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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 세 번째 조각, 내부의 열쇠

by 닥터 F

작은 사무실은 거대한 적을 상대하기 위한 첫 번째 작전 회의실이 되었다. 이질적인 세 사람이 마침내 하나의 목표 아래 뭉쳤다. 시스템을 파괴하는 엔지니어, 그녀를 지키는 전직 용병, 그리고 그들의 싸움을 세상에 알릴 전직 기자.

최진아는 곧바로 '전략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 정보만으로는 부족해. 이건 폭탄의 뇌관은 될 수 있지만, 대중을 움직일 만한 기폭제는 못 돼. 사람들은 복잡한 설계도나 장비 데이터에는 관심 없어. 그들에게 필요한 건 '이야기'야. 피해자의 얼굴, 가해자의 목소리 같은 것들."


그녀의 말은 정확했다. 김서연의 데이터는 차갑고, 이강혁의 분노는 개인적이었다. 이것을 사회적인 공분으로 바꾸는 것이 최진아의 역할이었다.

"내부고발자가 필요해. '아키텍츠'의 시스템 안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 차가운 데이터에 온도를 입혀야 해."


김서연이 Lumen를 조작해, 지하 감옥에서 탈출할 당시 확보했던 '아키텍츠' 관련 인물들의 단편적인 데이터들을 화면에 띄웠다.

"당신이 원하는 사람이 이 안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최진아의 눈이 화면의 정보들을 빠르게 훑어 내렸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수십 개의 취재 계획과 접근 시나리오가 그려지고 있었다. 이강혁은 두 여자가 정보를 분석하고 계획을 세우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의 언어들이 오갔지만, 그는 불안하지 않았다.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싸울 동료들이 생겼다. 그의 역할은 저 두뇌들이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다가오는 모든 물리적 위협을 부수는 것이었다.


새로운 연대는 그렇게 첫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들 각자는 불완전한 조각이었지만, 함께 모였을 때 비로소 거대한 시스템의 균열을 파고들 예리한 칼날이 될 수 있었다.

작전 회의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들은 첫 번째 목표를 정했다. '아키텍츠' 산하 건설사의 중간 관리자였던 '박선우'. 지하철 붕괴의 원인이 된 부실 설계를 승인한 라인에 있었지만, 사고 이후 양심의 가책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칩거 중인 인물이었다.


"이 사람이 우리의 첫 번째 '스피커'가 될 가능성이 높아."

최진아가 그의 프로필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일 거야. 가족이 그들의 감시 하에 있을 수도 있고. 접근은 극도로 신중해야 해."

이강혁이 나섰다.

"접근은 내가 하지. 기자인 당신이나, '아키텍츠'의 표적인 당신보다는 평범하게 접근하기 쉬울 테니."

김서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박선우 씨가 두려워하는 것은 물리적 위협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키텍츠'라는 시스템 자체일 겁니다. 그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않으면 그는 입을 열지 않아요. 제가 직접 가야 합니다."


세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각자의 전문성과 경험에 기반한 의견들이 충돌하고, 조율되며 하나의 계획으로 다듬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서툴렀지만, 진정한 '팀'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창밖으로 동이 트기 시작했다. 도시가 잠에서 깨어나고, 거대한 시스템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제와는 다른 아침이었다. 도시의 가장 깊은 그림자 속에서, 시스템의 심장을 겨눌 비수가 마침내 모습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반격은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박선우가 사는 곳은 도시의 소음이 한풀 꺾이는 경계에 위치한, 특징 없는 대단지 아파트였다. 수백 개의 똑같은 창문들은 저마다의 삶을 품고 있었지만, 그의 집 창문만은 언제나 두꺼운 암막 커튼으로 닫혀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하려는, 겁에 질린 은둔자의 성채였다.


그들은 치밀하게 움직였다. 이강혁은 아파트 건너편 옥상에 자리를 잡고 저격용 스코프로 주변을 살폈다. 그의 임무는 '아키텍츠'의 감시조가 있는지 확인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최진아는 차 안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소형 무선 이어폰을 통해 김서연과 연결했다. 그녀는 대화의 흐름을 분석하고, 박선우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거나 회유할 타이밍을 조언할 터였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김서연은 홀로 아파트 복도로 들어섰다. 그녀는 박선우의 집 현관문 앞에 섰다.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그녀는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김서연은 문에 바싹 다가가, 오직 안에 있는 사람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속삭였다.


"박선우 부장님. '알바트로스 프로젝트' B구역 3차 설계 변경 승인 건으로 찾아왔습니다."


'알바트로스 프로젝트'는 지하철 공사의 내부 코드명이었다. 3차 설계 변경은 부실 자재 사용을 결정했던, 모든 비극의 시발점이었다. 외부인은 절대 알 수 없는 정보였다.

몇 초간의 길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현관문 잠금장치가 거의 소리가 나지 않게, 천천히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열리고, 그 틈으로 겁에 질린 눈동자가 나타났다. 박선우였다.

김서연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을 해치러 온 게 아닙니다. 당신을 괴롭히는 '시스템'을 부수러 왔습니다."


박선우의 집은 그의 내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모든 것이 회색빛이었고,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김서연을 집 안으로 들이자마자, 문이란 문은 모두 걸어 잠갔다. 그는 신경성 위염으로 깡마른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거실을 초조하게 맴돌았다.


"당신들... 원하는 게 뭡니까? 제발...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사고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했다고요. 그냥 조용히 살게만 해주세요..."


그는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그에게 김서연은 구원자가 아니라, 자신의 마지막 평온마저 깨뜨리러 온 '아키텍츠'의 또 다른 요원일 뿐이었다.

최진아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들려왔다. '극심한 공포 상태. 논리적인 설득보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

김서연은 박선우의 말을 끊지 않고, 그의 공포가 극에 달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그의 절규가 잦아들었을 때, 그녀는 조용히 Lumen 단말기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저는 당신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건 거짓말이니까요."

그녀의 말에 박선우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대신,"

김서연은 홀로그램을 활성화시켰다. 아파트 전체의 보안 시스템 도면이 허공에 펼쳐졌다.

"당신을 위협하는 시스템을 파괴할 방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도면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는 당신의 집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습니다. 현관 복도의 CCTV는 1분 전부터 24시간 전의 녹화 영상을 반복 재생하고 있죠. 당신의 인터넷 회선은 지금 외부와 차단된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이 아파트의 중앙 관리 서버를 통해 당신과 대화하는 모든 내용을 실시간으로 제 동료에게 전송하고 있습니다. '아키텍츠'가 당신을 감시하는 바로 그 시스템을 역이용해서 말입니다."


박선우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이것은 협박이나 회유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김서연은 신의 영역처럼 보였던 감시 시스템의 허점을, 눈앞에서 적나라하게 해부하고 있었다.

"당신이 가진 정보가 그 파괴의 시작입니다. 당신의 죄책감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고요."

박선우는 주저앉을 듯이 소파를 붙잡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이성과 공포가 마지막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 여자는 악마인가, 아니면 구원자인가. 그녀의 제안은 너무나 위험했지만, 동시에 지독하게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가족들이..."


마침내 그가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공포를 꺼내놓았다. 그의 약점이었다.

"아내와 딸 아이가... 그들의 감시를 받고 있소. 내가 움직이면, 그들이 어떻게 될지..."

이것이 그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이어폰 너머로 최진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강혁! B포인트 확인해!'

스코프로 박선우의 아내와 딸이 다니는 마트를 주시하던 이강혁의 목소리가 곧바로 답했다. '확인했다. 검은색 세단. 평범한 회사원처럼 보이지만, 움직임이 달라. 감시조가 확실해.'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김서연은 계획대로 다음 카드를 꺼내 들었다.

"Lumen, 미리 심어둔 백도어 프로토콜 '하데스'를 활성화해. 지금부터 데이터 회선 제어권은 네가 가져간다."


몇 초 후, 박선우의 낡은 스마트폰이 조용히 진동했다. 발신자 표시 제한. 그가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열자, 그 안에는 실시간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 그의 아내와 딸의 모습이었다. 평화롭고, 아무런 위협도 없는.

그리고 영상 아래에 한 줄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시스템은 통제될 수 있습니다.]


이강혁이 보고 있는 감시조의 시야와, 박선우가 보고 있는 평화로운 영상. 이 모순은 박선우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김서연의 팀이, '아키텍츠'의 눈을 실시간으로 멀게 할 수 있다는 증명이었다.

박선우는 스마트폰 화면과 김서연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의 눈에 서려 있던 절망적인 공포가 천천히, 다른 무언가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것은 희망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미약했지만, 분명 어둠을 밀어내는 작은 빛이었다.


그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김서연이 보여준 것은 말이나 약속이 아니었다. 그녀는 압도적인 능력 그 자체를 증명해 보였다. 그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먼지가 뽀얗게 쌓인 외장 하드 드라이브를 들고 나왔다.


그 안에는 그가 '아키텍츠'의 지시로 수행했던 모든 부당한 설계 변경 내역, 내부 회의록, 자금 흐름, 그리고 그가 양심의 가책 때문에 몰래 복사해 두었던 동료들의 대화 녹음 파일까지, '아키텍츠'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외장 하드를 김서연의 Lumen 단말기 옆에 내려놓았다. 그 작은 행동은, 한 평범한 가장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거대한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장엄한 선전포고였다.

"내가...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지만, 그 안에는 마침내 되찾은 작은 용기가 담겨 있었다.

김서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단말기에 케이블을 연결했다. 데이터가 넘어오기 시작하는 순간, 이어폰을 통해 최진아의 안도하는 목소리와,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강혁의 낮은 욕설 섞인 감탄사가 동시에 들려왔다.


팀 오디세이.

시스템을 설계하고 파괴하는 두뇌, 김서연.

그녀를 지키는 흔들림 없는 방패, 이강혁.

그들의 싸움을 세상에 알릴 날카로운 창, 최진아.

그리고 시스템의 심장을 열어줄 내부의 열쇠, 박선우.

마침내 반격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갖추어졌다.


김서연은 데이터가 복사되는 것을 지켜보며 창밖을 보았다. 커튼 틈으로 보이는 새벽의 여명이, 잿빛 도시를 서서히 물들이고 있었다. 그것은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빛이자, 기나긴 어둠의 끝을 예고하는 신호탄처럼 보였다.


그녀의 탈출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싸움은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각자의 상처와 분노, 죄책감을 안고 모여든 동료들이 그녀의 곁에 있었다. 그녀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인간관계라는 가장 비논리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이제 그녀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려 하고 있었다.


심연에 맞서는 그녀의 공학은 이제 막 새로운 장을 열고 있었다. 그것은 파괴의 공학이자, 창조의 공학이었다. 거짓된 질서를 해체하고, 진정한 연대를 구축하는.


'아키텍츠'가 세운 거대한 바벨탑에, 작지만 치명적인 첫 번째 균열이 생겨난 순간이었다. 그들의 반격은, 이제 정말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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