했어야 되는데."
애들은 나의 말을 듣고 교실 저편에서도 우르르 뛰어와 베리의 그림을 보았다. 베리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베리는 자기가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친구들이 자기의 그림을 보며 감탄하자 베리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저 사진 상으로는 잘 안 보이지만 베리는 사실 한 쪽 눈이 평범하지 않다. 아마 어릴 때 무슨 사고로 눈을 다친 것 같다. 아예 안 보이는 건지, 조금 보이긴 하는 건지, 아니면 보기엔 그래도 보는 데는 문제가 없는지는 물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큼 더 기민한 관찰력을 가졌으니 베리의 눈은 정말 특별한 것이 맞다.
2. 개성파
개성파는 이 대회의 본 취지대로 친구 얼굴의 특징을 잘 포착해 구현한 화가들이다. 이들 작품의 관전 포인트는 실제 모델과 얼마나 닮았느냐는 물론 인물의 특징을 얼마나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개성적으로 표현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작품들은 모델이 된 학생들의 사진과 함께 비교해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먼저 두 작가 한씨 Hansie와 께오뻰쩨 Keofentse에게 동시에 뮤즈가 되어준 이가 있었다. 밤색 귀마개를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 이 모델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7월이 이 곳에서 한 겨울이긴 하나 이렇게 큰 귀마개를 하고 다니는 학생은 많이 없다.
모델 라오네Laone를 확인해보자. 커다란 귀마개, 속눈썹 긴 눈, 대칭이 완벽한 코를 잘 그린 것 같다! 사진 만으로도 라오네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는 다들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수업 시간에 많이 까불다가 교실에서 쫓겨난 적이 있는 라오네다.
다음은 단연 독보적인 개성으로 내가 정말 마음에 들어했던 작품이다. 작가의 이름은 떼보Tebo이다. 차분하고 아주 여성스러운 학생인데 처음 작품을 보면 '응?' 하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 모델을 보는 순간 '아~!'로 반응이 바뀔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 실제 모델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실제 모델인 까호Kago를 소개한다.
나는 학생 모두를 알고 있으므로 떼보의 작품을 보자마자 '아!' 하고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댕그랗게 크고 움푹 들어간 눈을 저렇게 표현한 떼보의 상상력이 그저 놀랍다.
다음 이 작품도 보는 순간, '도대체 실제 모델이 어떻게 생겼길래?' 라는 생각에 빠질 수 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학생들 모두를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선 모델이 누구인지 물어볼 필요도 없이 너무도 그 특징을 잘 잡아낸 작품인지라 나는 이 작품을 보고 진짜 많이 웃었다.
실제 모델을 확인할 준비가 되었는가? 아마 저 작품을 보고 그다지 잘 그리지 않았다고 생각한 사람도 모델 사진을 보는 순간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3. 자화상파
자화상파는 자기 말론 분명 친구 얼굴을 그렸다는데 아무리 봐도 자기 얼굴을 그린 것 같은 작가들이다. 작품을 들고 있는 이들이 작가 본인이니 작품(비록 본인들은 친구를 그린 것이라고 하지만)과 작가의 얼굴이 얼마나 똑 닮았는지를 관전하면 된다.
시작은 앞에서 이미 모델로 나왔던 메모리Memory이다. 온까라빌레가 그려준 작품도 개성이 아주 뚜렷한데 심지어 메모리 본인이 그린 그림까지도 그렇다. 내가 알기론 우리 까바까에 초등학교에 이렇게 생긴 사람은 메모리 뿐이다.
타또Thato 말로는 자기 모둠에 앉아있는 라오네를 그렸다는데 아무리 봐도 그냥 작고 귀여운 본인이다. (참고로 이 라오네는 앞에 나온 라오네와 다른 라오네다.)
B반의 온까라빌레Onkarabile (앞 전의 온까라빌레는 A반이다.)의 작품은 너무 본인을 닮아 나는 누구를 그린 건지 묻는 것도 까먹어버리고 말았다.
아까 크고 움푹 파인 눈을 강조해 표현한 떼보의 작품과 더불어 내가 또 각별히 애정하는 작품인 마이클의 친구 초상화(를 가장한 자기 초상화). 떼보의 작품이 눈을 강조했다면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코가 아닐까?
4. 제3파
이들 이름이 제3파인 이유는 친구를 닮지도 않았고 자기 자신을 닮지도 않은 제 3의 인물을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 자체가 굉장한 개성을 담고 있어 흥미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마치 야수파, 입체파의 작품을 떠올리는 강렬한 인물 묘사가 아주 인상적이었던 온뚜에쩨의Ontuetse 작품.
이 학생은 베리와 단짝이었던 툰다쿠제 Tuundjakuje―이름이 너무 어려워서 사실 한글로 저 발음이 아닌데 달리 방법을 모르겠다―이다. 작가의 말로는 단짝인 베리를 그린 것이라는데 베리랑 닮았는지 나는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작품 자체가 독특한 미감이 있어 기억에 남는다.
이번 친구 얼굴 그리기 경연대회를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인간의 미적 감각이란 교육 유무와 상관없이 본능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대개 친구의 모습을 실제 모습처럼 재현해 그리려고 하기 보다는 자신이 보기에 가장 잘 어울리고 예쁜 색과 드로잉 스타일을 택했다.
한국에서 인물 그리기 수업을 하면 보기엔 다들 매끄럽지만 그 스타일이 서로 비슷한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웹툰에서 볼 법한 캐릭터체가 인물화에 그대로 드러나 개성이 뛰어난 작품을 찾아보기는 좀 어려웠다. 한 때 나는 그 이유로 성공적인 그림의 기준이 사회에 엄격하게 존재하는 데다 그것을 항상 대중 매체에서 누구나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이 곳 학생들의 작품을 받아보니 나의 가정이 어느 정도는 타당성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여기도 그냥 평범한 정도의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이 제일 많긴 하지만 눈에 띌만큼 특이한 스타일을 가진 학생들이 비율이 내 예상보다도 더 높았다.
생애 최초로 미술 수업이자 미술 경연대회에 임하는 아이들의 자세는 진지했으며 나또한 작품을 감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 수학 좀 못하면 어떠니? 내 친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만큼 아름다우면 됐지. 내가 작품을 걷으면서 이것을 한국의 친구들에게 보여주겠다고 하자 아이들은 일제히 'Nooooo'를 외쳤다. 자신들의 망한(?) 작품을 왜 다른 사람에게 왜 보여주려고 하냐며 두 손을 들고 말렸는데, 그럴 때는 걸핏하면 '망했다'를 외치는 한국의 어린이들 같아서 웃음이 났다.
이들이 비록 아직은 예술을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더라도 그럴수록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경험치다. 예술의 본질적 목표인 자기 표현의 시도는 이들에게 어떻게든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데서 시작한다. 인간의 능동성과 창조성은 반드시 풍요로운 환경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번도 미술 교육을 받기는 커녕 미술을 할 기회 조차도 없었던 이들조차도 기회가 생기자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예기치 못하게 피어난 창조성을 확인하며 나는 해보지도 않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제한하는 것이 과연 예술 뿐인지를 곱씹어보았다. 피카소가 비단 우리반에만 숨어있을까? 어떤 영역이든 새로운 성장을 위해서는 배움과 노력의 물꼬를 트기 위해 먼저 접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무언가가 부족하고 없어서 하지 못한다는 말은 자기 표현의 시도에 있어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다가올 미래의 시도가 무엇이든 해내고 말 것이라는 내 결심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