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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 받으시고, 도전 받으시고

묵묵한 응원 : 바티칸 가이드의 말씀에서 얻은 삶의 시금석

by 쪼의 세상

얼마전 교황 프란치스코 2세께서 선종하셨습니다
제가 종교가 있지는 않지만 생전 그의 삶에 많은 감명을 받았더랬습니다.

신부가 되기 전 아르헨티나에서의 평범했던 그의 모습과 사회 운동가로서의 삶.

카톨릭의 최고 지도자가 되기까지 직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와의 인연.

교황이 되고 나서도 그가 전하고자 했던 평화의 소중함.

약자에 대한 손길, 카톨릭 안에서 대답하기 어려운

사회 문제에 대해서 눈감지 않고자 했던 의지, 그리고 반성과 인정,

한 종교의 지도자 그 이상으로 다가왔던 그의 존재였기에

그의 선종 소식은 나에게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그와 베네틱토 16세가 교황의 직위를 이어받는 과정을 그린 영화< 두 교황>도 아주 재밌게 본 영화 중에 하나입니다. 영화 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역을 맡은 조나단 프라이스 배우와 베네딕토 16세 교황 역을 받은 안소니 홉킨스가 정말 실제 두 교황과 꼭 닮아서 아주 인상 깊게 본 영화입니다. 두 사람의 연기 대결은 물론, 두 인물의 생각의 대립과 그 안에서의 타협, 생각들을 잔잔히 지켜보는 느낌,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인들이 카톨릭 영화로 볼만한 영화로 최근 개봉한 <콘클라베>를 추천할 때, 저는 여전히 <두 교황>을 두말 없이 꼭 보라고 추천하곤 합니다.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MjAyNDA4MjlfMTA5%2FMDAxNzI0OTAyNjYyMDQz.guflyaLAvN_aOKC8TPW1Rrc3huyTBylquezW98DKOvkg.ouaqydGVj0R_sj86sbFZ0QtzYDD64mxhGdg-AICeHpQg.PNG%2F1.PNG&type=sc960_832 <출처 : 넷플릭스>


몇년 전 이 영화를 보고나선, 바티칸을 꼭 가보고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럽의 역사의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는 바티칸 시국의 위엄을 직접 두 눈으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두 교황이 거닐며 이야기 하던 정원에 근처의 공기라도 맡아보고 싶었습니다.

대학교 수업 시간 도판에서나 보던 시스티나 성당 벽화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르네상스가 낳은 또 한명의 천재 화가인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두눈으로 보고 싶기도 했죠.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습니다.

제가 결혼을 해버렸거든요.

이탈리아를 한번도 가지 못했던 저와 제 여자친구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잡았고

약 2주 간의 신혼여행의 절반은 이탈리아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2주 동안 몰타를 거쳐서, 피렌체, 로마를 거쳐 다시 돌아오는 꽤나 바쁜 신혼여행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지만 정말 신혼여행지를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 여정은 나중에 기행문으로 정리해두고 싶었죠.


DSC09025.JPEG 로마에서 건진 스냅샷


로마에 갔다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겠죠.

신혼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로마 바티칸 투어였습니다.

그냥 표만 끊고 들어갈까는 것도 고려했었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가이드 투어와 함께 가면 훨씬 더 풍부하게 바티칸을 경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희는 빠듯한 비행기 귀국 비행기 시간 때문에 투어 중간에 나오더라도

한국인 가이드가 운영하는 바티칸 투어를 신청했습니다.


투어 당일. 로마 시내에서 여러명이 모여서 바티칸으로 이동하는 일정이었죠.

가이드 분은 푸근한 인상의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 또래 즈음 되어보이셨는데, 선한 웃음과 나긋한 목소리가

베테랑 가이드의 면모를 뽐내시는 분이었습니다.


원격 이어폰을 나눠주신 후에

바티칸에 입장할 때 필요한 것들 안내와

들어가서 볼 때 불편한 것들이나 등등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을 때

우리네 부모님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언제부터 로마에 오셨는지 여쭤보진 못했지만

노년에는 저런 표정으로 늙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인상이었습니다.

가이드분께서는 바티칸의 역사적인 배경은 물론

예술품과 공간에 대해 하나하나 지나갈 때마다

풍부한 지식과 설명은 물론, 위트까지 갖추신 분이셨습니다.

가이드 특유의 호방한 성품은 아니었지만, 나긋하게 편안하게 일행을 이끌어주셨죠.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가이드분께서

한 공간 한 공간

한 예술품 한 예술품을

지나칠 때마다 버릇처럼 덧붙이시는 문장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존중 받으시고, 도전 받으시고. 자 이제 이동하겠습니다"

"... 이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여러분도 존중 받으시고, 도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참 멋진 작품이죠? 이린 작품 보시면서 또 존중 받으시고, 도전 받으시고 돌아가셔서도 힘내시고.."


바로,

존중 받으시고, 도전 받으시고라는 말이었습니다.

투어 중간에 가이드 뿐께서는 자신이 덧붙이는 말에 대해

짧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바티칸과 같이, 우리가 잘 모르는 문화나 배경을 지날 때

무심코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많기 때문에, 그 진가를 다 알지 못할 때가 많다고요.

그래서, 그 진가를 다 알아봐주기 위한 약간의 노력과 약간의 관심은

우리가 그들을 존중하는 것처럼, 그럼으로써 우리도 존중 받는다는 의미에서

'존중 받으시고'라는 말을 쓰신다고요.


또한,

새로운 것을 아는 것은 늘 우리의 인생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여행이라는 것은, 또 이런 관광이라는 것은 단순히 여가나 유희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새로운 도전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는 뜻에서

'도전 받으시고'라는 말을 쓰신다고요.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두 표현 모두에서

'받으시다'라는 표현을 쓰신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나, 도전을 받다 라는 말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표현입니다.

존중 받는다는 의미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죠.

그렇기 때문일까요? 도전을 받는다라는 말에 뜻이

그날 따라 더 긍정적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투어를 채 마치지 못한 채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저와 와이프는 중간에 일행과 가이드 분께 인사를 드리리고 나올 때도

제 귓가에는 가이드 분의 말이 맴돌았습니다

'존중 받으시고, 도전 받으시고'

별 말 아니었지만, 마치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저의 인생에

새로운 잠언이 되어줄 것만 같은 기분 좋은 말을 들은 것처럼 느껴졌죠.


그것이, 제가 가진 바티칸에서의 기억의 마지막 인상이었습니다.

종교인도 아니지만, 또 로마나 바티칸에 대한 지식은 한 없이 부족하지만,

제가 가진 바티칸의 인상은 투어 가이드 분께서 주신 삶의 작은 지혜를 얻은 작은 장소가 되었죠.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시고, 콘클라베가 얼마전 열렸습니다.

최초로 미국인 교황인 레오 14세 교황이 새로운 교황으로 뽑혔죠.

"habemus papam(우리에게 교황이 계신다)"라는 외침과 함께

바티칸 성당의 굴뚝에선 흰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오늘도 출근하기 싫어서 몸부림치고

퇴근하면 그저 집에 와서 빈둥대는 하루를 보내는 평범한 하루지만,

새 교황의 선출을 보며, 바티칸에서 들었단 작은 문장을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새로운 시작을 다짐해보게 되었습니다.


별다를 것 없는 시작일지 모르겠지만

내일부터는 새로운 하루를 바티칸의 가이드분께서 주셨던 말처럼

"존중 받으시고, 도전 받으시고"를 기억하면서


새로움 마음가짐으로 작은 것부터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하루를 보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함께 해보시면 어떨까요.


오늘도

존중 받으시고

도전 받으시길.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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