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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강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 2

프롤로그 2

by 맨티스 Mar 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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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자율성 부여.

  자율성을 부여하는 일은 도전 그 잡채였습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수업 방식을 도입하려니 겁부터 났죠. 하지만, 효과는 즉시 나타났습니다. 대부분 공부 자체를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잘 통했습니다. 공부가 싫다며 학원을 자주 빠지거나 숙제를 해오지 않는 학생들에게 특히 효과가 좋았습니다.


  단어 시험을 칠 때마다 아이들은 커트라인이 몇 개고 뭘 해야 집에 갈 수 있는지 묻곤 했습니다. 매 수업 시간마다 시험 볼 단어의 개수를 줄여달라, 커트라인은 늘여달라고 떼쓰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의 말투를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 속엔 집에 빨리 가고 싶은 욕망과 통과하지 못하면 집에 가지 못한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숨어 있었는 걸 알게 되었죠. 그 후 과감히 커트라인을 없애 버렸습니다. 대신 시험 볼 단어의 개수를 선생님과 상의 후 스스로 정하고 틀린 개수만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너무 많이 틀리면 노력한 보람이 없으니까 적당히 틀리게 조금만 꼼꼼히 암기해 줘! “


라는 말만 추가했습니다.


  사실, 무서웠습니다. 아이들이 시험을 대충 볼 것 같았죠. 하지만,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아이들은 평소 보다 더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커트라인에 대한 불안과 부담을 줄여주었더니 정답율도 더 높아졌습니다. 스스로 정한 범위에 대해 책임감이 생기고 불안이 낮아진 탓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힘을 얻어 숙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 정하게 했습니다. 풀어야 할 문제의 수를 정하는 대신, 문제 풀이할 최소 시간만 정해 주었습니다. 학생에 따라 30~90분 정도 문제를 풀어오라는 숙제였죠. 문제 풀이를 시작하는 페이지 아래에 시작 시간과 끝나는 시간을 적도록 했습니다. 양을 따지진 않았습니다. 꼼꼼히 생각하고 풀었는지만 확인했습니다.


  정해진 시간만 집중해서 문제를 풀라는 요청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숙제를 해오는 양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수학 숙제나 수행평가 때문에 영어 변형 문제를 풀어 오지 못하던 아이들도 ‘딱 30분만이라도 풀어와 줘!‘라는 요청에 숙제를 해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성적도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죠. 하지만, 몇몇 아이들은 이런 방식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숙제할 양을 정해 달라고 요청하는 아이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특이 점이 있었습니다. 영어 수학 시험에서 실수를 많이 하거나 노력에 비해 성적이 좋지 않았죠. 알 수는 없었지만, 숙제 양을 정해 달라는 요청과 노력에 비해 성적이 좋지 않은 것 간에 무슨 관계가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되면서 미루는 습관을 없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을 하던 중,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미루는 버릇을 고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성적이 낮은 것과 숙제를 정해 달라는 요청 사이의 대략적인 인과관계는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4단계 불안의 급습.

  공부를 하기 싫어했던 아이들에게 선택권과 자율권을 주면서 조금씩 공부를 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숙제 분량을 정해 달라는 아이들 대부분이 노력에 비해 성적이 좋지 않은 이유는 짐작도 되지 않았죠. 단지 방법적인 문제나 정신력의 문제로 치부할 순 없었습니다. 그러다 새해가 되면서 그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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