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형제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을 굶고 책방에 출근했다. 잠이 오지 않아 책을 펼친 게 실수였다. 배가 출출하니 눈을 삼분의 일밖에 뜰 수 없었다. 힘없이 손을 들어서 책방 창고를 열려는데 갑자기 문이 활짝 열렸다. 아니, 나에게 초능력이 있었어? 그런 생각을 하는데 창고에서 셰에라자드와 지니가 나왔다.
“아이고 깜짝이야.” 지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깨를 귀 밑에 붙이면서 말했다.
“초록, 마침 있었네요. 어서 같이 가요.” 셰에라자드가 내 손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예? 어디를요?”
“그건 가면서 설명할게요. 우리가 정말 멋진 책방을 발견했어요. 초록하고 또 가고 싶어요.”
나는 밥 대신 빵이라도 먹고 싶었지만 멋진 책방이란 말에 두 사람을 따라서 어두운 창고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숲속에 있는 작은 책방이었다. 마당에는 오리들이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있었고, 책방 입구까지 하얀 자갈이 깔려 있었다. 오리들 사이로 아이들이 풀밭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아이들은 책을 읽다가 책방으로 달려가 벽에서 뭔가를 떼어 먹으면서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아니, 저기...” 나는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궁금한 걸 셰에라자드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셰에라자드는 “자, 어서” 하며 내 손을 더 세게 이끌었다.
우리는 책방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상쾌하고 향긋했다. 좋은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으며 셰에라자드와 지니를 따라서 더 안으로 들어갔다.
“초록, 인사하세요. 여기는 책방 주인 헨젤과 그레텔. 두 사람은 남매에요.” 그리고 셰에라자드는 나를 가리키며 “여기는 전에 말했던 초록”이라고 나를 두 사람에게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헨젤과 그레텔이면...”
“예, 맞습니다. 초록이 아는 그 헨젤과 그레텔 맞아요.”
“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말이 책방을 했다는 뜻이었어요?”
“그래요. 책방 주인으로 사니 행복할 밖에요.” 그레텔이 웃으며 말했다.
“아까 밖에서 보니까 아이들이 책방 벽에서 뭔가를 떼서 먹던데 혹시...”
“맞아요. 우리가 잡혀 있었던 마녀의 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혹시 배가 출출하면 이걸 좀 드셔보세요.” 헨젤은 창틀을 조금 떼서 나에게 건넸다.
나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창틀을 살짝 물어서 삼켰다. 그러고는 내가 뭘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창틀 하나를 다 먹어치우고 바닥에 앉아서 헉헉거리고 있었다. 책방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나를 보면서 마치 내 심정을 안다는 표정을 지었다.
“초록 그러고 있지 말고 여기 와서 책들을 좀 봐요.” 셰에라자드는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여기에 있는 책들은 전부 다 먹을 수 있어요.”
나는 배가 불러서 셰에라자드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책을 먹는다고? 하기야 나는 방금 전에 창틀을 다 먹어치웠으니 책을 먹는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지.
“자, 봐요. 이 책은 바다생물을 소개하는 어린이 그림책인데 다 읽고 물에 넣어서 끓이면 해물전골이 돼요. 맛이 일품이래요.” 셰에라자드가 신이 나서 말했다.
“여기 이 책은 흑미 잉크와 백미 종이로 만들었어요.” 그레텔이 말했다. “옛날에는 학생들이 공부할 때 종이를 뜯어서 먹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진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건강에 좋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책은 유기농 흑미와 백미로 만들어서 건강에 좋아요. 지식도 얻고 건강도 얻는 셈이죠.”
“이 책은 말 그대로 책빵이에요.” 헨젤이 말했다. “책이기도 하고 빵이기도 하죠. 보자. 이 책빵은 유효기간이 보름이네요. 빵을 먹으려면 보름 안에 책을 다 읽어야 해요. 시간이 부족하면 읽으면서 먹어도 됩니다. 하지만 앞에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알려면 아무래도 바로 먹는 건 좀 그렇겠죠. 보름 안에 먹으면 되니까 서둘 필요는 없어요. 책빵은 공부할 때 아주 좋습니다. 반복되는 단어나 표현을 반복해서 먹으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죠. 요즘 공무원 수험서는 다 책빵입니다. 바로 붙지 않으면 살이 붙는 게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죠.”
“책빵이 인기가 많으니까 상술이 빠른 출판사들은 종이에 화학약품을 발라서 만들 책들을 팔아요.” 그레텔이 옆에서 덧붙였다. “내용 없이 겉만 핥아먹는 책이죠. 이상하게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있더라고요. 우리는 그런 책은 취급하지 않아요.”
“이 요리책은 페이지를 뜯어서 물에 넣으면 식재료로 변한대.” 지니가 어디서 책을 한 권 가지고 와서 보여줬다. “보자. 여기 국물 페이지 두 장을 뜯어서 물에 넣으면 육수로 변하고, 여기 마늘 페이지 한 장 반을 뜯어서 넣으면 마늘 맛이 나. 그리고 마지막에 겉표지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면 후식으로 팝콘을 먹을 수 있어.” 지니는 입맛을 다지면서 책을 핥으려고 했다. 셰에라자드는 놀라면서 책을 뺏어서 자리에 갖다 놓았다.
“여기 이 책은 종이 재질이 누룽지입니다.” 그레텔이 지니에게 책을 한 권 주면서 말했다. “다 읽고 물에 넣어서 끓이면 아주 맛있는 누룽지가 되죠. 요즘은 이 누룽지로 만든 책이 인기가 많아요. 선물용으로도 좋죠. 특히 누룽지 시집은 미각과 촉각, 후각을 자극하는 단어들이 많아서 끓여 먹으면 최고에요 최고. 책 맛이 아주 황홀합니다. 황홀해요.”
지니는 누룽지로 만든 책 다섯 권을 바로 구입했다.
“옛날사람들은 책을 마음의 양식이라고 했다는데 조금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 소화시켜야 읽은 거지 그냥 읽기만 해서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나요?” 헨젤이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치고 말했다.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내가 물었다.
“마녀의 집에서요.” 헨젤이 설명했다. “트라우마가 심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극복했어요. 운이 좋은 편이죠. 옛사람들은 책을 가리켜 마음의 양식이라고 했다는데 보니까 불량한 책들이 많더라고요. 책을 읽는 사람들이 편견과 교만에 빠지고 양심을 잃어버린 게 다 이유가 있었어요. 그런 책들은 마녀가 빵으로 만든 집과 비슷해요. 독자들을 유인해서 필요한 것만 빼가는 식이죠. 그래서 우리는 기왕이면 마음에도 좋고 몸에도 좋은 책을 만들기로 했죠.”
“책은 진실을 알고 싶어서, 더 진실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읽는 거니까요.” 그레텔이 우리는 배웅하면서 말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도 좋고 몸에도 좋은 책. 나는 어서 책방으로 돌아가 손님들에게 그런 책들을 팔고 싶었다. 나는 헨젤과 그레텔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창틀 값은 어떻게든 마련해보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지붕에서 책방을 먹고 있었다. 헨젤과 그레텔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며 웃었다.
나는 창문 하나를 통째로 빼려고 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소리쳤다. “셰에라자드, 지니, 어서 우리 책방으로 돌아가자.”