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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뱀클럽 Nov 23. 2017

치킨드실분

벚꽃은 떨어졌지만, 길거리는 활기를 찾았습니다. 들뜬 표정의 대학생들은 시험을 마치고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술집으로 갑니다. 직장인들도 가방을 질끈 잡으며 어디론가 걸어갑니다. 공원 근처를 배회하던 어르신들도 각자의 한주를 흘려보낼 곳으로 이동합니다.


최근 세련된 인테리어와 퓨전 안주가 가득한 요즘 주점엔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우후죽순 생겨난 수제 맥줏집도 인기가 높습니다. 다트나 야구 등 각종 아이템을 도입한 술집 네온사인이 요란하게 시야를 자극합니다.


한편 골목 구석에 사뭇 생경한 느낌의 오래된 치킨집이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냄새가 콧구멍을 적십니다. 모두 모여 웃음꽃을 피우던 옛날의 명절도 잠시 떠오릅니다. 식탁과 의자는 참 질박합니다. 중추적인 수직의 오브제로 활용함으로써, 음식을 받치는 도구로써 굳건한 안정감은 물론, 해방감이 느껴지는 힘찬 방향성도 함께 관통되어 있습니다.


메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리에 앉기 전에 치킨을 한 마리 시켜봅니다. 치킨을 시켰더니 맥주는 빠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맥주도 시켜봅니다. 어깨너머의 아주머니들은 치킨을 능숙하게 튀겨냅니다. 표정엔 어떤 꿍꿍이도 없습니다.


뉴스가 나오는 가게 TV 앞에 앉아 치킨을 기다리며 귀에 울리는 앵커의 목소리를 멍하니 흘려보냅니다. 한주의 빈약한 성취감도 함께 보내주기로 합니다. 


곧장 나온 바삭한 치킨은 가운데 자리합니다. 치킨을 필두로 아삭하게 잘 구워진 주전부리가 구성원의 식탐을 골고루 자극합니다.


치킨집에서 파는 생맥주도 참 시원합니다. 맥주의 맥(麥)을 담당하는 보리는 맥주에 쓴맛과 향기를 더하는 홉과 적절하게 조화하여 균형을 맞추었습니다. 오래된 가게답지 않게 그 신선함과 목 넘김은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불규칙적으로 오르게 합니다.


다른 가게와 달리, 치킨집 손님들은 연령대가 높은 편입니다. 넥타이를 풀어헤친 직장인들, 오랜만에 만난 친구, 함께 시절을 나눈 동기들, 격한 반가움에 다들 빨갛습니다. 얼큰하게 취한 아저씨들은 고단한 일상을 토로하며 자녀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10시가 채 안 되면 치킨집은 벌써 조용해집니다. 고양이들이 입구를 기웃거립니다. 멍하게 서 있던 고양이는 때때로 고개를 빼꼼 넣어 나의 동태를 살핍니다. 달님은 모든걸 알면서 손톱을 손질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나른하게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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