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의 글쓰기
명함에 마케팅, 브랜드 따위의 말이 적혀있기 시작한 지도 벌써 6년이 흘렀다. 6년이면 영겁의 시간 같았던 군대를 세 번은 입대했다 전역할 시간이고, 게으름 피우지 않고 학업에 열중한다면 대학에 입학해 석사 학위까지 딸 수 있는 긴 시간이다. 그동안 나는 이력서에 화려한 경력을 더해 헤드헌터들이 모셔가려고 난리인 사람이 되지 못했고, 안으로는 실패와 좌절의 상처가 가득하고 겉으로는 중력의 법칙을 이기지 못해 처진 살과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밴 다크서클만 훈장처럼 남은 보통의 직장인이 되고 말았다.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하기 전에는 제법 이름난 기업에서 영업 관리 업무를 했었다. 신입사원 공채로 들어가 3년 동안 일을 했으니 머지않아 대학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도 10주년이 된다. 신입사원 연수를 받기 위해 집합장소였던 서울역에 쭈뼛거리며 서 있는 지난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젊었었는데... 의욕적이었었는데... 야심이 있었는데...
밥벌이를 해내야 하는 어른으로서 지금 어느 지점에 놓여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전후반으로 이루어진 경기에서 하프 타임을 맞이한 것일 수도 있고, 농구처럼 4 쿼터로 이뤄진 게임에서 이제 막 1 쿼터를 마쳤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일이란 쉬는 시간 없이 계속 뛰어야 하는 마라톤과 비슷할지 모르며 42km가 넘는 긴 레이스에서 고작 7~8km 정도만 뛴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 생각을 하고 나면 앞으로 감당해야 할 분량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올해 10주년을 맞이하는 만큼 지난 시간을 한번 되새김질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그간의 경험과 생각을 글로 남겨보자고 다짐했다. 현재가 어떤 종목의 어떤 시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그간 잘 걸어왔는지, 걸어온 속도가 너무 느리진 않았는지, 아니 반대로 빠르진 않았는지, 그 과정에서 놓친 것은 없는지 헤아려보려고 한다. 또, 가고자 했던 곳은 어디였는지, 길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목적지를 수정해야 하는 건 아닌지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싶다. 그래야만 보통의 열정과 에너지를 가진 사람으로서 다음 라운드에서 평범한 내적 자산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인생에 대타란 있을 수 없기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점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써 내려갈 이야기에 마케팅이나 브랜딩에 관한 인사이트, 꿀팁, 교훈, 벤치마킹의 소재 같은 건 회사 생활의 보람처럼 찾기 힘들 것이고, 있다고 해도 아주 가끔 징검다리 휴일처럼 드문드문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런 것이 있었다면 이 매거진의 제목은 ㅇㅇ하는 법, ㅇㅇ의 법칙, ㅇㅇ의 정석 같은 이목을 끄는 표현을 써서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췄을 것이다. 이건 대박을 터트리지 못한 무명 마케터의 후회와 반성문에 가깝다. 미리 약간의 핑계를 뱉어 두자면 작은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의 질과 스케일 면에서 초라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작은 그릇에는 그 크기만큼의 음식밖에 담을 수 없고, 지금의 예산 규모에서 분명 한계는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노력과 능력 부족을 환경 탓으로만 돌리겠다거나 외면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몇 달 전, 텀블벅에서 ‘신춘문예 낙선집’이라는 펀딩 프로젝트를 본 적이 있다. 신춘문예에 여러 차례 투고했지만 번번이 낙방하고 말았던 어떤 이가 발상을 전환해 그간 쓴 글로 자신만의 소설집을 내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기성 문단의 인정이 없이도 무언가 꾸준히 쓰기만 한다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이 프로젝트는 제법 인기를 끌었고 결국 목표 금액을 달성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스포츠 영웅의 감동 실화도 강력한 울림을 주지만, 다큐 3일에 나오는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도 묵직함이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성공, 성취, 최고, 최상 같은 단어들로 대표되는 세계의 정반대 편 이야기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걸 알았다. 사람은 탁월함에도 끌리지만, 친근함도 좋아한다는 어느 책의 구절도 떠올랐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의 공감되는 경험과 고민은 훌륭한 콘텐츠의 재료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그 덕에 별 볼 일 없는 이야기일지언정 용기 내어 써보기 결심한 것이다. 물론 그 다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새해를 맞이하여 잠시 의욕적인 상태가 된 덕분이란 걸 인정하지 않을 순 없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